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진보정당 당원이고 싶다
    [기고] 정의당 당원들에게 드리는 편지
        2015년 09월 24일 04: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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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혁신회의’의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논의의 이해와 관심을 위해 정의당 인천시당 김성진 위원장(링크)과 민주노총 이근원 전 정치위원장의 두 글을 게재한다. 김성진 위원장의 글은 자신의 블로그에 있는 걸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이근원 전 정치위원장은 직접 글을 기고해줬다. 약간 결이 달라보이지만 진보정치의 단결과 혁신을 위한 마음과 진정성에서는 똑같았다. 일독들을 권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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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대학생이 되자마자 전두환을 만난 것이 역사가 제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그 시기를 겪은 많은 사람들처럼 광주항쟁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내가 환갑이 되어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라며 데모를 앞두고 고민하던 청년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환갑이 됩니다. 30여년이 넘게 오직 한 길만을 달려왔습니다. 잘못한 것도 많고, 후회하고 있는 지점도 많지만 ‘선택’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별로 내세울게 없는 제게 누군가 “살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민주노동당 당원번호 2번이었던 점이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가장 힘들었으나 가장 빛나던 시기, 그러나 돌아보면 가장 가슴이 아픈 시절이기도 합니다.

    97년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비가 내리는 가운데 1톤 트럭으로 여의도에서 삼선동으로 짐을 옮기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이후 민주노동당의 초석을 다진 30명 안팎의 동지들은 그 후 통합진보당으로, 진보신당으로, 노동당으로, 정의당으로, 심지어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이제 남은 꿈은 다시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를 우리 두 딸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 길마저 아득해지는 것 같아 이런 글을 동지들에게 씁니다.

    이근원

    이근원 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맨 왼쪽. 사진=노동과세계)

    우리 정치 얘기는 하지 맙시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자본의 야만적인 탄압이 노동현장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매달려야 합니다. 한 달이 넘게 단식을 해야 하고, 천 일이 넘게 거리에서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노동자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정치적으로 엄호해야 할 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 낸 유력 정치인사들은 이제 노동자의 곁에서 멀어졌습니다. ‘노동’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았습니다.”

    제가 초안을 잡은 노동자정당추진회의 결성 선언문의 앞부분입니다. 기록을 보니 2012년 11월 10일이고, 그 조직이 지금의 『노동·정치·연대』를 만든 한 주체입니다. 그렇게 눈물로 보낸 세월이 벌써 3년이나 됩니다. 양경규 대표의 말을 빌리면 “철없이, 그러나 간절하게” 진보정당의 통합을 추진해 온 시간들입니다. 성찰과 반성의 나날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그때와 변함없이 지치고, 힘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만 엄호할 진보정치세력은 왜소하기만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악다구니는 오늘도 한국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고 있습니다. 광기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입니다.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을 하던 작년, 이런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지금처럼 ‘진보혁신회의’를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모세였습니다. 제가 정치 얘기만 하면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좌우로 쫙 나뉘었습니다. 한번은 부산 정치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를 하러 갔더니 한 분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지만 우리 정치 얘기는 하지 맙시다.”라구요.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노동 현장마저도 분열이 된 채 오늘을 맞고 있습니다. 이걸 극복해야만 합니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지난 6월 4일 4자 선언이 있었습니다. 9월 2일 정의당의 새로운 지도부와 노동당의 변화된 조건을 반영한 2차 선언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렵지만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꿈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장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연을 날릴 때다.” “물이 들어온다. 배 띄울 준비를 하자”면서 지지선언이 잇달았습니다. 공공부문은 61명 노조 간부들의 예비입당 선언을 했습니다. 지금은 1,000인 선언이 진행 중입니다. “실력으로 보수를 이길 힘 있는 진보, 당 배지를 노동조합 조끼에 달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내 정당을 함께 만들자”는 호소에 오늘까지 약 630명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결코 풀리지 않을 것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노동현장이 새로운 기운을 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당 이름, 지도체제 등으로 인해 난항을 거듭한단 얘기가 들립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우리 길을 막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정의당’이라는 국민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이, 여론조사에서 4~5%의 지지를 고정적으로 받고 있는 현실이 새로운 세력과의 결합보다 우선하는 가치일까요? “당명을 바꾸자고 정의당 당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라고 하는 데 정말 그런 건가요?

    처음으로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가보니 “군소정당이 난립하게 될 텐데 총선 때까지는 무조건 정의당이어야 한다.” “손바닥 뒤집듯 당명을 바꿔서는 안 된다” “당명을 바꾸자는 것은 같이 죽자는 말이다.” 라는 등의 말도 있더군요.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선 20대 국회, 20명의 국회의원이라고 하구요. 지금의 정의당만을 가지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만일 처음 논의를 함께 시작한 노동당이 지금처럼 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당명을 바꾸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걸 알고 함께 출발했다는 말이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만약 문재인이 정의당, 천정배 당하고 합치자고 하면서 “당명은 새정치연합으로 하고, 지도체제는 단일하게 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느껴지겠습니까?

    물론 제가 감히 이해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할 수많은 어려움이 동지 여러분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도 ‘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는 노동현장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천리를 내달릴 사람이 30cm자로 촘촘히 재고 있으니 좀스럽게 보입니다.” 정의당 부산시당 전 위원장이었던 이창우동지가 페이스 북에 올린 말입니다. 많이 공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천릿길을 같이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최근 총선이 다가오면서 새정치연합의 국회의원들이 노동현장을 쑤시고 다닙니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호감이 큽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노조 산하 서울공무직 노동자들이 대거 입당하기도 했습니다. 막고 싶으나 막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다시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습니다.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는 “정의당에 가입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제 주변의 많은 노동자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무릇 통합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려놓기’입니다. 분당과 합당, 다시 분당 등으로 또 다시 내려놓기가 정말 힘들겠지만 노동현장이 가지는 “간절함”에 귀 기울여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새누리당 김무성이 600만표를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노동개악을 감행해서 전체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 지금, 1000만표로 갚아주겠다는 결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년 총선이 정의당만의 것이 아닌 전체 진보진영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신경림 시인의 “쓰러진 자의 꿈”이라는 시집을 보는데 이런 시가 있더군요.

    “살구꽃 지고 복사꽃 피던 날/ 미움과 노여움 속에서 헤어지면서/ 이제 우리 다시 만날 일 없으리라 다짐했었지/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느닷없이 소낙비 피해/ 처마 아래로 뛰어드는 이들 모두 낯이 익다/ 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 손에 밴 기름때 한결같고/ 묻지 말자 그동안 무얼 했느냐 묻지 말자/ 손 놓고 비 멎은 거리로 흩어지는 우리들/ 후줄근히 젖은 어깨에 햇살이 눈부시리 / 언제고 다시 만난 걸 이제사 믿는 우리들 / 메마른 허리에 봄바람이 싱그러우리”

    「만남」이라는 시입니다. 정말이지 고된 노동과 박근혜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메마른 허리’에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이라는 ‘싱그러운 봄바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제 진보정당의 당원이고 싶습니다. 또 다시 간절히!!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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