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신보수와
일본 정치의 변화 전망
[기고] 공산당, 반자민 연합 제안
    2015년 09월 24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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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신보수의 등장

안보법안을 둘러싼 정당 간 정책형성 경쟁은 올 여름 내내 일본 열도를 달구었다. 그동안 ‘위헌’이라고 상식화되었던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헌법 개정을 거치지 않은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가능하다는 아베 내각의 각의 결정(2014년 7월 1일)과 2015년 4월 아베 총리의 미국 양원연설에서의 안보법안 추진 약속을 거쳐 이번 중의원, 참의원 통과로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번 안보법안의 핵심은 ‘미국과의 군사행동의 일체화‘를 통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는 첫 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이번 안보법안에 대해 많은 국민들과 야당들이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체결을 강행한 배경을 우리는 ‘자민당 신보수’의 등장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동안 자민당 내에서 비주류였던 전후세대 중심의 신보수가 자민당의 주류로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이해는 향후 일본 정당시스템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7월 안보법안 반대 집회 모습

자민당 내 신보수의 등장 배경은 크게 3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정과 관련된다. 냉전 이후 미-소 대립의 해체가 단기간의 다원적 구조를 거쳐 미-중 대립 구조로 변화한 점은 이러한 신보수의 등장을 촉진했다.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대국화는 미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변화는 일본으로 하여금 일정한 군사적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이 만든 일본의 평화헌법이 큰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더욱이 이러한 평화헌법의 존재는 자민당 내 ‘구보수’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큰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를 중심으로 한 전후세대의 부상은 미국에게는 큰 호재였다. 그리고 자민당의 신보수는 중국을 잠재적인 가상의 적국으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 강화만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보수층 결집에 성공했다.

두 번째는 전후 55년 체제(자민당 일당 독주체제)를 유지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한 ‘이익분배정치’의 붕괴가 자민당 신보수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전후 일본은 ‘성공한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선진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분배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잃어버린 20년(1991년부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는 분배 가능한 잉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1993년 55년 체제의 종언(자민당에서 호소가와 비자민당 연립내각으로의 정권교체)으로 이어졌다. 그 후 고이즈미 붐 덕택에 비교적 일시적으로 안정적인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09년 다시 정권을 민주당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분배 가능한 잉여생산의 감소는 재정 악화로 이어졌고, 재정의 악화는 폭넓은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 동원의 곤란으로 이어졌다. 즉 자민당은 그동안 자신을 지지했던 일부분의 지지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민당 신보수는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핵심 지지층, 즉 이데올로적 보수의 결집이 정권 유지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반한국, 반중국을 통한 민족주의, 미국과의 동맹 강화, 군대 보유, 사회보장 축소, 친기업 등 그동안 자민당 내 소수였던 우파(매파)의 이념을 전면에 내걸고 핵심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1996년 총선거부터 도입된 소선거구제는 자민당 신보수의 결집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중선거구제에 있어서는 자민당 내 파벌들이 각자의 후보를 공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천권을 통한 당 총재의 권한은 강화되었고 이전의 많은 파벌들이 사라졌다.

특히 고이즈미 정권을 거치면서 과거 자민당 구보수는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또한, 소선거구제는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통한 정권유지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민당 내에 다양성(과거 비둘기파-매파의 공존)이 불필요해졌다. 특히 거대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자민당 신보수의 결집을 촉진했다.

예를 들면, 2005년 고이즈미의 우정민영화 선거를 제외한 1996년부터 2014년 동안 소선거구제 하에서 치러진 총선거의 경우 자민당은 최저 2100만 표, 최고 2700만 표를 획득했고, 아베 정권이 압승한 2012년 선거와 2014년 선거는, 민주당에게 패배할 때 아소 정권이 획득한 2700만 표보다 더 적은 2500만 표였다. 자민당 신보수는 무엇으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서 정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

자민당 신보수의 등장과 정당시스템의 변화

흔히 많은 정치학자들은 정당시스템을 유형화한다. 즉 양당제인가 3당제인가 혹은 다당제인가로 그 국가의 정당시스템을 단순화시킨다. 이러한 유형화는 국가 간 비교에는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국에서의 정당 간 경쟁구조를 논할 때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당시스템은 정당 간 경쟁구조, 즉 정당 간 상호작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당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각 정당이 그 경쟁을 통해서 무엇을 획득하려고 하는가 하는 ‘경쟁의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정당은 정권, 즉 권력을 목표로 경쟁한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와 선거 사이에는 여러 단계의 정당 간 경쟁이 존재한다. 즉 한 번의 선거가 끝나고 다음 선거가 있기까지 이러한 경쟁의 목표에 따른 서로 다른 정당 간 상호작용, 즉 단계별로 다른 정당시스템이 존재하고 이러한 단계별 상호작용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전제로 자민당 신보수의 등장과 안보법안의 성립, 그리고 향후 일본 정당시스템의 변화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정당 간 경쟁구조는 경쟁의 목표에 의해 ‘정부형성 경쟁 – 정책결정 경쟁 – 선거 경쟁’이 반복된다. 특히 이러한 정당 간 경쟁 사이클은 의원내각제에 있어서 일반적이다. 경쟁의 의미가 정당 간 상호작용이라면 각각의 경쟁은 하나의 정당시스템으로 존재한다.

이번 아베 내각의 안보법안은 정책결정 경쟁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정당들은 ‘찬성-반대-조건부 찬성-조건부 반대’로 나뉘어졌지만 그 축은 찬성-반대였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연립여당인 공명당, 소수당인 차세대당 등은 찬성, 민주당을 중심으로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등은 반대, 유신당은 하시모토의 오사카 계열은 찬성, 도쿄 계열은 반대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안보법안에 대한 정당 간 대립, 즉 정책결정 경쟁 과정에서의 정당 간 대립이 이후의 새로운 경쟁단계(선거 경쟁과 정부형성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 이후의 정당 간 상호작용(정당시스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아래의 그림1은 안보법안을 둘러싼 정책결정 경쟁 이후의 정당 간 상호작용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안보법안 통과 후 정당 간 경쟁은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로 경쟁의 단계가 선거경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러한 정당 간 경쟁의 무대가 변함에 따라 정당 간 상호작용도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전의 구조와는 다른 변화가 이번 안보법안을 통해서 나타났다.

일본-1

대립축을 중심으로하는 블럭간 경쟁으로의 변화

안보법안 통과 이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세력은 공산당이다.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안보법안 통과 직후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의 반자민당 선거연합을 제안했다. 시이 위원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국민연합정부’ 구상을 제안했다. 즉 선거 경쟁에서의 야당 선거연합, 정부형성 경쟁에서의 공동정부를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제안은 공산당이 결성된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민주당은 이러한 공산당의 제안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안은 안보법안의 통과로 정당 간 경쟁의 대립축이 명확해진 결과이고 이 대립축을 중심으로 정당 간 상호경쟁의 성격이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 반자민의 선거경쟁 구도는 그리 전망이 밝지 않다. 먼저 유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관건이다. 유신당은 안보법안 심의과정에서 이미 분열 상태에 돌입했다. 하시모토의 오사카 유신 계열은 자민당의 안보법안에 일부분 동의했고, 민주당 탈당파가 주류인 도쿄 계열은 야당공조에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도쿄 계열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책에 있어서 민주당과의 차이와 과거 정권말기 탈당한 의원들에 대한 민주당 내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공산당이 제안한 ‘선거연합’과 ‘국민연합정부’도 그리 쉽지 않다. 오랫동안 반자민-비공산 계열의 통합을 주장해온 민주당으로서는 공산당과의 선거연합이나 공동정부 형성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개악노동법의 재개정’과 ‘안보법안 폐기’라고 하는 2가지 정책을 중심으로 야권연대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루어진다면 반자민 축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자민당은 여유만만이다. 안보법안 통과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은 36%~41%로 예상보다 하락폭이 낮았고, 아베 총리도 일정 정도의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겠다는 여유를 보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 2500만 표와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 야당의 분열, 그리고 소선거구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리 불안한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자민당으로서 또 하나의 호재는 유신당의 분열이다. 다음 총선에서 자민당의 의석수가 줄더라도 제1당 유지가 가능하면 공명당과 하시모토의 오사카 유신당 중에서 연립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고, 공명당을 계속적으로 연립정부에 참가시킬 수 있는 압박 카드로써 유신당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향방과 참의원 선거

향후 이러한 블록화(정치연합)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은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자민당의 경제정책과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이다. 아베노믹스가 일정 정도 효과를 유지하고 참의원 선거에서의 의석 변화가 예상보다 적다면 이미 3년의 총재직 유지를 보장받은 아베 정권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중의원 해산을 통한 총선거를 실시한 후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참의원 선거까지 지리멸렬한 분열을 계속한다면 내년 참의원 선거와 중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야당이 올 연말까지 안보법안 통과 과정에서의 공조를 선거공조까지 이어지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유권자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의 지지율이 30%에서 40%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반자민을 흡수할 수 있는 야당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안보법안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대학생그룹인 실즈(SEALDs)는 국회 앞 데모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야당결집을 주장했다.

정당시스템의 변화는 정책-선거-정부형성 경쟁의 순환구조를 의미한다. 각각의 경쟁은 다음의 경쟁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연쇄과정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각각의 경쟁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를 각각의 정치주체가 어떻게 다음의 경쟁과정에 반영할 것인가 하는 판단과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정당시스템의 변화에 수동적인 자세로 판단과 노력을 회피하는 정치세력은 다음의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한국정치에서도 늘 보아온 예이다.

과거 김대중씨는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정당시스템의 변화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순환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향후 일본 정치는 신보수 자민당의 등장에 맞설 수 있는 ‘반자민 블럭화’의 형성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반자민’ 축의 형성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번 안보법안을 통해서 반자민 블럭이 얻은 교훈은 다당제 하에서 블록화 경쟁을 형성하지 않는 한 신보수 자민당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공산당을 포함한 ‘불럭화 경쟁’ 시스템이 형성된다면 일본 정치시스템은 과거와 달라질 것이다. 선거경쟁에서 정권형성 경쟁에 이르기까지 공산당을 포함한 ‘블럭화 경쟁’이 이어진다면 이전의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자민당의 45-50%와 야권의 45-50%의 의석 획득으로 균형적 경쟁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고, 특히 양원제에 있어서의 상하원 간 견제가 가능할 수 있다.

어쨌든 일본정치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특히 정당시스템의 변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9월 정기국회 이후부터 전개될 ‘야당 블럭화’ 논의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필자소개
일본 홋가이도대학 법학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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