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림책 이야기]『커졌다!』(서현/ 사계절)
        2015년 10월 16일 1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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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의 흐린 날씨

    저는 지금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와있습니다. 날마다 흐리고 비가 옵니다. 처음엔 날씨가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흐리고 비오는 날씨 때문에 놀러갈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열심히 일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순간, ‘이래서 독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걸까?’ 하는 우스개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가 오면 집에서 책 읽으며 놀기에 딱 좋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 오는 날 책과 함께 방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던 옛 추억이 눈앞을 휙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래서 독일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걸까?’하는 추측까지 해 봅니다.

    도서출판 북극곰의 부스 앞에는 <Books from Korea>라는 전시부스가 있습니다. 도서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출판사들이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위탁하여 책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낯익은 우리 그림책들이 서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연 제 마음을 사로잡은 책은 바로 서현 작가의 『커졌다!』입니다. 흐리고 비 내리는 프랑크푸르트의 날씨와도 연관이 깊은 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키가 클까요?

    키가 빨리 크기를 바라는 꼬마가 있습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보고 팔다리가 빠질 만큼 잡아당겨도 보고 천정에 발을 붙이고 물구나무도 서 봅니다. 하지만 키는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책을 보며 놀던 꼬마는 책에서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꼬마는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가 자기 발을 땅에 묻고 비를 맞습니다. 사람도 비를 맞고, 광합성을 하고, 흙에서 양분을 얻으면 나무처럼 쑥쑥 자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꼬마는 정말 키가 커졌을까요?

    커졌다

    커졌다!

    『커졌다!』라는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꼬마는 키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꼬마의 키가 얼마나 커졌을지는 여러분 스스로 상상해 보고 이 책을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책 『커졌다!』는 독자들에게 바로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커졌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처음엔 키가 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대해 상상합니다. 커다란 팔이 꼬마의 팔다리를 잡고 늘이는 장면이나 테이프로 천정에 발을 붙여서 물구나무를 세운 장면은 이미 이 책이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명백하게 알려 줍니다.

    서현 작가는 키가 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장난삼아 던질 수 있는 말들을, 작가 스스로 상상하고 실제로 그렸습니다. 지금 제 눈앞에는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서현 작가의 모습이 선합니다. 남들은 그저 말로만 해보는 상상을 서현 작가는 실제로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장난삼아 해본 한마디 말이 진짜 그림책으로 커졌습니다. 유쾌한 상상이 즐거운 예술 작품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정말 커졌다!

    그림책 『커졌다!』는 상상놀이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이 서현 작가의 상상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현 작가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론 그래서 더 즐거웠습니다. 서현 작가의 상상이 제 상상을 넘어서는 순간, 저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래! 이 맛에 책을 보는 거지!’ 하며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감탄의 순간이 지나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실제로 그 꼬마가 서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키가 크기를 바란 꼬마가 아니라 작가가 되기를 바란 꼬마 말입니다.

    작가가 되기를 바란 꼬마가, 작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상상을 하고 그 수많은 상상을 실제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꼬마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상상놀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 아니라 일장춘몽이 진짜 ‘인생’이 되었습니다. 상상이 정말 커져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림책 『커졌다!』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인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사람들

    오늘 북극곰 부스를 찾은 어느 독일인은 한국인이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먼저 금속 활판 인쇄를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그래서 당신네 책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 같다고 칭찬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책을 훨씬 좋아한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그 독일인은 제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재독 간호사로 43년을 살아온 어느 아주머니입니다. 자녀들이 한국말을 잘 못해서 우리 책을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간 자녀들이 독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고향인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데 한국에 사는 친척들 역시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이제 한국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상상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상상을 합니다. 더불어 온 세상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책을 만들어 책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상상을 합니다. 선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꿈을 이루면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지 못하도록 부디 선한 사람들이 더 행복한 꿈을 꾸고 실천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상상한 것이 곧 현실이 된다고 말하는, 정말 거짓말 같은 진짜 그림책! 바로 서현 작가의 『커졌다!』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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