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위한 대타협 아닌
‘노동-환경’ 대타협 필요
[에정칼럼] 노동자여, 소비하라?
    2015년 09월 17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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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고객님!”

휴대폰 너머 낯선 여성의 느닷없는 사랑 고백은 설레임보단 짜증을 불러온다. 하루에도 여러 통의 보험, 대출, 휴대폰, 카드 그리고 최근에는 주간지 구독까지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요청에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휴대폰에 찍힌 낯선 전화번호에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나마 기계음이라면 미안함을 버리고 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매일 감정노동을 하는 텔레마케터라면 상황은 다르다. 더 들을 것도 없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거나 단칼에 “됐습니다.” 하고 끊어버리기에는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한번은 카드를 발급하라는 전화에 긴 실랑이를 한 적이 있다. 이미 카드가 있음에도 더 나은 혜택이 있는 카드를 하나 더 발급 받으라는 것이었다. 카드 하나 더 발급 받는다고 세상이 무너질 일은 아니었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더 소비하고, 생산하게 만드는 이 불편한 상황에 대해 애먼 텔레마케터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아마도 그분은 오늘 참 재수 없는 고객 하나를 만났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카드를 발급받았다. 이 귀찮고 깐깐한 고객이 단지 카드를 발급받는 것만으로 텔레마케터의 실적은 올라가고, 이로써 그는 작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서랍에는 한 번도 쓰지 않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가 나뒹굴고 있다.

최근 들어 또 하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휴대폰 무상 교체 전화다. 이 역시 처음에는 고장나지 않은 휴대폰을 바꾸라고 하는 것에 대해 따져댔지만, 이제는 휴대폰을 얼마 전에 바꿨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와 텔레마케터의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휴대폰 판매업자나 고객을 더 확보하기 위한 통신사들의 장삿속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슬슬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4년이 되어가는 휴대폰을 고쳐야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그냥 바꾸라는 반응이었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소비를 해야 내수가 살아나지 않겠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희한한 일이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무언가를 아끼고 소비를 줄이자는 이야기보다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살아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이렇게 노동자를 위해 다른 노동자가 해야 할 으뜸 덕목은 소비가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뉴욕

2014년 9월 뉴욕에서 열린 민중기후행진(사진=사회진보연대)

적록 대타협을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자.

노동계는 최저임금 만원에 대해 요구하고 있다. 나 역시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시대에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올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최저임금 만원’ 운동에도 동참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과연 노동자의 주머니가 든든해지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나 녹색가치의 구현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지난 14일에는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으로 포장된 최악의 야합이 이뤄졌다. 야당과 사측은 아빠의 임금으로 엄마와 아이들까지 고용할 수 있고, 고용인을 해고하는 것이 (지금도 충분히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더 쉬워지는 시대가 열린 것을 자축하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지금보다 열심히 다른 노동자들의 소비를 권장할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고용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자원의 추출과 고갈 그리고 지구환경의 파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시작은 아마도 노동자 권리를 위협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와 녹색 가치가 함께 실현되는 노동-환경 대타협을 위한 길일 것이다. 특히 경제와 환경이 위기에 빠질수록 우리는 더 노동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찾고 다가가야 할 것이다.

사실 그간 나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에 민주노총 소속의 에너지부문 주요 노조와 환경단체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를 창립함으로써 적록동맹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또 2007년 발리에서 열린 13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부터 노동진영도 기후변화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노동, 농민, 환경진영이 모인 ‘기후정의연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이 일련의 활동들은 그간 시각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두 진영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 자리했다는 것 외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장기적 비전과 이를 위한 노동과 환경의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니 그것을 위한 날선 논의에 조차 이르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의 문제,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에 대한 문제, 석탄화력 발전소의 폐기의 문제 등 환경진영에게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노동진영은 침묵했다. 마찬가지로 노동진영에게 시급한 비정규직 철폐, 일자리 안정화, 부당해고, 최저임금 등의 문제는 환경진영에게 주요의제로 자리 잡지 못했다. 두 진영은 여전히 서로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것을 잃은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에너지도, 전기도, 송전탑도 모르던 밀양 할머니들이 70, 80 평생을 살면서 이제야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한탄했던 일이 생각한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밀양을 방문하고 한국이라는 사회의 연결고리 어딘가에서 서로가 만난다는 것을 서로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에도 쌍차 노동자도 밀양 할매들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돌아갈 수 없는 또 다른 삶들이 쌓이기 전에 우리는 우리들의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 누군가에게 진부하고 지루할지 모를 이야기이지만 끊임없는 소비와 생산이 결국 노동진영과 환경진영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이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 다시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탈핵과 에너지 전환, 안전한 먹을거리와 식량안보, 안정적이고 평등한 노동권의 확보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될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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