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남자’가 주는 쓴 교훈
    신화로서의 가족정치와 함께 가는 낙후된 남성연대
        2012년 07월 24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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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남자’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남자’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자신에게 무엇보다 소홀해야 남자’

    이명박 정권 중간 쯤에 이러한 카피를 2012년 대선 카피로, 그것도 유력한 야당 후보의 대선 카피로 보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박근혜가 유력한 대선 후보다 보니 상대들이 박근혜가 여성이란 점을 공격하리라는 것은 예상가능한 일이다. 여성 대통령이란 불안감을 자극하기 위한 ‘안보’ 등의 말들을 동원하리라는 것도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맨 얼굴로 여성 박근혜를 겨냥하는 야당 카피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러내놓고 박근혜가 여성이라고 공격하거나 남성이란 이유로 박근혜보다 우월하다고 공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여성이고 문재인이 남성인 걸 동어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대선에서 중요한 미래 비젼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혹은 ‘대한민국 남성’ 그 자체가 박근혜와 대비되는 미래지향적 가치라고 생각한 셈인데, 일부 파쇼 성향 야권 지지자에게나 먹힐 뿐 일반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전사 전우회 주최 마라톤 대회에서의 문재인 의원(사진=문재인 트위터)

    현재로서는 결국 반대여론이 많아 결국 문재인 캠프에서는 ‘대한민국 남자’라는 카피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해당 슬로건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던, 일종의 해프닝으로 여길 법도 하다.

    그러나 약 2년 전부터 대권의 길을 갈고 닦았다던 야권 후보가 이런 슬로건을 채택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여성운동 ‘선배’들이 가장 많이 포진되어 있는 정당의 지지율 1위 후보가 자신의 장점을 ‘자상한 가장과 같은 남자, 남자다운 진짜 남자’로 설명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중도와 민주당 우파로 포지셔닝하려는 문재인의 설레발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혹은 문재인 캠프의 젠더 문제 이해/젠더 감수성 부족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의 발단은 문재인 캠프를 비롯한 야당 주자들이 다소 무모하고 퇴행적으로라도 박근혜의 대항마로 포지셔닝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박근혜를 철저히 상수로 두고 대항하려 하면서 퇴행적인 젠더정치에 기대려고 한다.

    박근혜는 한국의 가족 정치에서 신화와 같은 모델이다. 대중적 환상의 대상이었던 독재자 가족의 일원의 이미지를 독점하고 그것만을 무기로 현실정치에서 살아남고 있다. 계파 속에서 쌓은 실력을 통해 계파의 수장이 되어 한국 정치를 주름잡았던 양김에 비해 박근혜가 갖고 있는 자원은 가족으로서의 이미지가 전부이다.(물론 그 이미지를 자신의 통제 하에 유지하는 것은 그녀만의 실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정치는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가부장적 질서가 투여되어 있다.

    야당 정치인들이 아무리 남성적 질서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았어도 ‘독재자의 딸’인 그녀보다 더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보수 정치의 남성적 질서에서 그저 남성 정치인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이길 방법은 별로 없다. 혹은 가족 정치를 문제화하는 남성적 연대, 진짜 남성의 정치를 긴급하게 호출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여긴다.

    문재인에게서 한 가족의 가장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가족보다 나라를 생각해야 남자다’라는 모순적 구호가 가능했던 것은 가족 정치를 문제화하면서도 가족의 진정한 위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이중적 욕망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얻으려 했던 총선에서 톡톡히 당한 야당은, 가부장 질서의 미래 위임자로서의 박근혜에 대해 준비해둔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실패한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된 가장의 이미지인 이명박은 유리한 싸움의 상대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가족의 이미지에, 가부장 남성의 이미지에 기대려 하면 할수록 박근혜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야당들은 박근혜에게서 유리한 프레임에서 한발자욱도 바깥으로 움직이려 들지 않고 자신이 그 프레임의 적임자임을 주장하려고만 든다. 자가당착적인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주장하는 것은 그 중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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