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국어원, '낮져밤이' 신어 등재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는 등재 안해
    남녀차별적 인식 드러나는 신어 무더기로 선정
        2015년 10월 07일 05: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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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어원의 모호한 신어(신조어) 등록 기준이 도마에 올랐다. 특정 성을 폄하하는 단어나, 최근 모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으로 유행어가 된 ‘낮져밤이’는 신어로 등록한 반면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같이 사회적 소수자를 지칭하며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용어는 표준어 등록은 물론 신어조차에도 등록시키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국립국어원에서 제출받은 신어 자료 10개년(2005~2014년)을 분석한 결과, 남녀차별적 인식이 드러나는 신어가 무더기로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약자와 소수자 관련 단어가 배제되는 등 많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10년간 매년 334개에서 588개 사이의 신어를 발표해왔다. 국립국어원은 신어검색기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뉴스에서 단어를 취합한 뒤 부적절한 단어를 선별해 신어 선정에서 제외한다. 2012~2014년 비공개 신어 탈락 기준은 ▲비속어 ▲사회통념상 부정적 어휘(비하어) ▲특정 도시나 개인, 단체 등과 관련된 어휘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휘 ▲한국 사회 현상과 관련이 없는 어휘 등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0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를 발간하며 성별화된 언어표현 최소화, 과도한 외모 관련 표현 자제, 특정 성역할을 고정관념으로 결부시킨 성차별적 표현 자제, 비하적 표현은 다른 말로 대체 등을 제안한 바도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등록한 신어 중엔 다수가 성차별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기홍 의원실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4년 10년간 선정된 신어 총 3663개 중에서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총 288개로 이 중 ‘~녀(걸)’는 196개, ‘~남’은 92개로 여성을 지칭하는 신어가 2배 이상 많았다. 이 중 여성 지칭어의 11.7%(23개), 남성 지칭어의 5.4%(5개)는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비하어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오피스맨’은 ‘사무직에 종사하는 남자’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표기하는 한편 ‘오피(스)걸’은 오피스텔에서 성매매하는 여자로 뜻풀이 돼있다. ‘보슬아치’, ‘별창’ 등의 경우 애초에 배제되어야 할 명백한 비속어도 신어로 선정이 됐다가, 나중에 비공개(탈락)로 분류됐다.

    이 밖에도 ‘품절남-품절녀’, ‘힐링남-힐링녀’와 같이 양성이 함께 쓰일 수 있는 단어는 288개 단어 중 259개나 되지만, 실제로 함께 등재된 신어는 33개뿐이다. ‘애정 결핍녀’, ‘페북녀’, ‘츤데레남’과 같은 신어는 양성으로 쓰일 수 있음에도 특정성으로만 지칭되어 있다.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의 대부분이 ‘청글녀(청순하고 글래머인 여자)’, ‘잇몸녀(웃을 때 잇몸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여자)’, ‘스크림녀(공포영화 범인이 쓰고나온 괴기스러운 가면처럼 흉하게 생긴 여자)’과 같이 외모비하·칭송·묘사 등 외모와 관련됐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었다.

    반대로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츤데레남(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 ‘뇌섹남(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 ‘꼬돌남(꼬시고 싶은 돌아온 싱글 남자)’과 같이 대부분 생활상에 관한 것이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었다.

    신어 등록에서 탈락하는 기준 또한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신어 등록 기준을 보면 비속어, 비하어 등을 배제하고 있지만 선정된 신어 현황을 살펴보면 ‘존-’, ‘개-’가 포함된 ‘존잘남’, ‘존예’, ‘존맛’, ‘위꼴’, ‘개공감’, ‘개알바’, ‘진지병자’ 등 비속어/특정대상 비하어가 버젓이 남아있다.

    한 인기드라마로 유행어가 된 ‘시월드’는 신어 등재에서 탈락했다. 반면 ‘시월드’에서 유래한 ‘처월드’는 신어에 등록됐다. ‘처월드’보다 ‘시월드’가 더 익숙한 단어임에도 남성전용 단어만 등재됐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낮져밤이’는 등재, ‘낮이밤져’는 탈락, ‘약혐’은 등재, ‘극혐’은 탈락시켜, 기준을 알 수 없는 단어 등록·탈락이 허다했다.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비속어 등이 버젓이 신어에 등록되고 있지만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성소수자’라는 단어는 표준어 등록은커녕 신어 목록에도 올라오지 못했다. ‘퀴어’,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대안학교’, ‘자궁경부암’, ‘발달장애’도 마찬가지다. 여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에도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만 뜻풀이 한 후 번복하는 등 논란이 된 바 있다.

    유기홍 의원은 “언어는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인데 신어 목록조차 편견으로 가득차서 되겠는가”라며 “편리함과 유행보다는 올바름을 따라 성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배려하는 언어문화를 위해 국립국어원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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