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살아남았다!
자유와 평등, 참여를 향한 끝없는 질주
[책소개] <쿠바식 민주주의>(아널드 오거스트 | 삼천리)
    2015년 09월 19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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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쿠바혁명에서 2015년 미국과 국교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 쿠바는 미국의 온갖 붕괴 공작과 봉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았다. 아니, 21세기 참여민주주의의 모델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구나 오는 19일부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체 게바라와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졸업)이 쿠바를 방문하여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쿠바로 쏠리고 있다.

‘우리 아메리카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

이 책은 양당제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쿠바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이른바 ‘독재 국가’라는 오해를 걷어내는 데 주력한다.

특히, 최근에 쿠바에서 펼쳐진 총선거 과정(2011~2012년)과 쿠바공산당 당대회, 전국회의를 분석하여 현실 정치에서 민중의 참여와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혀냈다. 아울러 쿠바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세 나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민주주의 실험을 함께 살펴본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한국 정치에도 참고할 만하다.

쿠바는 2004년 12월 14일 아바나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우고 차베스가 ‘우리 아메리카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를 결성함으로써 그 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를 구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내며 미국 헤게모니에 맞선 바 있다.

좌파 정부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여러나라 가운데에서도 볼리바르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우고 차베스의 실험, 원주민 전통 ‘파차 마마’(어머니 대지)와 ‘수막 카우사이’(좋은 삶)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볼리비아)와 라파엘 코레아(에콰도르)의 정치 혁명을 참여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쿠바식 민주주의

‘차악’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양당제 대의민주주의

시민혁명을 통해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탄생한 미국 헌법에는 놀랍게도 ‘민주주의’라는 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을 자임하던 미국식 민주주의는 21세기에 들어와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 아랍의 봄에 이어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봉기로 표출된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미국 본토까지 상륙했고 위스콘신 주정부 청사 점거, 뉴욕의 공공장소 점거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책에서, 2008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사례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등장한다. 두 차례의 선거에서 각각 미국 전체 투표연령인구의 28.5와 25퍼센트만을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곧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른바 ‘차악’의 덫에 빠진 선거와 왜곡된 아메리칸드림, 인종 담론의 덕을 본 ‘오바마 부부’는 엘리트와 자본을 배후로 하는 미국 정치 시스템을 고착화시켰다. 결국 서방 언론이 대서특필하던 ‘새로운 인물’은 풀뿌리 민중이 아니라 개인의 기회주의와 지배 세력에 ‘편입’된 차악으로 선택을 받은 셈이다.

호세 마르티,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쿠바 민주주의의 전통

에스파냐 제국에 맞서 제1차 독립전쟁이 시작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쿠바는 오랜 기간 뿌려진 참여적 정치문화의 씨앗과 전통이 살아 있다. 헌법과 선거, 국가, 민주주의 투쟁과 관련하여 풍부한 자생적 경험은 사유재산보다 사회정의와 민중의 참여를 우위의 가치로 놓는다.

일찍이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켜본 ‘쿠바의 볼테르’ 호세 마르티는 독립전쟁의 와중에 쿠바혁명당을 만들고 헌법을 구상했다. ‘무장 공화국’의 과이마로 헌법(1869년) 전통을 이어 1895년에는 히마과유 헌법이 제정되고 16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직접선거권을 부여하는 선거법을 승인했다.

1953년 몬카다 병영 공격을 감행하고 체포된 피델 카스트로는 최후변론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에서 독립전쟁 시기의 헌법을 특히 주목한 바 있다. 1959년 혁명정부가 공포한 ‘공화국 기본법’은 민중이 참여하여 다듬고 승인한 1976년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헌법으로 기능했다.

혁명 이듬해인 1960년 노동절에 피델 카스트로는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이러한 직접적 형태로 민주주의는 압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혁명 과정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 쿠바 사람들은 종이와 연필이 아니라 자신들의 피와 2만 동포의 목숨으로 투표했습니다.”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대중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대규모 대중 집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두 개의 조음기가 진동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소리를 내면서 대화하는 것 같은 어떤 것이다. 피델과 대중은 함께 진동하는 대화를 시작해서 점점 집중하여 마침내 갑작스런 결론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의견 차이와 합의, 민중이 통제하고 풀뿌리에서 직접 개입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낸 혁명정부는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진행하는 한편 의료서비스와 무상교육, 문자해득운동을 펼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아 나갔다. 마침내 1975년 2월 대중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쿠바공산당 특별위원회는 헌법 초안을 내놓았고 그 내용은 대중 토론에 부쳤다.

직장과 교육 기관, 농촌 지역에서 모든 대중조직들이 직접 참여하여 두 달 동안 토론이 이어졌다. 무려 70,812차례의 이웃공동체 토론 모임이 열렸고 2,064,755명이 참가했다. 1976년 2월 24일 보통·비밀 투표로 실시되어 투표율은 98퍼센트를 기록했다. 투표자들 가운데 97.7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 헌법을 토대로 그해 10월에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어 11월에는 시의회 대의원들이 도의회 대의원들을 선출했으며, 그다음에 도의회 대의원들이 최고 권력기구인 민중권력국가의회(ANPP, 국회) 대의원들을 선출했다. 시민들이 선출한 대의원들 가운데서 국가평의회 의장이 선출된다. 그전에 전국후보자위원회(CCN)는 민중권력국가의회 임원과 국가평의회 평의원 추천, 선출을 조직하는 책임이 있다.

2006년 국가평의회 제1부의장이던 라울 카스트로는 병세가 악화된 피델 카스트로한테서 의장직을 넘겨받았고, 2013년 선거를 통해 민중권력국가의회 대의원이자 국가평의회와 각료회의(정부) 의장으로 선출되어 2018년까지 쿠바공화국을 대표하고 있다.

현재진행형 민주주의의 잠재력과 한계

이 책은 2011~2012년 가장 최근에 전개된 쿠바공산당 선거과정, 평상시 정치활동을 현지 참여관찰을 통해 정치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쿠바공산당 당대회와 전국회의 과정, 4년마다 치르는 쿠바 총선거의 과정과 절차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민중권력국가의회’와 시의회, 그리고 민중평의회의 정치활동을 분석하면서 선거 국면뿐 아니라 평상시에 민중의 참여와 개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

현대 쿠바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런 분석은 쿠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거나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식으로 왜곡된 정보를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학생운동 경험을 가진 비판적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쿠바에서 맺은 두터운 인맥을 활용하고 참여 관찰과 인터뷰, 생생한 자료를 동원하여 내부 정치 시스템을 분석한 점이 돋보인다.

지은이는 쿠바식 참여민주주의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만, 그 결함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다만, 외부 관찰자의 시각보다는 쿠바 내부의 학계와 언론의 비판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초 중앙은행장과 산업부 장관으로 일하며 체 게바라가 목도한 관료주의와 교조주의, 부패 구조는 여전히 참여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경제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은 풀뿌리 민중이 진화하여 쿠바 정치 주역으로 좀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데 달려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쿠바의 사회과학자들과 언론인,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참여의 수준을 높이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쿠바는 여전히 또 다른 민주화 국면을 겪고 있고 새로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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