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와 억지가 판쳐
    "제발 교과서 좀 보고 말하라"
    주체사상 교과서 명기하라는 게 교육부 지정사항
        2015년 10월 15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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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청 공천권 갈등이 한창이던 정치권에선 갑자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반 논쟁에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이념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이 내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 논란은 이념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야당은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명예훼손으로 고발 방침을 밝혔고 역사학계는 물론 여론의 반응도 좋지 않다. 새누리당이 단 하루 만에 현수막 철수를 결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분열 말라’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불 붙은 이념 갈등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주체사상’ 현수막, 하루 만에 철수해놓고도…
    주체사상 무비판 수용 우려 주장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간사인 강은희 의원은 15일 오전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모든 교과서가 그런 건(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제 철수를 했다”며 “그런 부분은 잠재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 의원은 “그렇지만 전반적인 입장에서 예를 들어서 과거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표현이 강했다면 다소 완화되어 있지만 그 정신은 어느 정도 담겨 있는 부분도 일부 있다고 본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강 의원은 앞서서도 “김일성 유일체제나 주체사상이 교과서에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며 “이것을 접하는 우리 학생들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에 ‘히틀러의 나치 사상이든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든 나쁘다는 걸 알리려면 그 내용이 뭔지는 기술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도 강 의원은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나. 나쁜 것을 알리려면 이런 게 있는데 나쁘다고 명확하게 기술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역사교과서 집필자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이날 같은 매체에서 새누리당 현수막 논란과 관련해 “참담한 생각이 든다”며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렇게 국민의 한 사람인 집필진을 비롯한 역사교사들을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가. 그런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길게 설명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주진오 교수는 “전체 교과서에 현대사 부분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북한에 대한 서술은 극히 일부분”이라며 “예를 들면 저희 교과서를 보시면 ‘김일성은 이를 바탕으로 1967년 주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확립하였으며 이는 김일성의 권력독점과 우상화에 이용되었다’라고 (서술돼 있다). 이걸 보고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학습하는 겁니까. 학습을 하더라도 비판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 교수는 이어 “어쨌든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주체사상을 설명 안 하고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주체사상에 대한) 이해를 한 다음에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것을 여기서 분명히 ‘권력독점과 우상화에 이용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나”라고 비판했다.

    주 교수는 또한 “심지어 (교육부는) 이번 2015년 교육과정 제정에도 주체사상을 쓰라고 명시했다”며 “김무성 대표가 왜 우리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느냐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 주체사상을 배우게 한 게 교육부다. 그렇다면 교육부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현수막

    13일 국회의사당 주변에 걸린 새누리당 현수막(정진후 의원실)

    교학사 집필자 권희영 “역사학계 90% 좌편향”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방침을 밝히고 난 후 진보성향 역사학자들의 입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제발 교과서 좀 보고 말씀을 하세요’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인사들이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왜 배워야 하냐’고 강변하면,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 7종의 역사교과서를 들고 나와 일일이 밑줄 긋고, 형광펜을 칠해가며 기존 역사교과서가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결국엔 한숨과 함께 “교과서를 보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설명해도 상대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좌편향됐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한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번 국정교과서 논란이 좌, 우를 떠나 좋은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취지라며 긍정 평가했다.

    권희영 교수는 이날 오전 KBS 라디오에서 “좋은 교과서, 좋은 국정교과서 하나가 나오면 7개의 나쁜 교과서, 즉 좌편향 교과서가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또 “여태까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민중사학이라고 하는 것이 80년대부터 등장하고 난 이후에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 민중사관에 아주 직접적으로나 조금이거나 많거나 간에 거기에 아주 깊이 빠져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좌편향 돼있다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건데 그 비율이 너무 많다. 아마 90% 정도는 좌편향 성향일 것”이라고 했다. 역사학계 90%가 좌편향돼 있어서 객관적인 역사교과서를 집필할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권 교수 자신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가 극우적이라는 지적에 관해서 “우편향 논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들이 좌편향 됐다고 하니까 그것에 상대해서 덧붙인 말에 불과하다”며 “우편향이라고 하는 말이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충실한 의미라고 한다면 그건 아무리 우편향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거다. 좌편향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MBC <백분토론>에서의 토론은 정부여당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여론 호도에 불과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토론자로 출연한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위원인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모 교과서 주체사상에 대한 기술이 있지 않습니까. 있을 수 있는데 학생들한테 굳이 이걸 애기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라며 정부여당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이날 토론에서 8종의 검인정 교과서와 각종 자료를 들고 나와 문제가 되는 부분을 확대하고 지적하며 일일이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박 교육홍보실장은 “(교육부 지정교육 과정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며) 2015년도 교육부에서 지정한 교육과정이다. 여기 보면 ‘북한의 변화, 남북간 평화통일노력’에 주체사상, 세습체제, 천리마 운동을 교과서에 명기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박 교육홍보실장은 “이건 전 총장께서 말씀하신 문제의 교과서다. 교과서 제목이 ‘북한의 세습체계를 구축하다’이다. 주체사상이 세습체제의 명분이 됐다고 적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하는데), (교과서엔) ‘유일지배체제’, ‘정적을 처단하고’ 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친 것은 맞는데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오늘 시청자 여러분들이 꼭 판단해달라”며 “왜냐면 이건 한국 역사학계 명예와, 이 교과서 필진들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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