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사이의 선택?
한국에 대한 한 미국인 전략가의 주문 또는 명령
    2015년 10월 26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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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며칠 전에 신라호텔에서 좀 의미심장한 모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계지식포럼>이라는 거창한 명칭 하에 2015년 10월 21일에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여러 열강에서 온 ‘전문가’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한국의 전/현직 관료들이나 관료형 ‘학자’들과 토론했답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이 <세게지식포럼>에서 한 미국의 “대변인”격 ‘학자’와 한 중국의 학계 간부 사이에 좀 재미있는 토론이 벌어졌답니다.

미국에서는 존 메어샤어머 (John Mearsheimer, 시카고대 정외과)라는 사람은 “불편한 이야기를 남의 체면과 아랑곳할 것 없이 하는 전략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컨대 워싱턴에서 친이스라엘 유대인 로비가 미국 군부의 입장으로 봐서 이미 지나친 권력을 장악했으며, 미국의 정책 노선을 순전한 미국의 국익에서 이스라엘 국익으로 댕기고 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 말입니다. 미국 대학가의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기에서 “유대인”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겠지만 배경이 군부인 메어샤어머만큼 해도 된다는 것이겠죠?

메어시아머

John Mearsheimer

그렇다면 남의 체면을 모르는 미 군부의 ‘학자’형 전략가는 과연 한국 전/현직 관료들 앞에서 뭘 이야기했을까요? 예상대로였습니다. 중국이 아태지역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려 하고, 중국 국익에 불리한 미국 패권 시대의 규준들을 깨고 중국에 맞는 신규준들을 만들려 하자 미국이 이를 가만 둘 리가 없다, 결국 미국이 그 현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의 진검승부격 충돌로 갈 확률이 크다, 이런 게 골자이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여기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물론 이와 같은 경우 메어샤어머가 예상 내지 주문하려 하는 한국의 행동방식이었죠. 이것도 예상대로이었습니다. 미 군부의 전략가에 의하면 한국은 궁극에 가서 오늘날과 같은 줄타기를 그만두어 “확실한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인데 이 경우에는 중국이 아닌 미국 편을 택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안보적 고려를 억눌러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역사에 거의 없기 때문이랍니다. 글쎄, 말투를 들어보면 “예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주문”(아니면 “명령”?)으로 들리긴 했습니다. “우리를 택하라. 우리 편에 서라. 아니면….”

물론 중국의 고전적인 외유내강적 방식대로 중국 토론자들이 이런 주장에 맞붙어 “중미 갈등의 경우 중화를 택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대화의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부터 중국식 대화법이니까요.

일부 중국측 참가자들이 중국이야말로 여태까지 미국 중심 세계무역체제의 규준에 가장 덕을 많이 본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중국이 그런 규준들을 급진적으로 바꾸려는 행위자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고는 청화대학의 이희광 (李希光)라는 중국측의 중진은 아주 흥미로운 우회반론을 펼쳤습니다.

중국이 앞으로 부산부터 구라파주까지, 서울과 평양을 다 포함시켜서 “一帶一路” (일대일로)라는 국책의 일환으로 경제적 번영의 지대를 만들려 하는 것이고, 한국과는 안보 등을 뒤로 미루고 무엇보다 문화적 동질성과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는 “문화동맹”을 맺고 싶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그런 “문화” 내지 “가치”동맹의 차원에서는 사소한 정치체제의 차이 따위는 부수적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이상의 요약은 <통일뉴스>의 이 보도에 근거를 둡니다.(관련 내용 보도)

지식포럼

2015 세계지식포럼 모습

저는 개인적 취향의 차원에서는 정계와 유착돼 정치인들의 참모 노릇을 하는 ‘학자’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구미가 약한 부분이 있어, 아마도 메어샤어머도 이희광씨도 가까이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또 그런 위대하신 양반들이 저 같은 촌유를 가까이 할 일도 없지만요.

그런데 한반도 미래의 차원에서는 두 패권 국가 양쪽의 “브레인”들이 벌인 논쟁은 의미심장해서 여기에서 약간 논해보겠습니다. 미국 측의 주장이야 뻔하죠. 한국 군부를 미국이 어차피 쥐락펴락하고 전작권을 갖고 있어 전쟁이 임박하면 한국이 어차피 미국의 군사식민지가 바로 되는데, 과연 이런 데도 우리를 선택하지 않겠느냐, 이런 말투입니다.

아무래도 미국쪽 군부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거대한 육군을 상대해서 엄청난 도살이 예상되는 육상 전투의 총알받이들이 아주 필요한 모양인데, 한국의 7십만 대군이야말로 미군을 대신하여 육상 전투에서 커다란 희생을 당할 적임자라고 판단하나 봅니다.

그런데 중국 측의 입장은, 되도록이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설정하지 않고 그것만을 피할 수 있다면 중국과의 연대가 통일에의 근접 (북한을 포함한 “一帶一路”)과 중국과의 역할분담에 기반한 나름 성장의 지속을 보장해준다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이 모든 것을 다 통칭하는 카드로 “문화”를 꺼내는 것입니다. 동아시아만큼 역사를 중시하는 지역도 없는데, 한-중 교류의 시작을 위만시대의 고조선이라고 친다면 현재로서 한-중관계의 연륜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 전체보다 적어도 10배 정도 오래된 게 아닌가요?

극단적 상황에서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글쎄, 저들이 그런 최종 선택의 순간을 최대한 연기시키려고 안간 힘을 다 쓸 것만은 분명하고 나머지는 아직도 추측입니다. “지배자들”이라는 게 획일적인 그룹도 아니고 그 안에서도 각양각색의 분파, 계파들이 다 있어 그 때에 가서 어느 그룹이 행정부를 장악할 것인가부터 아주 중요한 변수겠죠.

또 다른 중요한 변수는, 만약 비교적 중도적인 그룹이 행정부를 장악할 경우, 20년 전에 김영삼이 하나회를 해체시켰듯 그 그룹이 마음속까지 친미적인 군부 내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그런 군부 쪽으로부터의 돌발적 움직임들을 봉쇄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데 만의 하나에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하다면…메어샤어머씨의 주장과 달리 한국이 어쩌면 “대중국 전선”에서 은근슬쩍 빠져버릴 가능성도 큽니다. 미국이 생기기도 전에 중화 왕조 교체를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해 이데올로기적 판단을 잘못했다가 호란을 두번이나 당한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는 이제는 패권 관계 교체에 얼마든지 더 민감할 수도 있으니까요….

미국이 제공한다는 “안보”는 한국에서는 대북 관계 이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독으로 한국과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는 북한 이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아닌, 인접 4강 중의 하나와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바로바로 나머지 3강이 개입해버리는 게 한반도니까요.

그런데 대북 “안보” 차원이라면, 단순한 “안보”를 넘어 나름의 통일 비전, 즉 “一帶一路”라는 아이디어를 추진할 수 있는 중국은 사실 미국보다 훨씬 더 유리한 “안보 제공자”일 수도 있는 거죠. 미국으로부터의 “안보”는 남북 대결의 무한정 지속을 의미하지만, 만약 한국 안보의 제공자가 중국이 될 경우 남북한과 동북3성이 하나의 커다란 경제지대로 성장되어 38선이 결국 상대화될 것은 엄청난 이점입니다.

정말 미국은 한반도에서 그렇게도 “대체가 불가능한”(indispensable) 개입자인가요? “문화 동맹” 등 중국 통치자들의 수사를 그대로 취할 건 없지만 동북아의 내재적인, 역외 열강 참견 없는 안보구조가 과연 불가능할까요?

여기에서 부디 오해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중국의 편”에 서는 것도 아니고 “一帶一路”라는 자본주의적 경제 지역화를 개인적으로 지지하거나 긍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저 같으면, 결국 그런 경제 구조 속에서 저임금 노동력의 역할을 맡을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나 인권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남북한의 중국과의 그 무슨 “동맹”보다도 남북한의 영세중립화 통일을 열망합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 남북한의 내부 정치 구조로 이처럼 쉽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기에, 그나마 덜 극우적인 한국 지배층의 구성원들이 “극단적 선택”의 순간에 메어샤어머가 원하는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는 길이라도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또 궁극적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한반도 생존의 문제를 지배층에 맡기는 것부터 문제적이죠. 밑으로부터의 “미국 총알받이 되지 않기 위한 운동”, 즉 미국이 주도할 그 어떤 대륙과의 전쟁에도 무조건 불참하자는 민중운동만이 지배블럭에 압박을 가하여 “극단적 순간”에 메어샤어머가 주문(명령?)하려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역사를 생존과 평화의 방향으로 틀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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