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간 저임금 노동 착취,
    블랙기업과 블랙바이트의 실체
    [책소개] <블랙기업을 쏴라!>(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나름북스)
        2015년 10월 17일 1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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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한 공기업에서 해고된 계약직 직원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블랙기업’이라는 용어가 점차 알려지고 있다. ‘블랙기업’은 주로 젊은 노동자에게 불법, 편법적으로 비상식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기업을 일컫는 말로, 일본에서는 매년 시행하는 유행어 대상 순위에 오를 만큼 파급력이 크다. 한국의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에서 블랙기업에 대한 폭로와 공개 운동을 벌인 2014년에는 청년 노동자를 울리는 부조리한 노동 실태와 열정 착취가 사회적으로 알려진 바 있다.

    블랙기업의 행위는 가혹한 장시간 노동 강요와 저임금, 시간외 노동에 대한 수당 미지급, 정규직 전환 회피, 실적 강요, 직장 내 왕따와 성희롱, 부당한 업무 지시 등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기업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행해진다는 특성이 있어 더 심각하다. 이로 인해 일자리 경쟁을 겪고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게 된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 자국의 현실을 비꼬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처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축(社畜)동화’라는 패러디가 유행했다. 스스로를 회사의 ‘가축’으로 지칭하며 회사의 어떤 지시도 거스를 수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자조한 것이다. <블랙기업을 쏴라!>는 이처럼 블랙기업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의 현실을 냉엄하게 고발한 르포르타주다.

    블랙기업

    한국과도 닮은 일본 블랙기업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

    <블랙기업을 쏴라!>에는 기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젊은 노동자를 부당하게 착취했는지 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블랙기업에서 일하다 ‘버려진’ 청년, 자녀를 ‘과로사’로 잃은 유족, 우울증을 얻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용기 있게 나서서 블랙기업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생하게 증언한 덕분이다.

    제1장 ‘와타미’의 사례에서는 과도한 노동시간 문제가 부각된다. 와타미는 일본 내에 6백여 곳의 체인점을 거느린 거대 프랜차이즈로, 기존의 이자카야에 패밀리 레스토랑 형식을 결합하여 한국 언론에서도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소개된 기업이다. 이런 와타미에서 일한 직원들이 매일 12시간 가량, 월 140시간이 넘는 잔업이라는 어마어마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언과 함께 일일 매출 목표액을 맞추지 못하면 수당이 없는 잔업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실상이 폭로됐다.

    이밖에도 “24시간 365일, 눈 떠 있는 시간 동안 무조건 일해라”는 와타미 회장 와타나베 미키 씨의 발언, 회장의 이념집 외우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직원 교육, 도시락 배달 사업을 회장이 출마한 선거에 활용, 개호 사업 분야의 사고 은폐 등의 문제와 더불어 2008년에는 과로에 의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여성이 자살하는 등 와타미는 최근까지도 각종 부당행위로 구설에 올라 일본 블랙기업의 대표격이 되어 있다.

    제2장에서 다뤄지는 일본 ‘유니클로’ 또한 퇴직한 점장 여럿이 노동 실태를 증언하며 문제점을 고발했다. ‘이름뿐인 관리직’으로 채용되는 젊은 점장들은 대다수가 비정규직과 파트타이머로 이뤄진 직원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몇 시간을 일하든 잔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유니클로의 월 상한 노동시간은 240시간이었지만, 증언에 따르면 월 33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일본 유니클로는 대졸 신입사원의 절반이 3년 이내 이직, 휴직자의 절반이 우울증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밖에도 롯데리아, 카페 벨로체, 아키타서점, 하우스식품 등 프랜차이즈와 출판사, 식품회사 등을 막론하고 블랙기업의 부당한 실태를 실명으로 고발하고 있다. 단기간으로 나누어 고용계약을 반복하다 법률이 정한 정규직 전환 시점이 다가오면 해고하는 방식, 이벤트 당첨 조작과 같은 내부 부조리를 지적했다가 괴롭힘당하는 사연, CCTV 감시를 넘어 휴대전화 GPS로 노동자를 위치 추적하는 만행 등은 극단적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없었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게다가 일본보다 떨어지는 청년 고용률,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 일본에 비해 많은 비정규직과 낮은 정규직 전환율 등 한국의 청년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도 작지 않다. 더구나 한국 특유의 조직 문화와 소통 방식, 기형적인 인턴, 수습, 열정페이 등의 착취 문제는 일본 블랙기업의 문제를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일본 사회와 정치권이 블랙기업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분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블랙기업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일본의 단결 사례와 관련 법안

    블랙기업의 횡포를 고발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블랙바이트(아르바이트의 블랙기업 버전)’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노조와 활동을 소개하며, 일본공산당이 제출한 ‘블랙기업 규제법안’ 요강을 다루거나 ‘블랙기업 대처법’을 실은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일본 ‘수도권학생유니온’의 결성 및 조언, 블랙기업 관련 변호사 인터뷰 등도 우리 사회는 블랙기업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활용 방안이 될 수 있다.

    ‘블랙기업 규제법안’에는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시간 관리대장을 정확하게 작성, 연간 잔업을 360시간으로 한정, 연속 출근 제한,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수당 없는 ‘공짜 잔업’ 적발시 두 배 지급, 이직자 수 공개, 구인광고에 임금 내역 명시 등 노동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이 담겼다. 노동조합과 상담하라, 출퇴근 시간과 잔업수당 미지급 내역을 메모해 두라, ‘연수입 000만 엔 가능’과 같이 최대치를 광고하는 회사를 조심하라는 등의 조언이 우리의 처지에도 부합한다.

    <블랙기업을 쏴라!>가 기업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르포가 게재된 <신문 아카하타>가 기업의 광고나 후원을 받지 않는 순수한 독립언론이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특성을 살린 기획취재는 신자유주의적 빈곤의 세계화와 노동시장 황폐화가 국경을 초월한 지구적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소위 ‘일류기업’으로 불리며 더러는 본받아야 할 성공모델로까지 추켜세워지는 블랙기업의 민낯을, 차후에 이루어진 추궁에 어떻게 반응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면서 파헤쳐 2014년 일본저널리스트회의(JCJ)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블랙기업의 실태 인지나 법제도 개선이라는 경계에 갇히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고민을 던진 것이다. 문제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변화에 기여하고자 한 <블랙기업을 쏴라!>와 같은 르포르타주의 시도와 더불어 증언이나 고발, 단결과 연대 등 다양한 저항의 노력이 사회, 정치적 대응 또한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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