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밀집도 세계1위, 5대 원전강국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할은?
[에정칼럼] 5년짜리 대통령 채용 앞둔 우리가 해야 할 일
    2012년 07월 23일 03: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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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제국의 호민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추적자’는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혹은 그런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의 나라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현실을 일깨워준 바가 있다. 서 회장으로 대표되는 실질적인 황제 재벌권력에 비해 대통령은 그저 5년짜리 기간제에 불과하다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서 회장의 한오그룹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재벌권력이자 토건족이며 핵마피아의 일원인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과 자연스럽게 매치될 수 있다면, 우리를 들뜨게 하고 있는 대선은 원자력 제국의 호민관을 뽑는 행위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탈핵 진영에게 있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무엇보다 탈핵을 내거는 대선주자들이 당선 후에도 대단히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며, 한편으로 탈핵은 5년 기간제 대통령에 기대어서만은 이룰 수 없는 일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탈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핵마피아의 웬만한 압박과 회유 속에서도 5년이라는 짧지만 중요한 기간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진정성과 의지, 역량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거나, 탈핵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힘과 관심을 확대‧유지하여 대통령을 ‘그렇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2030에서 2060까지, 탈핵 시점은 숫자 싸움에 불과한가?

그런 측면에서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탈핵을 자신의 국정운영 구상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후보군들 사이에 차별적으로 제출되고 있는 탈핵 “시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후쿠시만 사고 이후의 모습

탈핵 시점은 포스트 후쿠시마를 이야기하며 형성된 탈핵이라는 담론과 함께 제기된 꽤 최신의 논의인데, 그 안에는 크게 두 가지의 함의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핵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핵을 멈추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YES OR NO 답의 의미가 있다.

둘째, 규범적인 목표시점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무엇이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본다는 의미가 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반드시 달성되어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 구체적인 쟁점들을 비춘다. 그러나 이제까지 후자는 전자의 논의에 가려진 측면이 있고, 탈핵을 주장하는 진영 내에서조차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탈핵 2***”을 걸면 사실상 탈핵시점은 2030이든 2060이든 그 의미가 “언젠가는 탈핵”과 별반 다르지 않게 해석되어 버리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탈핵 구상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 드러나고 있다.

탈핵 시점은 어떻게 나온 건가? 그 안에 가려진 쟁점들은 무엇인가? 이제야말로 숫자에 가려진 구체적인 쟁점들을 몇 가지라도 호명해 보자.

탈핵 시점에 숨겨진 쟁점 “노후”, “수명”, “신규”

가장 가까운 쟁점, 노후 원전 폐쇄부터 시작해 보자. 일단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폐쇄해야 한다”가 공통적인 의견이니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고리 2호기는 어떨까? 고리 2호기는 월성 1호기와 같은 1983년에 상업운전을 시작해 똑같이 올해로 30년이 되었지만, 정부 계획 상 설계 수명이 40년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노후 원전은 어디까지가 노후 원전이고, 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설계 수명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2040년까지 탈핵”은 모든 핵발전소의 수명을 30년으로 잡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시나리오의 경우에도 유독 코앞에 닥친 고리 2호기에 대해서만은 수명 30년을 적용하지 않고 언급조차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론을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쟁점을 숨기고 피해 가는 것보다는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음으로 대선 주자들은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중단과 백지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신규 원전(핵발전소)”이 도대체 어디까지인가이다.

“신규 원전”은 정말로 해석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현재 계획 중인 원전 건설(34기) 외에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2011년 말 예정 부지를 삼척과 영덕으로 하여 추가된 신규 원전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계획 중인 원전 8기까지인지, 건설 중인 원전 3기 혹은 시운전 중인 신월성 1호기 등을 포함하는 것인지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선 2060년 탈핵을 주장한 문재인 예비후보는 지난 7월 13일 발표한 “탈원전·생태성장 에너지 구상”을 통해 아직 착공되지 않거나 건설계획만 수립 중인 신고리 5,6,7,8 및 신울진 3,4호기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은 위에서 본 다양한 신규 원전의 ‘경우’ 중에서 건설 중인 원전 3기와 시운전 중인 원전 1기, 바로 직전(7월 20일) 상업운전에 돌입한 신고리 2호기는 물론이고, 5월 4일 기공식을 마친 그러나 이제 겨우 부지정지공사나 했을 뿐인 신울진 1, 2호기마저 제외한 대단히 우려스러운 구상이다.

문재인 예비후보의 구상대로라면 고리1호기, 월성 1호기를 폐쇄하더라도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2012년 1월 현재 21기에서 26개로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평균 10년 간격으로 발생하고 있는 5등급 이상의 심각한 핵사고 위험, 처리 난망의 방사능 덩어리인 핵폐기물, 그리고 핵발전 의존율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탈핵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렇다면 2040년 탈핵은 어떨까. 2040년은 아직 대선 주자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통합진보당이 내세운 총선 공약이며, 7월 8일 김두관 예비후보가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탈핵 시점이다.

이 경우 발표 당시 모두 시운전 중이던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쟁점이다. 지금 우리는 고리 1호기도, 월성 1호기도 아직 폐쇄시키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시운전 중이던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를 중단시키지 못하면 자연히 핵발전소 개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10년 단위의 핵발전소 폐쇄 계획을 밝힌 통합진보당의 공약에 따르면 이미 2012년 가동 원전은 23기로 되어 있다. 즉 시운전 중이던 2기의 핵발전소를 당연 가동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사실 탈핵 진영 내에서도 그다지 쟁점화되지 못하였다.

반면 현재 핵발전을 하지 않는 오스트리아는 과거, 완공한 핵발전소의 가동까지 포기한 바 있다. 핵폐기물과 그 처리 비용, 폐로 비용, 사회적 비용, 핵사고 위험 비용까지 생각하며, 완공을 해도 가동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쟁점화하지 못한 것은 탈핵 진영의 오점이 될 것이다.

간단하게나마 탈핵 시점의 차이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라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는 중요한 쟁점임을 확인했다.

여기에서는 탈핵 시점에 국한해서 살펴보았지만, 사실 전반적인 탈핵 구상에 담긴 쟁점은 더더욱 많다. 이 쟁점들이 부각되는 것은 곧 탈핵을 해야 하는 이유들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즉 원자력제국의 호민관을 선출하는 시기에 이 쟁점들을 부각시키고, 대선주자들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탈핵에 유리한가 아닌가 전략적 판단의 단계로 넘어간다.

정말로 무엇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한가?

이제 가치판단의 세계에서 좀 더 냉정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 보자. 탈핵 시점 혹은 탈핵 구상에 대한 엇갈린 평가 중, 우선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탈핵을 하겠다는 후보는 환영해줘야 한다는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혹은 가장 시급한 것) 하나, 즉 여기에서는 ‘탈핵이라는 입장을 제출하는 것’ 하나라도 실현을 시키는 것이 낫다.

둘째, 세부적인 사안을 떠나 탈핵이냐 아니냐로 쟁점을 압축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아직 탈핵을 걸지 않은 다른 후보들도 압박할 수 있다.

셋째, 그들이 탈핵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은 탈핵 진영의 지지를 기대한 것인데, 비판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누가 탈핵을 공약으로 하겠는가.

일견 타당해 보이는,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주장들 같지만, 생각해 보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 하나라도 얻어내는 것이 낫다는 첫 번째 주장은 달리 말하면 최소 과제를 최선의 과제로 삼자는 주장인 셈인데, 이것은 협상의 패를 상대방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물며 정치인들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마당에, 탈핵을 염원하고 성취하려는 운동이 큰 그림도 없이, 우리 패를 모두 내놓고 협상테이블에 앉겠다는 말이다. 하나라도 얻어내기 위해서 그 하나의 패로만 승부하는 것이 유리할까, 여러 가지 패를 가지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 유리할까.

다음으로 의제를 단일화, 단순화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후보에게는 지지를, 수용하지 않는 후보에게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두 번째 주장. 이것은 역량이 제한된 시민사회가 자주 사용하는 낯익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정말로 유효한지에 대해 심사숙고해 보자. 이 전략은 국민들이 탈핵이냐 아니냐를 ‘선택의 제외 기준’으로 삼아야 즉 탈핵이 아닌 후보는 선택 선상에서 제외시켜버리는 정도는 되어야 실제 압박이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 탈핵의 절박성에 대한 국민의 정서는,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낼 우리의 실력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쟁점과 무관하게 탈핵을 약속한다고 해서 환영 입장을 나타낸다면, 오히려 탈핵 공약을 통해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하고, 부족한 입장을 낸 후보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셈이 된다.

마지막은 당근 전략인데, 이것 역시 약간의 오해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선 주자들이 탈핵 공약을 내놓은 것은 반핵운동의 지지가 아니라 원전 비중의 축소를 원하고(65%), 원자력 비중이 낮아져 발전량이 감소하더라도 “에너지 절약에 참여하겠다”는(87.7%)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 대선 후보가 더 바라는 것은 국민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탈핵 이슈로 시끄러워지는 것’이고, 이렇게 탈핵이 쟁점화되고 변별력을 가져야 탈핵을 내건 후보들 간에도 경쟁이 붙을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주장과 반박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탈핵의 정치적인 쟁점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탈핵을 국민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이슈로 쟁점화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아직까지 대선주자들의 탈핵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찬핵 진영이다. 그들의 존재를 염두에 둘 때, 우리가 탈핵이냐 아니냐로 단순화해서 후보를 검증하는 구도는 위험하다. 그랬다가는 탈핵이 필요하다는 프레임보다는 탈핵이냐 찬핵이냐의 구도로 급선회할 수 있다.

이러한 프레임이 형성되기 전에 우리는, 탈핵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문제는 누가 더 탈핵의 진정성을 가졌으며 누가 더 좋은 방안을 가졌는가로 프레임을 선점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탈핵의 주장 여부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것은 비단 프레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장 최악의 경우,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핵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민들이 탈핵의 필요성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마저 날릴 수 있다.

대선은 호민관을 뽑는 공간만이 아니다. 만약 대선의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후보 전술 외에는 없고, 그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면 의제는 사장될 것이다.

그러나 대선은 사실 의제를 이슈화하고 그 저변을 넓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정당뿐만 아니라 각종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개인까지 대선을 대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국면에 그저 핵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혹은 없어지면 좋을) 막연한 무언가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5년짜리 대통령이 누가 되든 또 누구로 바뀌든 노후 원전은 폐쇄해야 하고, 핵발전소가 더 많아져서는 안 되며, 설계수명을 다 채울 필요는 없다는 등의 쟁점을 국민들의 뇌리에 박히게 할 것인가.

무엇을 목표로 삼겠는가? 무엇이 운동의 할 일이겠는가? 중요한 주제를 쟁점화하고,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가려진 쟁점을 들춰내는 것이 운동의 역할이 아니었나? 장기 프로젝트인 탈핵을 띄우기 위해서는 우리부터가 쟁점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차려놓아야 한다.

 

필자소개
녹색당 정책팀장,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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