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책소개] <기자와 살인자>(재닛 맬컴/ 이숲)
        2015년 11월 15일 07: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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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의 법정 드라마 같은 저널리즘 이야기

    한 남자가 아내와 두 딸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됐다. 살인자는 범죄 사실을 끝내 부인했고, 한 르포 기자가 이 사건을 밀착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했다. 4년이 넘는 취재 기간에 기자는 살인자와 친구가 됐고, 살인자는 기자가 자신의 결백을 세상에 알려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기자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기 책에서 그를 냉혹한 살인마로 묘사했다. 상처받은 살인자는 기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등 흥미진진한 한 편의 법정 드라마 같은 내용을 담은 이 책 『기자와 살인자』에서 저자는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을 하나하나 인터뷰하며 기자의 윤리는 어떤 것인지, 사실과 ‘비사실’의 경계는 어디인지, ‘진실을 알린다’는 기사는 누구의 진실을 말하는지, 저널리즘을 심판대에 세우고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저널리즘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성찰은 교육적 가치도 풍부하다. 저널리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당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2013년 프랑스에서 주요 저널리즘 저서에 수여하는 ‘아시스 상(Prix des Assises)’을 받았다.

    사건 개요

    군의관이었던 제프리 맥도널드는 아내와 두 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졌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9년 뒤, 군에서 제대하고 성공한 개업의로 일하던 그는 다시 기소되어 형사재판이 열렸고, 유죄 판결을 받아 투옥됐다.

    르포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조 맥기니스는 그를 밀착 취재하여 책을 출간했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제는 맥기니스가 오랜 취재 기간 맥도널드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위선적인 친구 관계를 유지했고, 책에서는 본색을 드러내 맥도널드를 냉혹한 살인마로 묘사했다는 데 있었다. 처절하게 배반당한 맥도널드는 맥기니스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재닛 맬컴은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모두 인터뷰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기자와 살인자’라는 제목으로 『뉴요커』에 기사를 게재하여 언론의 본질과 기자의 도덕성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사를 바탕으로 바로 이 책, 『기자와 살인자』를 출간했다.

    기자와 살인자

    기자에게 진실과 윤리는 무엇인가

    한 편의 법정 드라마 같은 이 다큐멘터리를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도 똑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드러나는 ‘진실’의 입체성에 있다. 살인죄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맥도널드를 지지하는 변호사들과 친구들은 그를 사법제도의 희생자로 간주하고,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겠다는 의도로 접근하여 맥도널드와 거짓된 우정을 나누면서 모든 정보를 캐낸 기자 맥기니스를 더없이 파렴치한 인물로 묘사한다. 독자들 역시 그들의 증언과 진술을 읽으면서 맥기니스가 얼마나 야비한 기회주의자인지를 발견하고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맥기니스를 지지하는 변호사, 작가, 관련 인물들의 진술을 읽고 나면 맥도널드가 주장하는 결백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하고 교활한 살인마인지를 깨닫고, 그런 자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기자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증언과 해석과 판단이 독자들을 끝없는 의문의 미로로 밀어 넣는다.

    진실은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전형적인 중상류층 의사 맥도널드는 자신이 주장하듯이 아내와 두 딸의 목숨을 괴한들에게 빼앗기고도 억울하게 누명을 쓴 희생자일까? 아니면 맥기니스가 주장하듯이 선한 양의 탈을 쓴 끔찍하고 교활한 살인마일까?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당시 복용하던 약물 때문에 이성을 잃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증언했듯이 폭도들에 의한 우발적인 살인으로 가족을 잃었던 것일까? 양측 변호인들의 주장을 듣고 평결을 내리는 배심원들의 판단은 과연 편견 없이 옳다고 믿을 수 있을까?

    기자는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취재 대상에게 접근해서 본심을 숨기면서 정보들을 캐내고, 마지막 순간에 표변하여 취재 대상을 궁지로 몰아넣는 행동을 해도 그것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밝혔다는 진실은 과연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일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아서 상대가 거짓을 진실로 믿고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처음부터 상대를 속일 마음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언론이 말하는 진실에 대해, 그리고 언론의 윤리와 대중에게 공개하는 글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기자의 글쓰기

    이 책이 저널리즘의 고전이 된 데에는 기자인 저자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하면서 전개하는 취재 과정이 극적이고 입체적이라는 사실이 주효했겠지만, 취재하는 사건과 인터뷰 대상에 대한 자기 판단을 끝없이 반추하고,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기자의 진지한 자세를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탁월성은 저자가 저널리즘 글쓰기에 대해 기울이는 성찰적인 노력에 있다. 후기에서 저자는 논픽션 글쓰기가 소설적 글쓰기와 어떻게 다른지 뛰어난 문체로 변별력 있게 분석하고, 특히 인터뷰 대상이 구어로 전한 내용을 기자가 문어로 전환하는 ‘편집’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실 속의 사실’과 ‘글로 편집된 사실’ 사이의 괴리에 주목한다. 독자는 기자의 글이 ‘사실’을 그대로 옮겼다고 믿으며 읽지만, 필연적으로 그 글은 기자의 머릿속에서 이미 ‘편집된’ 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자는 묻는다. 기자의 글이 말하는 진실은 사건과 취재 대상의 진실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자기 글로 고착한 기자의 진실인가.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하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맥기니스는 2014년 암으로 사망했지만, 제프리 맥도널드는 살아남았다.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그는 수감된 상태로 2002년 어린이 연극학교 교장인 캐서린 쿠리크와 극적으로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캐서린 맥도널드는 일주일에 세 번 1,600여 킬로미터를 달려 감옥에 있는 남편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맥도널드는 수차례 재심청구를 했으나 기각되었고, 2005년 5월 가석방을 신청했으나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함에 따라 이 요청 또한 기각되었다. 다음 가석방 심리는 2020년 5월에 열린다.

    2015년 현재, 맥도널드는 메릴랜드 연방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며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무죄를 입증해줄 수도 있었던 네 명의 폭도 중 한 명이 범죄 사실을 자백할 의사를 밝힌 적도 있었으나 그 역시 사망하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의 출소 만기는 2071년 4월로 그의 나이 127세일 때이다.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그의 유죄를 확신하는 사람들과 무죄를 믿는 사람들이 다양한 주장과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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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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