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 그 낯설고 익숙한 이름
    [번역] '혁명의 가능성'(Christoph Menke)
        2015년 10월 06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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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크리스토프 멘케의 <혁명의 가능성>(Merkur: Deutsche Zeitschrift für europäisches Denken, 2015년 7월) 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크리스토프 멩케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와 동 대학 연구소 Normative Orders에 재직 중이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서 출발하는 사회비판이론의 한 조류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3세대에 속한다고 평가된다. 주저로는 «법과 폭력Recht und Gewalt», «힘Kraft» 등이 있다. «인권철학 입문», «미학적 힘», «예술의 힘»은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 논문은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가능성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주체의 실천 능력이라고 바꿔 새겨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짧게 잡아 금융위기 이후 최근 5년간의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이다.

    모두가 위기를 말하고 그 중 일부는 진지하게 혁명을 말하는 시대 속에서 저자는 그 위기와 혁명의 담론들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위기를 체험하는 동시대인들 전부가 이 글의 잠재적인 독자일 것이나, 이 글은 그들 중에서도 혁명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고 또 프랑스의 신좌파들이다. 이들과 함께 저 질문과 이들의 답변들을 한번 곱씹어 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역사적 배경 외에, 이 글의 지적 배경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레닌을 다시 읽으려는 최근 좌파 이론들의 움직임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알랭 바디우가 그랬고, 슬라보예 지젝이 그랬다. 이 글은 이런 담론들과 접속하면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이 논문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기 적적해서 출간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이 논문을 뽑아 놓고 힐끔거리고 있었다. 밥숟가락을 내려놓을 만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문득 <국가와 혁명>을 함께 읽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 혹은 다른 미래를 꿈꿨고 지금도 꿈꾸고 있을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디앙에 연락을 해서 지면을 허락 받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번역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번역 원칙은 저 상상 속의 나의 독자들과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어의 구조를 버리고 의미만 취해야 하는 문장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 가운데 의미도 함께 버린 곳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부분은 추후에 교정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이렇게 말동무를 찾을 수 있어서 기쁘다.<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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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케

    크리스토프 멘케

    혁명의 가능성

    출판물, 잡지, 토크쇼, 세미나, 그리고 연극무대, 전시회들에서 다시 혁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불과 한 세대 전에는 지금처럼 미학자들이, 또 지난 5년간처럼, 혁명가들이 북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혁명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는다.

    위기와 혁명

    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개념의 역사를 연구해왔던 역사가는 이 현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근대는 원래 그랬다. 30년 전에 코젤렉은 이렇게 썼다.“계몽주의 시대 이래 혁명이라는 개념은 붐을 맞았다. 부침은 있었지만, 일관적이었다.(Reinhart Koselleck, Revolution als Begriff, Zur Semantik eines einst emphatischen Worts In: Merkur, Nr. 433, März 1985)”혁명이라는 개념과 담론은 근대에 항상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식은 달랐다. 지금의 혁명 담론 붐은, 근래의 마지막 붐과 근본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마지막 혁명 담론의 붐은 1989년 전후, 유럽의 중부와 동부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되었던 때였다. 이 때 혁명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으로 해석되었다. “오늘날의 사건들인데도 혁명이라는 말은 회고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미 벌어진 혁명을 계승하며 따라잡는”(Habermas) 혁명만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타당한 혁명처럼 보였다. 이미 일어났던 혁명이란 부르주아 헌법 질서를 구축하는, 다시 말해 법치국가의 시스템과 인민주권 원리를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실행시키고자 했던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7월 혁명의 마리안)

    이러한 프랑스 혁명에 비교하면 이후의 혁명들은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가는 혁명처럼 보였다. 자유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을) 더 이상 혁명들을 반복할 필요가 없게 해줄 마지막 혁명이라고도 생각했다. 혁명은 이렇게 계승되며 반복되는 혁명이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있었던 것과 다른 혁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혁명의 “고유한 특징”은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념이 거의 없다”(Jürgen Habermas, Die nachholende Revolution. Frankfurt: Suhrkamp 1990)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지금 붐을 이루고 있는 혁명 담론은 저들과 완전히 다르다. 혁명에 대한 오늘날의 생각은 미래적이고, 전진적인 의미를 회복했다.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하게 되었다. 혁명은 현재의 생각에서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향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혁명 담론 붐의 문제도 있다. 혁명은 다른 미래로의 도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담론은 열악한 현실의 궤도에 붙잡혀 있다. 현실은 위기로 체험된다. 극단으로 치닫는, 점점 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위기가 현실을 표현한다. 재정 위기, 경제적 위기, 정치적 위기, 환경적 지리적 도덕적 위기, 정당성 위기. 이런 위기들은 오늘날 혁명 담론 붐의 자양분이다. 혁명은 위기의 탈출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에서 혁명은 위기를 ‘표현’할 뿐이다. 혁명의 의미는 위기를 해결한다는 데 있다. 혁명이 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명 담론 속에 담긴 생각이다. 혁명은 위기의 필연적 결과다.

    그런데 위기와 혁명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양자는 확실히 관련된다. 위기 없는 혁명은 없다. 그러나 위기가 저절로 혁명을 낳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볼프강 스트렉의 정확한 통찰이었다. 그는 혁명이 온다는 저 담론에 그렇게 반박했다. 어떻게 자본주의가 끝장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본주의는 내적 위기로 인해서 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몰락이 필연적으로 혁명을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혁명은 자본주의의 끝이 아니다.

    혁명은 새로운 것, 다른 것의 시작이다. 그 경우에도 그러나 “역사적인 현상인 자본주의가 새로운, 더 나은 사회의 전망의 등장과 함께 망할 수 있다”는 가정은 그저 “선입견”이다. (Wolfgang Streeck, Wie wird der Kapitalismus enden? In: Blätter für deutsche und internationale Politik, Nr. 3, 2015) 위기로 인해 혁명은 시급해지고 필요해진다. 그렇지만 위기가 혁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위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오늘날 혁명 담론 붐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혁명 담론에서 혁명은 필연성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혁명은 위기 시에 필연적으로 올 무언가이다. 혁명을 필연성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혁명을 순전히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혁명이 그저 사건으로서 일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근대적인 의미의 혁명은 단순히 천체의 운동이나 정치질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변화가 아니다. 이런 변화는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근대적인 의미의 혁명은 오히려 어떤 “새로운 출발”(Hannah Arend)이고 “새로운 지평”(Koselleck)을 여는 것이다. 그러니 혁명은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리고 어떻게? 이 질문은 혁명을 필연적으로 올 사건으로 생각할 때 가로막힌다. 혁명은 “행위자와 행위에 관련되는 동사”이다. 혁명은 “혁명하기”이다(Reinhart Koselleck, Historische Kriterien des neuzeitlichen Revolutionsbegriffs. In: Ders., Vergangene Zukunft, Frankfurt: Suhrkamp 1979).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그것의 필연성 (혹은 우연성)에 따라 규정한다. 이와 달리 인간의 실천은 가능성의 측면에서 이해한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자. 그것이 사건으로서 벌어진 변화일 때, 우리의 관심은 그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지,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인지를 묻는 데 그친다.

    반면 그것이 누군가가 실천해서 생긴 변화라면, 우리의 관심은 그와 다르다. 이 때 변화는 누군가가 실천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그 실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누가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는지를 질문한다. 이 경우에 대해서는 벌어진 일의 행위자와 그의 실천 능력에, 그런 의미에서 가능성에 관심을 가진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고, 자본주의의 종국이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필연적이라는 말은 혁명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혁명은 필연성이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다. 누가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필연성에 관한 담론에서는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지는 게 없다.

    능력과 훈련

    오늘날 혁명담론은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배제하거나 생략한다. 이것은 실수나 태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 했던 모든 시도들이 공통으로 빠졌던 문제를 드러낸다. 혁명에 관한 좌파 이론들은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모두가 풀 길이 없는 문제에 빠졌다. 문제는 이렇다: 혁명의 실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면, 진정한 혁명에 대한 규정이 아니게 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이들에게 혁명의 가능성의 질문은 혁명의 주체가 누구냐 이었다. 혁명적 주체는 위기 때문에 붕괴될 현 사회 속에서 탄생한다. 이것이 혁명의 주체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답변이었다. 몰락할 현재 사회가 미래사회를 낳는다. 이것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제국” 즉 현재의 세계질서는 “어두운 밤”과 같은 위기 속에서 “혁명의 잠재력”을 배태한다. “제국은 폭력적인 명령기계뿐만 아니라, 그것과 나란히 대안도 만들어낸다.”(Michael Hart/Antonio Negri, Empire. Die neue Weltordnung. Frankfurt: Campus 2002)

    이러한 논리를 우리는 레닌에서도 볼 수 있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성된 우편 시스템이 “사회주의 경제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혁명을 위한 “당면 과제”가 “인민 경제 전체를 우편 모델에 따라 조직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이하게 들리는 이러한 제안 뒤에는 단순하고 또 부정하기 어려운 생각이 놓여 있다. 그 생각은 이런 것이다. 건설되어야 할 혁명적인 사회는 “자본주의가 이미 낳은 것”을 통해서 조직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모든 인민이 실제로 국가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수백만의 노동자를 교육하고 훈련시킴”으로써 해냈다. 훈육은 물론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착취를 위한 훈육은 역으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러니 자본주의가 자신을 혁명적으로 전복시킬 주체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레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로자 룩셈부르크와 “서구”마르크스주의는 비판했다. 레닌의 저 사고방식에서 이미 혁명 이후 러시아의 미래는 예견된다. 혁명 이후 소비에트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체제와 똑같은 억압체제로 전도되고 만다. 레닌은 자본주의적인 훈육이 만들어낸 노동자 주체를 혁명의 주체와 동일시했다. 훈육된 주체가 바로 혁명적 주체였다. 레닌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혁명이 “임박했고, 쉽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혁명의 결과 탄생한 국가가 시민들을 자본주의에서와 똑같이 훈육하고 억압하는 체제가 된 것은 그러니 놀랍지 않다. 레닌의 노력이 현실 사회에서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기에, 혁명이 이루어졌지만, 혁명의 질서에서 혁명적 성격은 증발해버렸다. 혁명의 성공이 확실해졌지만, 만족스러운 혁명일 수는 없었다.

    레닌

    연설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이론의 이런 역설이 오늘날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이어지는 지난 20년 혹은 30년간 프랑스 좌파 이론들을 낳는다. 이 이론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이론이 빠져 있는 역설은 계몽주의 자체가 빠져 있는 역설이라고 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에서 푸코는 이것을 “자율성과 능력과 역설”이라고 불렀다. 계몽주의는 “자율성의 성장”이 “능력의 성장”과 같은 것이고, 능력이 커질수록 자율성도 커진다고 낙관한다.

    혁명의 주체의 능력에 대한 레닌의 이론은 이런 계몽주의 낙관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능력이 곧 자율성과 해방을 뜻한다. 푸코가 생각하기에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훈육 없이 능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훈육이란 자율성과 해방에 반대되는 것, 즉 자율성과 해방의 장애물이다. 자율성을 얻고 해방되려면 능력이 필요한데, 능력을 위해서는 먼저 훈육되어야만 하는 현실. 이러한 현실은 능력과 해방을 동일시하는 낙관주의를 좌초시켜 버린다.

    그러니 지금 이미 존재하는 주체의 능력은 조련하고 훈육시키는 사회적 과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주체는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혁명적 주체는 결코 사회적 훈육으로 형성된 능력들의 다발 같은 것일 수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형성되고 역사적으로 규정된 형태의 주체는 혁명의 주체일 수 없다. 혁명적 실천 능력을, 즉 현재 사회로부터 해방을 이해하려면, 계몽주의적인 주체성 개념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훈육을 통해서 형성된 실천능력이 해방을 가져온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미겔 아방수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같은 사상가들은 그래서 다른 정치를 탐색한다. 이를 위한 첫 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오류를 피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오류는 혁명적 주체를 사회이론적으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치적인 계급을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하고, 정치가 사회적인 것을 재현한다”고 본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Jacques Rancière, Das Unvernehmen. Politik und Philosophie. Frankfurt: Suhrkamp, 2002; Alain Badiou, Ist Politik denkbar? Berlin: Merve2010)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에 대해 프랑스의 좌파 이론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사회이론과 작별해야 한다. 이것은 방법론적으로 급진적인 결론이었다. 정치적 주체는 사회적인 범주가 아니다. 혁명적 주체는 사회적으로 키워진 주체가 아니고, 아예 역사적으로 특수한 주체 자체가 아니다.

    혁명적 주체는 오히려 단적으로 주체 그 자체이다. “혁명을 위한 잠재력”은 어떤 자본주의적으로 훈육된 주체 형태가 아니다. 레닌이 말했던 교육받고 훈련된 우체국 노동자 같은 것이 아니다. 혁명을 위한 잠재력은 주체의 ‘존재’에 있다. 이것은 역사적인 주체형태가 아니라, 주체 그 자체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안에서 훈육을 통해 구체적인 능력들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 능력들은 혁명적이지 않다. 혁명적인 것은 인간의 능력 그 자체다. 이 능력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규정되어 있지 않을 능력이다. 모든 것을 추상할 수 있고, 모든 것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부정하는 힘이 그것이다. 주체는 이런 무규정적인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평등하다. 이렇게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가 혁명적이다.

    이상은 레닌을 비판하면서 프랑스의 좌파 이론이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또 한 번 왜곡한다. 물론 레닌은 자본주의적으로 훈육된 주체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주체는 혁명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본주의적인 훈육 원칙들과 그것들로 이루어진 관계를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프랑스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무규정적인 자유와 내용 없는 평등의 심급인 주체가 어떻게 ‘구체적인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무규정적인 자유와 내용 없는 평등을 가지는 주체가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떨쳐 일어서기”(에티엔 발리바르)거나, 항구적인 봉기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봉기가 혁명은 아니다. 혁명은 과거 질서와의 단절 이상이다. 혁명은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일은 내용이 없고 규정되지 않은 자유를 가지는 주체가 할 수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내용 없고 규정되지 않은 자유를 위해 떨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몇 년 전에 슬라보예 지젝이 우리는 다시 한번 레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일리가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레닌의 주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레닌이 했던 것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디우가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순수한 정치, 즉 봉기의 정치로 수렴되고 만다. 그런데 레닌은 그보다 나아가고자 했다. 레닌은 혁명에 대해 사유하려고 했다. 혁명을 사유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구축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젝의 지적은 한나 아렌트와 연결된다.

    지젝은 레닌의 질문을 이렇게 이해한다. “우리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것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혁명은 사회적 관계를 끝장내면서도,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조직하는 일이다. 이런 혁명은 어떤 것일까? 레닌은 자본주의에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제도를 말했다. 이것은 어떤 것일까? 제도의 주체는 누구일까? 그런 제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봉기의 주체는 무규정적인 자유와 그러한 자유의 평등을 유효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봉기의 주체는 저런 것들을 해낼 수 없다.

    지금까지 혁명을 단순히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실천 및 실천 가능성의 측면에서 파악했던 시도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진퇴양난에 빠진다. 레닌은 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주체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또 권력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려고 했다. 이렇게 했을 때, 새로 건설될 혁명 질서에는 현재의 역사적 사회적인 주체들인 자본주의적 주체들이 그대로 남는다.

    반대로 프랑스의 좌파 이론들은 혁명을 위한 주체를 초역사적, 탈역사적, 비역사적으로 생각했다. 혁명의 주체를 부정성의 힘으로, 사회적인 형태로부터의 해방의 힘으로만 생각하면, 이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절, 봉기, 반란 이상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훈육한 자율적인 주체도, 이 사회를 완전히 부정하는 주체도 결국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 주체에 의해 혁명이 실행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건에 대한 동경”뿐이다.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언젠가는 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Peter Trawny, Medium und Revolution. Berlin: Matthes & Seitz 2011)

    혁명과 진화

    역사적 변화는 올 뿐이지, 인간이 변화를 만들 수는 없다. 진화 개념에는 이런 주장이 숨겨져 있다. 오늘날 학문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진화다. 진화는 변화를 이해하는 사고방식 중 하나다. 진화는 변화를 진화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 진화가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생명을 연구하는 학문들인 사회학과 생물학의 공통범주다. 이런 학문에서 진화는 反혁명을 뜻한다.

    진화와 혁명의 일차적인 차이는 시간의 성격이나 변화의 속도가 아니다. 양자는 변화의 양상에서 구분된다. 존재론적으로 구분된다. 양자에서 역사적 변화가 서로 상반된 방식으로 이해된다. 모든 것은 진화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다. 때로 빠르게 변화한다. 진화적이란 이때 우연성을 뜻한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진화 개념은 反혁명적이다. 변화시키는 인간의 실천이 여기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사회학과 생물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는 달랐었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루만은 사회학과 생물학을 공통으로 가로지르는 체념적인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학과 생물학은 진화라는 사고방식을 통해서 혁명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는 데에 노력을 쏟아왔다.

    혁명에서 핵심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방식이다. 달리 말하면, 혁명을 통해서 이런 저런 것들보다 먼저, 역사적 변화의 방식이 바뀐다. 혁명이란 변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사건이 인간의 실천으로 되는 것이 혁명이다. 혁명은 그러니 역사 안에 있는 것도 역사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오히려 역사와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실천이다. 혁명이란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적 존재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성을 바꾸는 것이 혁명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혁명은 존재론적 전환이다. 혁명은 존재하는 대상을 바꿀 뿐만 아니라, 그것의 존재방식을 바꾼다.

    68-1

    68혁명 당시의 독일 베를린 시위 모습

    혁명의 핵심이 역사와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존재론적 변화라고 이해할 때, 프랑스 혁명과 칸트에서 출발하는 독일의 철학적 혁명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각각 발생했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독특한 평행성은 하인리히 하이네가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라는 책에서 지적했던 것이다. 그는 이 현상이 프랑스 혁명과 독일의 철학적 혁명이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했다고 이해할 때야 설명된다고 보았다. 프랑스의 정치적 혁명은 순전히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치적 혁명은 독일의 철학적 혁명과 마찬가지로 “사고 방식의 전환”(칸트)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프랑스의 정치 혁명과 피히테의 학문론, 그리고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일기”를 한데 묶어서 “이 시대의 거대한 조류”라고 말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일기는 “창작의 창작”이다. 또한 피히테의 학문론은 철학의 철학이다. 이것들은 “초월적”이다. 다른 말로 “비판적”이다. 초월적 내지 비판적이라는 말을 슐레겔은 이렇게 정의했다. 생산된 것에 생산자를 함께 표현하는 것, 완성된 대상에서 가려져 있었던 생산자가 드러나게 표현하는 것이 초월적이다.

    초월적 혹은 비판적 철학은 만들어진 사상을 누군가의 사고의 실천으로 취급한다. 초월적 창작은 창작물에서 그것을 만들어냈던 “창작능력”이 드러나게 한다. 이것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혁명도 혁명이 만들어낸 대상들인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들로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이것들은 산물이다. 초월적 철학과 초월적 창작이 그렇듯이, 혁명은 역사적 사건에 초월적으로 관계된다. 초월적이고 비판적으로 역사와 관계를 맺었던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혁명은 역사적 생산물들과 그것들의 진화적 변화들 속에서 생산자를 드러내서 표현했다. 이 생산자가 역사 속에서 작용했고, 역사적 산물들과 그것들의 진화적 변화 뒤에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서 나타나게 했다. 혁명은 역사를 정치적 실천으로 바꾼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정치적 실천 자체가 탄생한다. 혁명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실천이다.

    시작을 시작하다

    혁명적 실천을 이렇게 이해하면서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고, 또한 항상 늦게 온다. 혁명은 개별적인 사회적 관계나 제도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와 제도의 존재방식이 변화한다.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의 실천의 결과로 전환된다. 혁명은 그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역사, 다른 역사의 시작이다. 혁명은 위기의 해결과 관계가 없다. 혁명은 새로운 시작이 있는 역사의 시작이다. 혁명은 시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작이 먼저일 수는 없다. 혁명은 역사에서 뒤에 올 수밖에 없다. 변화가 이미 벌어졌을 때, 진화적인 사건이 이미 일어난 뒤에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혁명은 역사와의 새로운, 비판적인 혹은 초월적인 관계다. 때문에 역사는 일어난 것으로서 전제된다. 역사의 운동이 이미 성공적으로 실행되어 있어야 한다. 유물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의 역사가 이미 진행되어 있어야만 관계를 변화시킬 정치적 실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레닌이 옳았다. 그가 자본주의적인 훈육인 노동을 혁명을 위한 전제라고 말했던 점에서 말이다. 능력을 갖추고 훈육된 사람만 사물을 스스로 처음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을 할 수 있다. 행위하는 능력을 혼자서 스스로 갖출 수는 없다. 스스로 행동하는 것, 변화의 실천은 그 능력이 갖춰짐을 전제한다.

    하지만 레닌은 틀렸다. 역사적 진화가 전제되어야 혁명이 가능하다고 해서, 혁명이 역사적 진화의 결과는 아니다. 혁명은 노동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혁명은 노동이 이룬 것을 반성한다. 자본주의적 훈육을 통해서 우리는 주체로서의 능력을 얻었다. 혁명은 이 능력에 비판적이고 초월적으로 관계 맺는다.

    혁명은 역사적 노동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스 페터 크뤼거는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을 언급하면서, 혁명의 이러한 특징을 혁명의 “영웅주의”라고 불렀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역사에서 ‘영웅주의’를 이해했던 방식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영웅주의는 정치적 실천이 경제적인 발전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 실천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도 포함됐다. 영웅주의 없이는 혁명도 없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정치적으로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웅주의가 없으면 혁명도 없다. 혁명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과제를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하는 실천이다.

    레닌이 원했던 것과 달리 혁명의 가능성은 보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혁명은 역사 안에도 밖에도 없고, 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와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단순히 역사적이지 않고 오히려 초월적이다. 이점에서 혁명은 예술작품과 같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만, 만들 수 없다. 혁명은 할 수 있으면서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술과 같다.

    필자소개
    독일 유학생. 사회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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