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과
‘지속가능한 미래’
[에정칼럼] 유엔 개발정상회의
    2015년 10월 05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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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온고지신 정신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이번에는 유엔이라는 세계무대에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26일 유엔 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같은 날 있었던 유엔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의 개회사 및 폐회사 그리고 28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이르기까지 방미 일정을 온통 새마을운동 알리기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고 화답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박대통령의 연설장면은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이는 추석 연휴 기간의 뉴스를 장식했고, 간간이 이어지는 어르신들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추억 더듬기를 힘겹게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듣기 싫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어떤 뉴스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맥락으로 이런 연설을 했는지 제대로 짚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유엔 개발정상회의는 지난 2000년에 세운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대신하여 2030년까지 추진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확정 짓는 중요한 회의였다. 즉 전 세계가 앞으로 15년 동안 전 인류의 인간다운 삶과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확정하는 자리였다. 그런 회의장에서 새마을 운동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과연 대통령이 새로운 2030 아젠다를 얼마나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사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내에선 이미 새마을 운동이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짬짬이 새마을운동을 언급하며 이것이 지금의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왔다. 더불어 국제개발협력 사업과 연계하여 ‘지구촌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대통령은 실제 새마을 운동을 어떻게 추억하고 있기에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것일까? 알기 힘든 대통령의 속마음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의 연설문을 통해 확인해보자.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대한 인상 깊은 연설은 26일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 개회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개발 정책이자, 국민적 의식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한국은 1인당 GDP가 100불에도 못 미쳤던 최빈국이었습니다. … 그 결과, 한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을 새마을 운동, 그리고 그것을 추진한 아버지의 공으로 돌림으로써 실로 아름다운 딸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한국은 반세기 만의 급격한 산업화와 설익은 민주화로 인해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정경유착은 심화되었으며, 양극화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성장 뿌리에 새마을 운동이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지금의 수많은 사회문제의 뿌리 또한 새마을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꼽은 새마을 운동의 성공 전략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세 가지 성공 요소로, 첫째는 인센티브와 경쟁이요, 둘째는 신뢰에 기반을 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세번째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국민의 참여다. 그런데 ‘인센티브와 경쟁’이 21세기에도 통용되는 진리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인센티브가 오히려 사람들의 창의성을 떨어트리고 심지어 더 낮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을 통해 증명되었고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경제를 중요시 생각하는 대통령이 이런 인센티브를 운운한 것은 참으로 의외다.

또한 한국은 이미 경쟁 과열 사회다.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한국 국민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그 덕분에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경쟁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져다주는 그림자를 가린 채 GDP로 산술되는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15년 전 유엔에서 새천년개발목표를 세우는 자리에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새로운 지속가능한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는 전혀 걸맞지 않다.

그 다음으로 언급한 신뢰에 기반을 둔 국가 지도자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 부분은 유신과 새마을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야 어떠했든 결과만 좋으면, 그것이 잘 된 개발이고 성장인 것인가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지도자는 명백히 18년을 독재했고, 민주주의를 억압했으며 그러한 체제 안에서 자발성은 강요당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잘 한 독재이고 잘 된 성장인가? 우리는 지금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화두는 개도국의 GDP를 얼마만큼 높일 것인가가 아니라, 과연 GDP가 낮은 개도국은 우리보다 덜 건강하고 더 불행한가? 그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경쟁하고 개발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더 적절한 방식으로 전 세계 인구가 인간다움을 영위하기 위한 조화로운 방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일 것이다.

유엔 개발정상회의에는 25일~27일의 일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을 채택했다. 이는 2000년 유엔총회 정상회의에서 채택했던 ‘새천년개발목표’를 대체하게 된다. 이로써 2030년까지 15년간 추진할 전 세계의 새로운 개발 목표가 확정된 것이다. 이번 목표는 새천년개발목표가 담지 못했던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에너지, 국가 내‧간의 불평등 완화라는 더 포괄적인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이뤄졌다. 이제 앞으로 15년 우리는 이 전 세계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고민할 차례다.

분명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고민이 없지 않다. 그 고민의 흔적은 26일에 있었던 유엔 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대통령의 주옥같은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경제, 사회, 환경을 아우르는 균형발전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개발목표 달성의 제도적 토대가 되는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거버넌스와 법치, 인권과 양성평등의 원칙도 굳게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정부가 새로운 개발의제의 이행을 선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민간과 시민사회의 참여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 사실 대통령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실행만이 남았다. 대통령의 말처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민주적인 법치를 구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기 나라에서 나와야 한다. 부디 경제성장에 목매였던 7,80년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지속가능목표에 걸맞는 인간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국가의 모델을 실현해 주길 바란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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