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피크제 부결돼도,
    이사회에서 불법적 강행
    서울대병원의 불법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2015년 10월 30일 06: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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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병원 이사회가 임금피크제 도입 절차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하고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과반수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주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한 것이라 명백한 불법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을 일방 결정한 이사회에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포함돼 있어 정부가 개입해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인 직원 투표를 온라인으로 강행했다. 총 6045명의 직원 중 3177명(52.5%)만이 투표에 참여했고, 그 중 1728명이 찬성했다. 나머지는 개별 동의 절차를 거부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표 결과 찬성한 이의 비율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전체 직원 중 28.5%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찬성률은 투표 참여자 대비가 아니라 취업규칙을 적용받게 될 전체 노동자 대비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병원은 29일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어 임금피크제를 통과시켰다. 서울대병원 이사회에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차관 등 정부 고위 관료들이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임금 삭감 등을 압박해 취업규칙 변경 동의를 억지로 받아내고는 있지만 형식적인 절차까지 무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취업규칙과 관련해선 여야, 노동계와 정·재계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며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노동계와 논의 없이 현장에서부터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임피제

    기자회견 모습(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와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장하나 의원 등은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병원 등 공공병원의 임금피크제 날치기를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에 10월말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다는 목표 세우고 나서, 국립대병원 등을 중심으로 불법 시비가 있을 수 있는 압박을 통한 동의과정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도가 지나쳐 서울대병원에서 명백한 불법적 결정을 한 첫 사례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투표가 부결돼 있음에도 추진하는 것은 정부로서, 공공기관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서울대병원 이사회에서 한 취업규칙 변경 신고를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취업규칙과 관련해선 정부가 한국노총과 논의하기로 한 사항”이라며 “서울대병원 사례는 정부가 한국노총과 진행한 노사정 야합조차도 이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경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아무리 불법이 횡행하는 세상이라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서울대병원은 과반이 투표했고 투표자 중 과반이 찬성했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다고 글을 직원들에게 보내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찬성률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대비 찬성 비율이어야 하는데, 병원측은 투표자 대비 찬성율을 계산하여 과반이 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 분회장은 “문자 투표 과정에도 불법이 있었다”며 “7일 간에 인터넷 투표 기간 중 주말에 3통 씩 전화해 투표를 종용하고 투표 기간 중 24통의 문자를 보내 투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관리자는 직원의 휴대전화 빼앗아 1시간 가량 주지 않는 사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오병희 병원장은 처음에 교섭을 하자더니 나중엔 임금피크제 논의하고 분회장이 도장만 찍으면 된다며 정식교섭이 아닌 밀실교섭을 요구했다”며 “병원장은 투표 시작 이후 투표가 부결될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이 안 되면 각종 불이익이 생긴다, 사학연금이 막힌다, 임금인상 못한다고 하더니, 실제 부결되니 사실 이것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 병원장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두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임금피크제 도입했을 때보다 거부했을 때 정부가 주는 불이익이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분회장의 전언이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임금이 삭감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거부했을 경우 정부가 깎는 임금 인상률이 더 크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임금피크제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고액 연봉 의사와 관리자 등에 한해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청년 고용을 확대하는 것은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고액 연봉직은 배제한 채,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는 직원들에 한해서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분회장은 “부의 재분배와 인력 확충, 일자리 만들기는 노조의 핵심 요구”라며 “서울대병원엔 연봉 1억이 넘는 고액연봉자들 있다. 이들의 임금을 깎아 신규채용을 확대하는 것은 찬성한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은 연봉 1억이 넘는 고액연봉자는 깎지 못하면서, 정년퇴직할 때 겨우 연봉 5천만원이 되는 그런 노동자들에겐 새로운 일자리 만들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조는 이들의 부를 나눠서 새로운 일자리 마련하고 외주와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그런 교섭을 하고 싶다”고 촉구했다.

    박 분회장은 “노동자들은 법을 믿고 행동했다. 법에 나온 대로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취업규칙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투표를 거부했다”며 “법을 믿고 행동한 노동자에게 ‘법이 필요 없다. 강행할 수 있다’고 한다”며 “임금피크제 저지를 넘어 불법이 횡행하는 이 사회에 서울대 노동자는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은 “어제까지는 불법이라서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하지 못했던 것이 하루아침에 대통령 말 한 마디로 불법이 아닌 것이 됐다”며 “법이 바뀐 게 없는데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현장에선 사용자 맘대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민주정부이기를 포기하는 행태”라고 질타했다.

    장 의원은 또한 “노동자들이 자기의 모든 열정과 삶을 바친 일터에 배신당한, 그 이사회 현장에 기재부 차관, 복지부 차관, 교육부 차관이 자리했다”며 “이 정도면 정부가 방관한 게 아니라 불법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앞장선 이런 불법적인 임금피크제 도입, 그 첫 시작이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우습게 여기는지 또 한 번 증명됐다”고 했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 또한 “서울대병원의 취업규칙 변경 강행처리에 노동부 동의만 남았는데 만약 노동부도 동의해준다면 노동부가 불법적 처사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고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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