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혐오’를 가르치는
    기성세대의 집단 사기극
    [책소개]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5년 09월 19일 1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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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개새끼론.’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 대해 일각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기성세대는 평소엔 정치를 천하의 몹쓸 것으로 가르치면서, 선거 때만 되면 청년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고 나서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을 개탄한다. 기성세대의 이러한 집단 사기극에 대해 강준만 교수가 돌직구를 던졌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은 물론 ‘제도권 정치 영역’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은 원초적으로 정치를 혐오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강준만 교수의 지적이다.

    청년이 되기 오래전부터 부모들은 자녀에게 ‘정치 이야기는 피하라’, ‘대학에 들어가서도 사회운동은 절대 하지 마라’고 가르친다. 학교 교육은 어떤가. ‘정당의 구조’나 ‘대통령의 임기’ 등 암기용 지식들만이 성찬을 이룰 뿐, 현행 정치 문제에 대해선 그 어떤 ‘분석’과 ‘상상력’도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에서 정치 담론을 보자. 이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대학입시, 빈부격차, 재벌문제, 지방문제, 남북문제 등 중요한 사회 이슈에 대해선 90퍼센트 이상 생각이 같으면서도 정치에 대해선 대화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아예 대화 자체를 피해버린다고 말한다.

    ‘제도권 정치 영역’은 어떤가. 강준만 교수는 기성 정치인들이 정치에 침을 퉤퉤 뱉어 시민들이 침범하지 못하게끔 정치를 독식하는 음모와 농간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어서야 ‘청년 정치인’의 육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며 “청년들이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이냐”고 직격탄을 날린다. 가정과 학교, 사회, 정치권 등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정치를 쓰레기 취급하면서 청년들의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비판한다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기성세대의 위선과 모순에 일격을 가한 강준만 교수는 청년들에게 ‘정당으로 쳐들어가라’고 권유한다. 그 선행 조건으로 ‘정치 사랑’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강준만 교수의 ‘정당 권유론’은 청년들이 지금 당장 정당원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현 단계에선 정치를 사랑하는 것으로 족하며, 그리할 경우 나머지 일은 저절로 풀린다고 말한다. ‘슬랙티비즘’이나 ‘약한 연결의 힘’에 기대를 걸고, 생활정치를 전업으로 할 대표 선수들에게 작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는 행동이 뒤따를 것이라고 희망한다. 요컨대, 이제까지는 정치를 ‘너희의 것’으로 간주해왔다면, 이제부턴 정치를 ‘우리의 것’으로 새롭게 보는 ‘관점 혁명’부터 시작해보자는 뜻이다.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 한탕주의와 성급함을 버리고 서서히, 천천히, 올바른 방향부터 잡아가는 ‘느림의 이점’을 살리자고 역설한다.

    왜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었나?

    선거 전단이 날아오면 봉투를 뜯지도 않고 버리는 부모, ‘정당의 구조’나 ‘대통령의 임기’ 등 암기용 정치 지식만을 가르치는 학교, 정치에 대해선 대화 자체를 피해버리는 사회. 이처럼 우리는 정치는 더럽고 위험한 것이며 따라서 가까이 상종해선 안 될 것으로 가르치고 배워왔다. 청년들의 정치 혐오 또는 정치 무관심은 ‘밥상머리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이 빚어낸 산물이다. 그렇게 정치에 침을 퉤퉤 뱉어놓고 청년들에게 정치 참여를 호소한단 말인가?

    청년이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인가?

    정당들은 청년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면서 선거 때만 청년을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 같은 존재”로 이용하고 있다. 각종 법령이나 통계자료에선 만 19세에서 34세를 청년의 범위로 정하고 있지만, 늙을 대로 늙은 정치권에선 40대도 청년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청년 정치인’ 육성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그런 육성의 주체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청년은 위장용 액세서리거나 소모품 정도로 간주될 뿐이다.

    왜 ‘고기갈이’를 ‘물갈이’라고 속이는가?

    ‘물갈이’란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는 물은 그대로 두고서 ‘고기갈이’를 하는 걸 물갈이라고 부름으로써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썩은 물, 썩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아무리 새 고기를 넣어보아야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질리도록 목격해온 사실이다. 2015년 8월 현재 국회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초선 의원이 절반을 넘긴 151명이나 된다. 그런데 그간 무슨 변화가 있었다고 또 물갈이 타령을 한단 말인가?

    청춘은 미쳐야 사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춘에게 미칠 것을 요구하는 책이 많이 쏟아져나와도 모두들 진지했다. 『컴퓨터 의사 안철수 네 꿈에 미쳐라』, 『스무살 청춘 A+보다 꿈에 미쳐라』, 『1년만 미쳐라』,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서른살 꿈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차가운 열정으로 우아하게 미쳐라』,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어려울수록 기본에 미쳐라』, 『부자가 되려면 채권에 미쳐라』. 이렇듯 미치라고 외치던 때가 있었지만, 아무리 미쳐도 안 되더라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청년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모는가?

    취업난으로 고통 받는 청년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일 뿐이다. 이게 뭐가 그렇게 큰 꿈이라고 그 꿈을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는 걸 포기하고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려야 한단 말인가? 바리케이드 치지 않아도 되고 짱돌 들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토플책 들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할 일 다해가면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공동 대응에도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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