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국가 대부분,
    평등성 높은 비례제 채택
    진보혁신회의, 선거제도 토론회
        2015년 09월 23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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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 및 선거제도 논의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의 인구비례 기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은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해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는 방향이었지만 논의 초반 의원정수 확대에 여론은 발끈했다. 이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사수,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논의는 진척이 없다. 현재로썬 현행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최종 획정안을 발표하는 시한인 10월 13일이 다가올수록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의원이 사실상 ‘임명직 국회의원’이라며 비례대표 제도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공세를 펴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선거제도 논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의당은 시민사회계와 연대해 농성도 하고 거리로도 나갔지만 별 다른 반향은 없다. 정치개혁 및 선거제도 논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선거제도 토론

    진보혁신회의 4조직 주최 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사진=유하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만 난무한 선거제도 논의
    “국민들이 먼저 현행 선거제도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진보혁신회의(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가 주최한 ‘선거제도 개혁,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2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가운데, 일부 토론자들은 그 원인은 “여론 설득 작업의 실패”로 봤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첫 작업은 불평등한 현행 선거제도를 손봤을 때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어떠한,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먼저 알려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거대 양당은 어떻게 해서든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들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여론을 설득해 그 힘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선거제도 논의 과정에서 오가는 용어들이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점이 여론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한 첫 번째 문제로 제기됐다

    한신대학교 강남훈 경제학과 교수는 “많은 국민들이 현행 선거제도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지금의 선거제도를 고치기 어렵다”며 “보수 언론은 계속해서 정치 혐오를 일으키면서도 현행 선거제도에 대해 불평등하다고 쓰지 않는다. 때문에 국민들은 현행 선거제도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가령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개념을 많이 쓰는데 연동형은 완전비례대표제로 쓴다면 국민들이 이해하기 좋았을 것 같다”며 “선거제도 용어를 쉽게 바꿔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대 총선결과에 대입한 현행 선거제도(병립형)의 불평등 지수는 76.3%p다. 반면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심상정 안(연동형/의원정수 360석/ 지역구, 2: 비례, 1)의 경우 불평등 지수는 6.4%다.

    비례대표제 국가들, 노동자들이 비례대표제 도입 총파업으로 쟁취
    국내 노동계도 ‘선거제도 개혁 목적’으로 한 투쟁 필요성 대두

    그가 이처럼 불평등지수까지 언급하며 현행 선거제도를 평등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평등선거가 복지국가로 가는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지금까지 진보정치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진보정당의 정치력이 0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례제가 현실이 되면 전혀 달라진다”며 “진보정당은 적은 의석수를 가지고도 대략 제1야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정치력을 가지게 된다. 제1야당은 진보정당과 상의할 수밖에 없게 되고 타협이 쌓여가면서 비로소 복지국가가 건설되는 것이다. 다수제 민주주의가 합의제 민주주의로 바뀌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하버드대학 경제학자들의 ‘복지국가의 정치학’이라는 책의 내용을 빌려, 미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면서도 복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로 네덜란드나 스웨덴처럼 우리가 잘 아는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평등성(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평등선거가 되면 복지수준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 강 교수는 “평등선거가 되면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우리나라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현재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복지국가를 이룬 여러 국가들 중엔 노동계가 총파업까지 불사하며 쟁취한 사례가 적지 않다.

    강 교수는 “벨기에는 노동자들이 대규모 총파업으로 세계 최초로 비례대표제 도입에 성공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벨기에의 투쟁을 보고서 대중파업을 위대한 투쟁으로 묘사했는데 이 위대한 파업투쟁의 목표가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핀란드도 1905년 총파업으로 비례대표제를 얻어냈다. 노동운동 세력이 강한 스웨덴 또한 마찬가지고, 스위스도 1918년 총파업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쟁취했다. 독일, 오스트리아도 혁명과 파업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강 교수는 책의 내용을 인용해 “유럽이 복지국가가 된 것은 비례대표제를 목표로 설정한 강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운동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의원정수 증대부터 들고 나와 이후 선거제도 논의 원천봉쇄
    이대근 “여당 기득권 쟁탈전을 기회로 삼아야”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현행 유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은 데에는 당초 논의 방향 자체를 잘못 잡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또한 여론 설득에 실패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여론이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초반부터 의원정수 증대를 던져 여론이 선거제도 개혁 자체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의원정수 증대로 시작된 선거제도 개혁은 당연히 비례대표 의석 확대로 이어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이상적인 선거제도 논의의 방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며 “올바른 방향은, 먼저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먼저 부각되고 그것을 통해 지역주의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했어야 했다. 또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비례대표 확대 필요성을 말해 공감대를 이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 또한 앞서 토론자로 나선 강남훈 교수와 마찬가지로 현행 선거제도가 바뀌어야만 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설위원은 “정치개혁의 큰 주제인 양당의 기득권 구조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우리 삶도 나아진다는 논의가 촉발돼야 한다”며 “그걸 위해선 양당이 아니라 3개 내지는 4개의 유력한 정당이 차별화된 경쟁을 하는 정당 경쟁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 즉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선거제도 개혁의 결과로 지역주의를 해결할 수 있고 지역주의가 제1의제는 아니지만 명분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독립적 주제라기보다 정치개혁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개혁 비전에 대해 공감하고 그걸 통해 지역주의 완화한다는 인식이 됐으면 그걸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비례대표 확대”라며 “비례대표제에 대해 당 지도부가 돈 받고 주는 자리라는 이런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개혁의 관점에서 비례대표제에 접근한다면 불식할 수 있다. 비례대표 확대가 어떤 의미를 담는지,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현실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설위원은 현재와 같이 잘못된 논의 순서의 시발점을 새정치연합 혁신안으로 봤다. 혁신위가 선거제도 개혁 논의 초반부터 의원정수 증대를 들고 나와 이후 이어질 비례대표 의석 확대 등의 논의는 제대로 할 수조차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의원정수를 얘기 하면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선거제도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이 앞섰다. 이에 여야가 서둘러서 정수 동결을 합의하면서 다음 정치개혁 논의를 원천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위해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각각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영호남 지역구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지역주의를 현재보다 더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이 논설위원은 또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여당이 어쩔 수 없이 정치개혁 논의에 동참하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당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하는 방법은 정치개혁에 대한 여론을 불러와야 한다. 정치개혁 대의에 순응하게 해야 한다”며 “정당법, 선거법 등 정치개혁 제도 포괄 협상을 통해 여당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같이 묶어 타협해 여당을 유인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이러한 안들을 수용하는 것이 당장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돼버리기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는 방안을 자진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새누리당이 여론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그 방법으로 정치개혁 제도 포괄협상을 주장한 것이다.

    선관위가 이미 낸 바 있는 권고안과 선거구획정위가 이번에 결정한 지역구 수는 비례대표를 축소 혹은 폐지하자는 새누리당의 주장과 전면으로 배치된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관과 단체 등이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는 것이 선거제도 개편의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이는 현행 선거제도가 얼마나 불평등한 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야권은 새누리당이 기득권 사수만을 위해 얼마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지를 부각하고,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논설위원은 “선관위의 권고안이나 선거구 획정위의 지역구 수는 여당을 곤란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여당의 논리로는 하나도 풀 수 없을 만큼 엉켜서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라며 “여기서 돌파구를 열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당의 대응이 비합리적, 비개혁적이므로 이를 개혁여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당의 기득권 쟁탈전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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