• 시진핑-마잉지우 회담
    [중국과 중국인] 양안관계의 이정표
        2015년 11월 16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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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말의 미국 방문(09.22~28), 10월 말의 18기 5중전회(10.26~29)에 이어 지난 11월 7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대만 총통 마잉지우와의 회합까지 시진핑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에 가서 할 말 다하고, 5중전회를 통해 자신의 첫 임기의 정책 추진에 힘을 실은 후, 홍콩과 마카오의 귀속 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만과의 관계에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시진핑-마잉지우의 만남은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두 사람의 ‘만남’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공 내전의 당사자인 마오쩌뚱(毛泽东)과 쟝지에스(蒋介石)가 승패를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후, 떵샤오핑(邓小平)이 대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허용하는 일국양제(一国两制)를 제기하면서 대만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를 책임지는 고위관계자들의 만남이 지속되었고, 특히 시진핑 집권 후 국민당(国民党) 명예주석인 우보숑(吳伯雄, 2013년 6월)과 리엔잔(连战, 2015년 9월) 등을 만나기는 했지만 중국과 대만의 현직 최고 책임자들의 회합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시-마’ 회담은, 2000년 6월 15일에 진행된 “김대중-김정일” 간의 남북정상회담이 한국정치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회담이 성사된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이번 회합의 의미와 여파에 대해 살펴보겠다. 회합 3일 전인 11월 4일에 발표된 시진핑-마잉지우 회담은 2013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아펙(APEC)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国务院台湾事务办公室) 주임 장즈쥔(张志军)과 대만의 행정원 대륙위원회(行政院大陆委员会) 주임 왕위치(王郁琦)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상대방의 공식 직함을 부르고 접촉하면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12월, 대만 총통 마잉지우가 언론을 통해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 관심이 있음을 표명했고, 결국 왕위치 대신에 대만 대륙위원회 주임에 임명된 샤리엔(夏立言)과 장즈쥔이 올 해 5월 대만의 진먼(金门) 그리고 10월 중국의 광조우(广州)에서의 회합을 통해 안전과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싱가포르에서 ‘시-마’ 회담을 갖기로 결정했다.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통일이 한국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홍콩과 마카오 복속 후 마지막 남은 대만과의 통일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에게도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마’ 회담은 중국 내외의 어떠한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만남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현실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도 시진핑과 마잉지우 두 사람 모두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선 얼마 남지 않은 대만의 총통 선거(2016년 1월)에서 대륙과의 통일보다는 대만의 독립에 좀 더 관심이 있는 민진당(民进党)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국민당의 주리룬(朱立伦)를 후보를 누르고 대만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차기 총통 선거는 국민당의 원래 대통령 후보인 입법원 부원장 홍씨우주(洪秀柱)와 민진당의 차이잉원 두 여성 후보의 대결로 세간을 관심을 끌었지만 차이잉원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국민당은 결국 현재 국민당 주석이자 대만 최대 도시인 신베이(新北)시 시장 주리룬으로 후보를 교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면서 차이잉원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시-마’ 회담은 대만 유권자들에게 대만 총 무역액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지속적인 협력 없이는 대만의 장기적인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기 위한 목적이 있다. 동시에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는 민진당의 차이잉원에게는 이번 ‘시-마’ 회담의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하면서, 차기 대만 정부도 양안대화의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효과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진핑은 집권 후 신속한 권력 장악을 통해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내외에 과시했지만, 여전히 짧은 정치적 경험과 확실한 지지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는 마잉지우와의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의 최대 숙원인 양안관계의 공고화 또는 통일대업에 주춧돌을 쌓아 올려서 마오쩌뚱과 떵샤오핑에 버금가는 상징적인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일방적인 통일의 대상일 뿐이었던 대만의 최고 지도자를 지금까지의 관례를 무시하고, 비록 공식적인 호칭은 생략했지만, 대등한 회담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마잉지우로서도 잃을 게 없는 회담이었다. 임기가 불과 3달이 채 남지 않은 상태이고 게다가 중국과의 통일에 별 관심이 없는 야당에게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안의 통일에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대만인들의 ‘시-마’ 회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번 회담의 성과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응답자의 62.1%가 두 정상이 만나는 것에 긍정을 표명했고,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당선되더라도 시진핑과 회견해야 한다는 견해는 66.3%에 달했다.

    1949년 건국 후 처음으로 중국과 대만의 현직 최고 지도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않았다. 이 회담에 대한 온도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중국의 속담처럼, 또 대만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만에서 어떤 성격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양안 간의 대화와 안정적인 교류의 물꼬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좋은 교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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