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수대회 개최
"대학 공공성과 민주주의 지키자"
"고현철 교수 뜻 받들어 대학 민주화 투쟁 시작"
    2015년 09월 18일 08:18 오후

Print Friendly

교육부가 재정 지원을 압박하며 대학 총장 직선제를 무력화하려고 개입한 것에 항의해 부산대학교 고 고현철 교수가 투신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 1000여명의 대학 교수들이 서울 도심에 모였다. 대학의 자율성 회복 등을 촉구하는 것을 물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현 상황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1,000여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이 거리 집회를 단독으로 개최한 것을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전국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등 전국의 교수단체 및 고 고현철 교수 추모와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한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오후 2시 여의도 산업은행 앞 인도에서 ‘9.18 전국교수대회’를 열고, 대학 구성원 스스로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자성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9.18 전국교수대회 문계완 조직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70년 한국 대학사에서 지난날의 나태와 방종을 반성한다”며 “고현철 교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 조직위원장은 “독재에 대한 정치·사회·문화적 순응주의를 배격한다. 교육은 물적 상품이 아닌 인격적 공공재다. 타율에 의한 선진화, 지역적 차별을 무시한 특성화, 자본의 탐욕을 위해 순수한 대학 정신을 말살하는 교육부의 모든 교육정책을 배격한다”며 “대신 우리는 교수대회를 기점으로 학문의 자유를 포함한 대학과 교육의 본질적 가치 회복을 선언하고 자발적인 내적 혁신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교1

이하 사진은 유하라

1

민교협 송주명 공동의장 또한 “우리가 무뎌진 사이에 대학이 타락한 재벌의 지배 속에서 망가졌다. 이제 대학에는 민주주의도, 학문공동체도 없다. 비판적 지성을 추구하는 교수와 학생은 설 자리를 잃었다”며 “무뎌지지 말자. 대학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했다. 때문에 대학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고현철 교수의 뜻을 살려 민주적 대학 공동체를 위해 이제 살아있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감사 중 잠시 참석한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도 연대사를 이어갔다. 정 원내대표는 “퇴행하는 이 세상을 너무 무디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고현철 교수의 지적이 가슴을 계속 찔렀다”며 “대학의 지성이 침묵하면 민주주의는 지킬 수 없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학문의 자유도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얻어낸, 지켜낸, 이뤄낸 민주주의인가. 다시,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도록 오늘 이 자리를 시작으로 더 많은 국민들에게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고 교수의 투신에 대해 서울대의 책임이 크다는 글을 쓴 김명환 서울대 교수도 이날 교수대회에 참석했다.

김명환 교수는 지난해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이었던 서울대 총장 선출과정을 언급하며 “맞서 싸우지 못한 서울대 교수들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교수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연대의 정신으로 한국 대학이 제 갈 길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학 민주주의와 자율성, 공공성을 위한 싸움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현철 교수는 유서에서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에 대한 상황인식이 무뎌있음을 질타했다”며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여기 모인 교수, 직원, 학생 등 대학의 여러 구성원들이 연대의 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지방대학, 수도권 대학, 전임교수, 비정규교수 등 모든 차이와 차별을 넘어 연대해야 한다. 연대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교2

ry4

이에 앞서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같은 날 오후 1시 ‘9.18 전국교수대회 사전 결의대회’도 열었다.

공대위가 반대하는 정부의 핵심 정책은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 ▲총장 직선제 폐지 ▲국립대학 민영화다.

이 가운데 대학평가 관련 법안은 쉽게 말해 교육부가 대학에 등급을 매겨 등급별로 줄을 세우고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을 퇴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각에선 이 법안을 두고 ‘대학이 한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대학 평가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한 수도권과 지방간의 고등교육 불균형을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공대위 임재홍 정책위원장은 대학평가 관련 법안에 대해 “사회양극화라는 부정적 모습이 고등교육에 반영된 것이며, 대학의 양극화는 다시 사회의 재봉건화를 초래할 위험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국립대학 민영화는 대학의 기업화를 촉진해 교육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다. 공대위를 비롯한 교수단체들은 국공립대학을 확충하고 현재 사립대학들도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정부 등 공적 기관에서 대학운영경비의 50% 이상을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도 국공립대학이 사립대학을 인수·합병 등도 제시되고 있다.

대학 총장 직선제 폐지는 대학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을 경우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총장 선출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재정 지원 중단 압박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대학들은 총장 선출제를 교육부의 뜻대로 변경했고 대학 구성원의 반대로 마지막까지 직선제를 지켰던 부산대마저도 간선제 수순을 밟았다. 고현철 교수는 이에 항의하며 투신했다.

공대위는 투쟁결의문을 통해 “고현철 교수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잘못된 교육정책을 폐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박근혜 정권은 일방통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는 진정한 대학 민주화 투쟁의 시작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선언하다”고 밝혔다.

한편 교수단체들과 공대위는 집회가 끝난 오후 4시경 여의도 새누리당사에 항의 방문을 하고 청와대에 정부의 대학 공공성 훼손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