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 말아야 할 놈들, 와야 할 분들"
    [진보정치 현장] 공동주택 2% 나라에서는 서러움이 양산될 수밖에
        2012년 07월 23일 0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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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삶의 질을 이야기 할 때 ‘의식주’를 빗대어 말했는데 요즘엔 주거, 교육, 의료, 세 가지를 ‘주교의’라고 하여 이야기 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주거 문제는 중요했고, 특히 요즘엔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 하루 종일 노동하고 돌아와 편안하게 등 붙일 곳이 집 말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것을 아는 정치인들이 뉴타운을 이야기 했고, 공공주택을 몇 만호 공급하겠다고도 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무주택 서민은 전체세대의 40%를 넘고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36%에 달하는데 말이다.

    지난 6월 23일, 청룡동(구 봉천8동) 주민센터 옆 계단에서는 ‘함께 살자, 세입자대책위원회’가 그 출범을 알리는 행사를 했다.

    봉천 12-1 재개발구역의 세입자들이 6월 29일로 예정된 철거를 앞둔 시점에 아직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앉아서 빼앗기지는 않겠다고 세상에 선포한 것이다.

    이미 95% 이상의 가옥주와 세입자들이 떠난 동네는 바람만 불면 신문 쪼가리가 먼지와 함께 날리는 을씨년스러운 곳이 되어 버렸지만 이 날 만큼은 달랐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왁자지껄 했고, 노랫소리, 꽹가리 소리가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구호소리와 함께 요란했다. 함께 나눌 음식도 풍족했다. 무엇보다 세입자들의 표정이 정수리 위에 떠있는 해처럼 밝았다.

    끝까지 앉아 있었던 유일한 정치인으로서 나는 연단에 올라 말을 해야 했다. 너무 늦게 만나게 되어 아쉽다는 말로 연대사를 시작했다. 법전에 있는 알량한 권리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하고 이 단결이 유지되는 한은 함께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오늘은 혼자 덩그라니 왔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자 세대위’와 함께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뜨거운 박수는 아직 분에 겨운 것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재개발 지역을 찾았다. 출근 전에도 잠시 둘러 보았고, 퇴근 길에도 쑥고개 시장과 사람이 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쏘다녔다. 사람이 보이면 말문을 트고 인터뷰를 했다. 나 때문에 ‘함께 살자 세대위’를 알게 되고 가입한 사람도 있었다.

    나경채 의원과 재개발지역 주민들

    문제는 명확했다. 관리처분 인가가 나고 재개발이 확정되어 이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공적 개입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조합은 세입자들에게 곧 철거가 시작될 터이니 이사를 해야 한다는 설명만 했지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주거이전비나 동산이전비 등 세입자들의 권리는 그냥 법전에만 있었고, 마음 약한 몇몇 가옥주 만이 300만원 정도의 주거이전비를 선심쓰듯 내줬을 뿐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5만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만원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사실상 쫓겨났고, 다른 곳에서 도저히 살 형편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

    이들은 뒤늦게 알았다. 법은 재개발 구역의 세입자들에게 4인가구 기준 1,400여만원의 주거이전비를 보장하고 있고, 동시에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포기하는 조건의 각서는 모두 강행법규 위반이므로 무효라는 것을 말이다.

    구역안에는 쑥고개 시장이라는 노점상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시장이 있다. 여기에서 생선을 파는 이점진 할머니(71세)는 35년째 이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다.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새벽 3시에 가락동 시장으로 물건을 보러 가신다. 요즘은 장사를 마치는 밤 9시가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않을 때가 많다. 가게 한 켠에 장판을 깔고 사위를 비닐로 덮어 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곳에서 주무신다.

    이점진 할머니에게는 오지 말아야 할 놈들이 있고, 와야 할 분들이 있는데 오지 말아야 할 놈들은 철거용역회사 직원들이다. 용역회사 직원들이 가끔씩 언제 이주할 거냐며 툭툭 말을 붙인다고 하는데 위협이 되는 모양이다. 이 놈들이 와서 노점을 치워버릴까봐 밤에 들어가지 못하신다. 와야 할 분들은 ‘나라’다.

    “여기는 아무도 안와. 상가세입자들한테는 조합에서도 와갖고 설명하고, 구청에서도 나와 뭐라고 얘기한디, 우리 한테는 아무도 안와아. 그래도, 나가 아무리 가진 것 없어도 ‘나라’는 언젠가 나와서 한 번 안보겄능가? 그 냥반들 바빠서 자주는 못댕긴게 내가 기다려야지, 그 냥반들 기다리다 보면 집에 갈 수가 없어.”

    봉천동 12-1구역. 쑥고개 넘어가는 길에 있는 재개발 예정지

    세대위는 주택세입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세대위는 자신들보다 더 사회적 약자인 미해당자(공람공고일 이전 3개월 이후에 입주하여 법적 보호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들에게는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노점상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회원가입을 요청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세대위 회원들은 이들도 세대위에 받아들이자고 하는 주장이 있지만, 다수는 그렇게 하면 세대위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다양한 이해관계때문에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논쟁 끝에 이들은 노점상을 회원가입 대상으로는 하지 않되, 조합이나 시공사 및 구청과의 협상에서 미해당자 문제와 더불어 노점상 문제 해결을 선결조건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노점상인들에게 이들의 법적, 법외적 권리와 재개발 현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구청의 무관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구정질문을 하였고, 관계 공무원을 만나 문제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지역자활센터 활동가들을 초대하여 세대위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초생활수급제도를 안내하는 작은 강좌를 열기도 했고, 전국노점상연합회에 재개발구역 안에서 노점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했던 사례를 구하기도 했다.

    ‘오늘’ 연구소는 용산문제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을 공동체 상영하여 400여석을 꽉 채운 자리에서 ‘함께 살자 세대위’위원장에게 마이크를 잡게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실로 많은 단체와 인사들이 이 곳을 방문했다. 한겨레신문, 뉴스타파, 로이터 통신, 교통방송 등 언론과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다녀가기도 했고, 대학생들이 벽화를 그리고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세대위 회원들이 서로를 향해 보내는, 세대위 회원들과 노점상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지켜가면서 형성된, 먼저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12-1구역 세입자들이 좀 더 더디게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12-2 세입자들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마을 바깥의 사람에게서 느끼지는 못했다.

    이렇게 마을 안에서, 마을 바깥에서 여러가지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 재개발조합과 시공업체와 철거회사 그리고 구청은 세대위와 대화하기로 마음먹은 듯 하다. 이

    대화가 서로에게 만족할 만한 것으로 진행될 것인지 그렇지 못하고 파국적 상황으로 마감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더 이상 건설 및 철거회사 또는 조합의 선의에 세입자들의 생존권을 내맡기는 법률을 존치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주택 2%의 나라에서는 등 붙일 곳 없어 서러운 사람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고, 주택 보급률이 이미 100%를 초과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기 때문에 뉴타운 재개발이나 공공임대주택 추가 건설이 아니라 주택의 소유구조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진보정당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필자소개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전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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