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의 풍경을 바라보다
    [책소개] <이강국의 경제산책>(이강국/ 책세상)
        2015년 10월 10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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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실증적 분석으로 세계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을 감수하고 해제한 경제학자 이강국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일본 리츠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인 이강국은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빈곤과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온 소장 경제학자로, 주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제도와 문화 등 경제성장의 근본 요인과 평등주의적 성장모델에 관한 연구를 다년간 수행해왔다.

    2011년 8월부터 최근까지〈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수정 보완하고 일부 미발표 원고를 추가해 엮은 이 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불평등과 양극화를 비롯해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제 현안들을 국제적 감각을 갖춘 국내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비평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딱딱한 이론과 복잡한 수치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강국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의 핵심 이슈를 골라 일상의 언어로 99% 대중을 위한 살아 있는 경제학을 탐구한다. 노동과 실업, 빈곤과 불평등, 복지와 증세, 성장과 분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가난한 이웃의 살림에서 세계경제의 쟁점까지,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대안적 경제학의 흐름까지를 아우르는 이 책의 시선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약자를 위한 따뜻한 경제학을 향해 있다.

    경제산책

    이 책은 칼럼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따라 6부로 구성되었다. 먼저 1부〈불평등과 가난의 경제학〉에서는 ‘1 대 99’로 심각해진 상위 1%의 소득 집중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 빈곤의 악순환과 부의 세습, 성장 대 복지 프레임과 분배정책에 관련된 불평등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2부〈격동하는 세계경제〉에서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양적완화, 그리스와 유로존의 위기,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중국 정치의 세대교체 등 거대한 변화에 휩쓸린 세계경제의 흐름을 살피며, 3부〈이슈로 보는 세계경제〉는 전쟁과 인구, 질병과 비만, 기후변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글로벌 이슈를 다룬다.

    이어 4부〈노동과 사람들〉은 노동문제에 초점을 맞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청년실업, 강제노동과 과도한 노동시간을 비롯해 취약한 노동자의 권리를 조명한다. 5부〈경제로 읽는 한국사회〉에서는 식민지배와 국가주도 성장, 재벌기업 특혜 등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한국경제의 특수성과 과제들을 짚어낸다.

    마지막으로 6부〈새로운 경제학 단상〉은 기술혁신의 경제적 영향과 최신 경제학 분야의 소개, 특히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을 둘러싼 열풍과 논쟁을 탐구하고 새로운 경제학의 출현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를 이해하고 그것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일은 더불어 잘살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이다.” 인간을 우선하는 따뜻한 경제학의 시선으로, 흥미로운 사례와 일상에 밀착된 설명을 통해 국내외 첨단 이슈들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라는 보다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시각이 생길 것이다. 덧붙여, 예리한 풍자로 유명한 장봉군 화백의 만평이 함께 수록되어 보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99%를 위한 경제학 이야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일간지에 연재된 칼럼의 특성상,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생활밀착형 이슈를 소재로 가져왔다. ‘회장님의 연봉’과 ‘개천 용’이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소득상위 계층이나 계층이동성 같은 문제를 친근하게 풀어내고, 치킨집 붐을 통해 영세 자영업의 현실을 점검하는가 하면, 한 장의 셔츠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세하게 따져보기도 한다.

    세월호와 경제위기를 비교하고, 땅콩 회항으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논한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글은 이례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려 읽는 이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그 밖에도 포화 속 가자 지구, 에볼라바이러스, 조세회피처 버진아일랜드, 올림픽 같은 해외토픽까지 다양한 소재를 끌어들여 경제를 설명한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일본의 정책 변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둘러싼 경제학계의 논쟁 같은 세계적 이슈에는 더욱 많은 비중을 할애해 집중 탐구했다.

    이처럼 삶의 다양한 맥락과 직접 연관된 경제 이야기들은 각각 하나의 퍼즐조각이 되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현실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게 해줄 뿐 아니라 통시적인 변화를 읽어내는 데도 유효하다.

    이 책은 식민지배와 근대화, 국가가 주도한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시장근본주의와 금융개방으로 인한 위기 등 한국경제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높은 부채와 저성장, 불평등이 그런 흐름과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우려 속에서 2012년 대선을 전후해서는 심각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여야 모두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으나 좌초된 바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의 관계, 투표의 경제학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경제를 바꿀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비정규직을 다룬 드라마의 인기를 보며 그와 대비되는 비극적인 현실을 떠올리거나, 대중문화 속 복고열풍에서 팍팍한 현실과 금융위기 이전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읽어내는 것은 비단 경제학자만은 아닐 것이다. 1%가 아니라 99%가 주인공인 경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한국사회 곳곳에 도사린 역설과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경제의 격동을 진단하는 거시적 시각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11년 이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경제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5년간의 이 크고 작은 흐름은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거시적인 변화를 조망하게 해주는 좋은 지표가 된다.

    우선 2011년 가을 뉴욕에서는 ‘우리는 99%다’라고 외치던 시민들의 월가 점령시위가 일어났다. 상위 1% 월가 금융가들의 탐욕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불평등한 현 체제를 비판한 이 시위는 그전까지 간과되었던 1%의 소득 집중과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경제학의 내부로 불러들인 사건이었다.

    한편 국제적으로 장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대두하며,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연준이 세 차례 양적완화로 돈을 뿌렸고, 일본에서도 아베노믹스로 알려진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2014년에는 이례적으로 한 경제학자의 저작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그리스를 둘러싼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국제 금융체제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고, 환경문제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제적인 협력도 여전히 해법을 모색 중이며, 로봇으로 대체되는 일자리, ‘양면시장’과 ‘공짜 점심’을 불러온 급속한 기술혁신은 생활경제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모두 아우르는 것은 물론, 주류경제학 내부의 논쟁에서 비주류경제학의 가능성까지 다양한 연구를 섭렵하며 경제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정책의 유효성에 관한 거시경제학적 논쟁, 자본주의에 내재한 부와 불평등의 동학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피케티의 연구와 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예리한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기회의 평등과 정당한 노동, 행복한 삶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간을 냉철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여기고 시장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면 성장과 효율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근본주의는 이윤의 극대화와 무한 경쟁,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이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국제금융기구 등이 변화된 정책을 선보이고, 다수의 기업들이 표면적으로나마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여러 경제학 실험들이 인간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 공평함에 민감하며 호혜적임을 보여준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 역시 따뜻한 경제학에 대한 요청이다. 현재의 기형적인 1 대 99의 사회에서, 다수의 대중이 행복할 수 있는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촉구한다. 빈곤층의 생활수준과 노동자들의 죽음에 통탄하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층의 불안을 우려하며, 성별과 외모에 따른 차별에도 관심을 환기한다.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탐구하기도 한다. 부조리한 경제구조 자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고 적극적인 분배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나아가 국제적인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어내기까지 무엇보다 99% 시민들 스스로의 인식의 전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풍경을 의미 있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이강국의 경제산책 : 대한민국 99%를 위한 경제학 이야기》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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