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미래가
    남한이 되어서는 안 돼
    "탈북자, 체제경쟁 승전물 아냐"
        2015년 11월 12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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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언론에서 이북에 대한 내용이 알찬 글들이 비교적 드문데, 최근에 운 좋게 하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최승철 씨, 영국까지 간 전 이북 주민이 북한과 한국을 이야기하는, 보기 드물게 현실에 근접한 한국 언론의 대북 보도이었습니다.(관련 글 링크)

    한 때 한국에 정착했다가 이북 주민은 물론이고 자국민의 인권도 챙겨주지 못하는 자본 독재 사회에 실망해 영국으로 떠난 최승철 씨는 자신을 지금도 해외에 있는 “북조선인”으로 본다고 합니다.

    수령주의,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 김정은 체제에 이런저런 실망을 해서 타국살이를 선택했지만, 북조선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정치체제 등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은 면들이 많지만 무상교육이나 공공보육 등 민중복지에 나름의 성취가 크며, 사회적인 공익의식, “공화국 공민”으로서의 사회의식 등이 그가 생각하는 북조선의 의미 있는 제도와 장치들입니다.

    이와 아울러 1940년대 말 혁명기에 과거 지배층(“친일파”)을 한 번 획기적으로 판갈이를 해서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식민지 지배층의 통치가 사실상 이어진 남한과 비교했을 때에 북조선의 강점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탈북

    최승철 씨 인터뷰 모습(사진 출처=미디어오늘)

    최승철 씨에게는 북조선에 대해 남한의 언론들이 퍼뜨리는 각종 악담들은 그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괴담으로밖에 안보입니다. 탈북자 가족들을 처형한다고? 그러면 그가 자신의 가족들을 제3국인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북조선이 장차 변화 과정에서 남한을 닮아갈까 봐서 겁이 나는 것입니다. 피고용자가 자본이나 자본의 앞잡이인 국가 행정부 앞에서는 자신의 권익을 전혀 보호 받지 못하고, 인권이 상습적으로 유린되고 노동자라는 말이 저주인 나라는 뭐가 좋다고 또 누군가의 모델이 돼야 합니까?

    최승철 씨의 한국론에는 탈북자들을 구조적으로 차별하면서 그의 말대로 체제 경쟁의 승전물로 이용하는 남한 정권에 대한 원한도 깔려 있지만, 사실 그의 한국관은 상당수의 구 “현실사회주의권” 출신들이 공유하는 여러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이나 중국, 러시아 사람 입장에서는 예컨대 군바리 독재를 그래도 이겨낼 수 있었던 한국 민중은 존경스럽죠. 동시에 특히 생계가 어렵거나 정치적 등의 문제로 탈향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래도 준 핵심부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나름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망”은 여기까지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근로의 경험이 있는 러시아 고려인이나 중국 조선족들, 아니면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경험담은, 신자유주의화된 한국에서의 노동자의 구조적인 권리 침해가 아직도 좌파적 조합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중-러-북에 비해 훨씬 심각하고도 비상식적이라는 것이죠. 착취야 어디에서나 다 하지만, 콜트악기나 기륭전자처럼 4~5년 동안의 죽음을 각오한 초장기 노동투쟁을 중국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구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이 지금은 자본가계급 육성에 안간힘 쓰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뿌리나 사회기능상 다소 계급 초월적 성격도 있는 당이 쟁의가 생기고 나서 바로 개입해 중재하고 적어도 최악의 노동자 권익 침해를 “사회안정”의 차원에서 막아주죠.

    중국에서 자율적 (민주) 노조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에 80년대 말의 대투쟁으로 다행히 생긴 민주노조라고 해서, 상식을 벗어난 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를 어느 정도 막아주나요? 좌우간, 중-러-북의 주민 입장에서 보면 한국형 체제, 즉 경찰형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모델”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악몽”에 불과합니다.

    한국인들이 한 가지를 제발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이북은 “우리가 해방시켜주고 발전시켜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도 아니고 “곧 붕괴될” 사회도 아닙니다. 중국,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민중혁명과 적색개발주의 시기를 거친 동북아의 하나의 독자적 사회이자 인민집단이죠.

    이북의 관리자들이 요즘 박정희나 정주영 등의 경험을 참고하는가 하면 이북의 재야적 성격의 지식인들이 한국 민중 투쟁의 경험을 재미있게 참고해볼 수도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에 불과합니다.

    이북 인민들에게 그들만의 자랑스러운 과거(40년대 말의 민주개혁, 경제건설, 제3세계와의 상부상조, 쿠바, 월남,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등등)가 있는가 하면, 그들이 지금 개척하는 미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 개척의 차원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 과거의 쓸만한 점들 (복지주의, 공공이익 의식 등등)을 간직, 보완하는 것이지 “한국처럼 된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제발 그들 앞에서 우리가 조금 겸손해졌으면 합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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