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오래된 미래
밀걸레의 악취와 국정화
[다큐멘터리 사진] 엄상빈 <학교 이야기:어느 전직 교사의 사진 비망록>
    2015년 10월 26일 05: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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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다큐멘터리’라는 그 범주는 참 넓다. 그러다보니 그 뜻도 애매해져 버린 사진의 한 부류가 – 사실, 부류가 맞는지, 장르가 맞는지, 이 조차도 애매하다 – 그래도 그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록성’이다. 그 기록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책으로 내거나 전시를 하거나 하려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기본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요건을 잘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현실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구도를 신경 쓰고 좋은 빛을 고르며 톤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지만 그런 작업에 과하게 집중하다보면 사진은 어느덧 예술적인 멋이 더 나고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록보다는 작품으로서의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이 지점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라 하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기록성과 예술성 사이에 놓인 숙명의 고민 지점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사진가가 사진 한 장 한 장을 어느 정도 미학적 아름다움을 갖춘 수준으로 만들었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묶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른바 “사진으로 말하기”다.

제목과 작가 노트 정도를 제외하고 일체의 텍스트를 갖추지 않은 채 오로지 사진으로만 독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있고, 사진 한 장 한 장을 끼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이야기를 텍스트로 붙여 사진을 일종의 자료(다큐먼트)로 삼는 데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방식이 있다.

텍스트가 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을 문학 하는 방식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면, 텍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사회과학 하는 방식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사진을 보고 느낌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반면 후자는 사진가가 갖는 주제 의식을 강하게 전달하게 해 준다.

엄상빈의 〈학교 이야기: 어느 전직 교사의 사진 비망록 1980-2000〉(눈빛출판사, 2006)은 이 두 개의 고민 지점에서 볼 때 사진의 기록성에 더 충실하면서, 텍스트를 겸비한 다큐멘터리 사진 책이다. 그는 20년 간 교직 생활을 하면서 몸소 겪었던 교육의 현장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학교 이야기: 어느 전직 교사의 사진 비망록 1980-2000〉은 ‘1980년대에는…’이라는 제목의 장(章)으로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1980’이라고 하는 숫자는 마치 뜻이 없는 기호처럼 5·18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첫 장을 읽어가면서 만나는 첫 사진이 신학년도에 교사들에게 지급된 교무수첩의 ‘학급의 얼굴’ 사진이다. 그 첫 사진에는 스무 칸이 있었는데, 열아홉의 얼굴만 있고 하나의 얼굴이 없다. 순간, 나는 망월동 영정 사진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에서 죽은 어린 학생들의 얼굴이 중첩된다. 학생들의 얼굴이 네모난 박스 안에서 일괄적으로 박혀 있는 틀과 1980이라는 숫자가 만드는 정형은 우리에게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폭력적인 과거를 연상시킨다.

수첩의 빈 칸에는 3/26 자퇴라는 교사가 적은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빈 칸 하나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무슨 이유였을까? 학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못하여 그 아이는 왜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였을까? 학교를 떠난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한 장의 사진이 실재의 기록을 넘어 감성의 나래를 펼치게 해준다. 그 기록은 이성적 증거의 세계를 뛰어 넘어 감성적 공감의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이것이 사진의 기록만이 갖는 힘이다.

엄상빈의 작업은 주로 1990년도 강원도의 작은 읍 단위의 작은 고등학교 (주로 실업계)의 생활을 기록한 사진들과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그 때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우려 낸 텍스트로 만들어져 있다. 그 때 그 사진을 보며 기억으로 되돌아가 보는 어느 작은 옛 이야기다. 그런데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은 그 때 그 시절.

아니나 다를까, 사진가는 입시에 찌든 아이들, 매우 불결한 교실 환경, 비인간적인 체벌,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조합, 학교와 군사 훈련이 만난 교련에 관한 사진들이 아픈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그런 과거일지라도 그 시간을 돌이키는 것은 또 다른 추억이 된다. 맞아, 그땐 그랬지 …

가장 행렬을 하는 모습이라든가 발렌타인 데이와 같은 어떤 날을 기념하는 모습이라든가, 아이돌을 흉내 내는 댄스 동아리의 모습 등을 보면서 한국의 학교 풍경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헬조선’의 시발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간적인 촌스러움이나 숨 쉴 수 있는 여지가 눈에 보인다. 그나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한 장의 사진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이 곳곳에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렇게 남달리 미학적으로 뛰어나지도 않고, 독창적이지도 않는데도 독자의 시선을 멎게 하는 그런 사진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진 1. p.106]이다. 작은 비닐봉지를 빼곡히 차고도 부족해 다 담지 못한 담배꽁초들. 피워대는 학생들과 못 피우게 쫓아다니는 선생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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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담배꽁초들

책장을 넘기면서 또 하나의 사진에 시선이 박힌다. 민관군 합동 훈련 시범 중에 방독면을 쓴 학생 [사진2. p. 138]. 얼굴이 없다. 방독면에 빼앗겨버린 학생의 얼굴, 인격의 주체를 앗아가 버린 시대정신을 난 읽는다. 그냥 단순한 증거 자료 사진이지만, 비인간적이고 몰주체적인 그 교육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의 기제로도 읽힌다. 저 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겪었겠지만, 실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시로서의 군사 문화가 목표하는 것은 바로 저 얼굴 없는 국민의 상이었다. 그럼에도 그 때는 단지, ‘국가’라는 단위가 갖는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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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방독면을 쓴 얼굴 없는 아이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국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본’이 들어서 있다. IMF로 인해 국가보다 더 무서운 자본과 이윤이 저 방독면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아직 엄상빈의 사진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아직 그 ‘헬조선’의 지옥문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책 제목을 ‘이야기’로 했다. 그리고는 부제를 ‘비망록’이라 했다. 이 책을 ‘한 교사가 학교를 중심으로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이 언제나 객관적이고 진실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진가 엄상빈이 역사에 대해 갖는 개념의 일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점이다.

역사라는 것은 누가 쓰든지, 누가 찍든지 간에 그것이 진실일 수도 없고, 언제나 객관적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텐데도 사진가 엄상빈은 괜한 노파심을 발동한 것이다. 《삼국유사》를 쓴 승려 일연이 자신의 기록을 역사라고 하지 않고, ‘남겨진 일들’이라 자평하는 것과 같은 심정일까? 한 편으로는 겸손의 미덕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여전히 역사를 전문 역사가나 할 수 있는 일이라거나 국가나 사회 전반의 일을 거시적으로 다루는 작업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학교 이야기: 어느 전직 교사의 사진 비망록 1980-2000〉은 엄연한 역사다. 당시를 지켜보면서 그 창을 통해 바깥 세상을 바라본 한 교사 사진가가 20년 동안의 기록을 회고로 기술한 엄연한 역사다. 사진으로 쓰는 역사, 국가가 독점하지 않는 여럿 중의 하나인 역사, 그 둘이 조합을 이뤄 대중 앞에 섰다.

〈학교 이야기: 어느 전직 교사의 사진 비망록 1980-2000〉라는 이름의 역사책을 통해 우리는 유신과 군부 독재가 남긴 그 무거운 유산을 읽어낼 수 있고, 그것이 IMF 라는 미증유의 비극과 겹쳐지면서 변태적으로 바뀐 왜곡된 학교 현장을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인격의 존중이나 평화로운 소통이 도저히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격려하고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거대한 틀 안에 들어가 버리면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국가에 의해서 하나로 단일화 된 전체만 있다. 그 안에서 학생은 기계가 생산해내는 생산품으로 전락해버리고, 학교는 공장이 된다. 그 학교라는 공장에는 생산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기록하는 출석부가 있다. 대상을 이미지로 단순하게 찍었을 뿐, 아무런 미학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았는데도, 사진이 섬뜩하다. [사진 3.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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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아이들의 얼굴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세상은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어느 혁명을 외친 사상가가 말한 바, 옛 것은 사라졌으나 새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리는 그 시절 그 현장의 곳곳에서 풍기는 악취를 완전히 제거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처절히 치르는 중이다. 그 시절 그 낡은 교실 뒤 구석 한 켠에 세워진 그 밀걸레에서 풍기는 악취가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나 코를 찌른다. [사진 4. p. 32 下] 그 밀걸레가 때로는 ‘선생’의 이름을 빌린 어느 폭군이 사용한 빳다로 둔갑하듯 말이다. 역사 국정 교과서라는 망령의 탈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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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밀걸레

필자소개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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