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
    강성좌파의 재현? 좌파의 새로운 기회?
    [기고] 당내 정치 넘어 사회운동과 더 결합해야
        2015년 09월 17일 09:33 오전

    Print Friendly

    1.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새로운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 코빈은 30 여 년 동안 하원의원(Member of Parliament, MP)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소속된 당의 노선에 반대해 표를 던진 횟수만 500번이 넘는 노동당 좌파였다. 토니 블레어(Tony Blair)가 주도한 신노동당(New Labour)의 우경화 노선에 비판적이었고 부당한 국제적인 무력개입에 반대했었다.

    당수 당선 직후 개최된 노동조합회의(Trade Union Congress)의 연설에서 보수당을 ‘빈곤을 부인하는 사람들’(poverty deniers)라고 비판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복지 축소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자였다.

    그는 노동당 역사에서 논란이 대상이 되었던 당헌 4조(국유화)를 다시 복원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존 메이저(John Major)-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Gordon Brown)-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의 보수당-노동당-보수당 정부들이 공히 받아들였던 시장과 경쟁의 원리가 복지국가의 잔재를 완전히 파괴하고 시장이 사회적 통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영국사회에서 시장근본주의, 사유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제기한 사람이 주요 정당의 당수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코빈1

    제레미 코빈(사진=bbc)

    2.

    역사적 필연은 언제나 우발적 계기들에 의해 드러난다. 직전의 당수였던 에드 밀리반드(Ed Milband)는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당수 선출 제도를 변경한다. 당원이 아니더라도 3파운드를 내면 당수 투표권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애초 노동당의 선거제도는 노조와 사회운동에 기반한 지구당에 의해 좌우되었었다.

    1980년대 시작된 노동당의 현대화 전략은 좌경화된 노조와 사회운동의 힘을 차단하기 위해 노조와 지구당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축소하는 1인 1표 제도로의 전환을 도입한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조직화된 운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당 의원단과 대표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형식적 민주화와 병행된 것이 정치를 마켓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위 홍보전문가(spin doctor)들이 힘을 발휘하고 이미지와 여론몰이로 노동당의 토대가 되었던 풀뿌리 운동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이것은 당내 좌파에게 치명적이었다. 이와 유사한 선거개혁을 밀리반드가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밀리반드의 선거제도 변경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80년대 형성되었던 조직화된 좌파는 이미 무력화되었다. 자선단체와 시민운동단체로 뿔뿔이 흩어졌고 무당파 좌파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노동당 노선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생태주의 정당에서 좌파 정당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녹색당으로 당적을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미래를 저당 잡힌 노동당 안팎의 청년들이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원리가 된 영국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존 정치권과 언론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낙인찍은 60대 중반의 좌파 정치인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좌파가 아니었다. 70-80년대 노동당을 진정한 좌파정당으로 개조하려 했던 노동운동 투사들, 지역 활동가들, 환경운동가들, 여성해방 운동가들처럼 운동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강한 조직적 기반을 가지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캐머런의 보수당 정부의 계속되는 긴축과 복지 축소,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고 연립정부의 달콤함에 빠져 본래 가지고 있었던 이념적 자유주의를 상실한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리도 만무했다. 노동당은? 노동당은 이미 좌파 정당이 아니었다. 2010년 고든 브라운이 이끄는 노동당이 선거에 참패한 후 당수 자리에 오른 밀리반드는 ‘빨갱이’(red)라는 수식어에 한참 못 미쳤다.

    신노동당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시장의 원리를 받아들인 우파 정당이 되어 버렸다. 보수당과의 논란은 ‘정도’의 문제였을 뿐이다.(밀리반드와 관련 된 내용은 <진보평론> 2010년 겨울(제46호)에 실린 필자의 글 “누가 에드 밀리반드를 ‘빨갱이’라 부르는가?”를 참고하라.)

    3.

    불로소득으로 배를 불리는 부유층과 부도덕한 금융가들을 지켜보면서 불안정한 일자리, 불완전하지만 전후 세대가 가졌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저항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불만과 저항은 네 가지 경로를 통해 드러난다.

    첫째, 정치적 무관심이다. 이미 좌우파 정당의 경계가 무너져버렸고 보수당-노동당-자민당이 모두 오른쪽에서 사소한 노선 차이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 선거가 돈을 쏟아 붓는 광고전으로 전락해 버린 조건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팽배하게 된다.

    둘째,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10년에서 2015년 동안 풀뿌리 기층으로부터 전개된 긴축반대 운동의 열기는 뜨거웠다. 많은 집회들이 열렸고 다양한 연대 단체들이 생겨났다. 노동당은 이러한 기층의 운동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셋째, 불안한 미래와 내면화된 경쟁의 논리와 이기주의는 극우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영국독립당(UKIP)과 영국민족당(British National Party)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류언론과 정치권은 이러한 극우적인 흐름을 노동자들이 가진 편협한 인종주의로 몰아가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시도하기도 한다.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하고 이주자에 대한 강경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면서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조장된 인종주의 말고는 자신의 불만을 토로할 길을 차단당한 노동자들에게 인종주의의 낙인을 찍는 잘 계산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네 번째의 경로는 앞의 세 가지보다 복잡하다.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서 이 네 번째 미묘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은 극우적인 경로보다는 덜 하지만 우파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저변에는 웨스트민스터가 주도하는 긴축과 복지축소에 대한 격렬한 반감이 숨겨져 있다. 두 번째 경로였던 기층으로부터의 반긴축 캠페인에서 스코틀랜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항이 드러난 방식이 독립운동이었을 뿐이다. 겉으로는 좌파지만 실제로는 우파라는 비난을 받는 스코틀랜드민족당(Scotland National Party)은 당의 이름과는 달리 중도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이었고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을 자신의 정치적 토대로 흡수하면서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민족당이 약진할 수 있게 했던 것은 민족주의적 정서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과 저항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네 가지 경로 모두 노동당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정치적 무관심은 곧 좌파 정당이 발 딛고 서야 하는 사회적 토대가 침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나 보수적 정당은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진다. 돈과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 정당은 보수정당이 기반 한 부와 권력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대변해야 한다. 중도좌파 정당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자기 기반을 버리고 보수 정당의 지지기반을 획득하겠다는 헛된 꿈을 꾸는 것이다. 결과는 당의 정체성 상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 밖의 운동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될 때 좌파 정당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된다. 풀뿌리로부터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노선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배블록과 한 배를 탄 정치엘리트들에게 풀뿌리의 목소리는 정치의 논리를 모르는 대중의 소란일 뿐이다. 기회는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영국 정치에서 왼쪽에 공백지대가 된다. 당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극좌파 분파들이 대체할 수 있는 공백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공간을 메우지 못하면서 비어 버린 왼쪽은 가장 오른쪽의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극우파의 성장이 그것이다. 이 또한 노동당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극우파의 위협이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노동당에게 치명타는 스코틀랜드로부터 날아 왔다.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텃밭이었다. 그런데 긴축정책에 불만을 가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이것과 동시에 불만이 독립이라는 민족주의적 정서와 접합된다. 2015년 5월의 총선에서 66개의 스코틀랜드 의석 중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65석을 차지한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던 것이다.

    역사의 필연은 언제가 우연한 계기를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필연은 정해진 방향을 향해가는 일직선의 운동이 아니다.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우연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코빈에 대한 적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노동당의 우파 의원단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블레어

    코빈의 당선을 막기 위해 온갖 협박과 저주를 퍼부었던 블레어 전 총리

    선거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에 참여하고 있던 몇몇 인사들이 코빈과는 함께 하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그들에게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밀리반드가 만들어놓은 당수 선거제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민주적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말하지만 보수당보다 더 코빈을 물어뜯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 코빈의 몰락은 ‘우연’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시장 근본주의라는 기정사실을 거스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고 결국 한 번의 해프닝으로 막을 내릴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코빈이 당수가 되자마자 트위터에 ‘이제 노동당은 영국의 안보에, 경제적 안전에 그리고 모든 가정의 안정에 위협이 되었다’고 말한 캐머런보다 노동당 우파들이 더 적대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코빈의 당선은 완전한 우연이 아니다. 우연을 통해 드러난 영국 보통사람들, 특히 청년층의 불만과 저항, 그리고 정치정당들의 우경화와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사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연을 통한 필연이 코빈과 노동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코빈의 노동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는 수많은 우연들과의 대면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4.

    이제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되는 과정이 열어 놓은 새로운 가능성과 영국 좌파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그 누구도 미래를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가능한 경향에 대해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먼저 코빈의 당선이 영국정치의 새로운 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 5년 동안 영국의 보통 사람들이 열망했지만 정치인들로부터 무시당했던 ‘공공서비스 축소 반대’에 공감하는 유력 정치인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또한 코빈의 당선은 지금까지 웨스트민스터, 그리고 노동당을 지배했던 엘리트주의적 정치 스타일과 단절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코빈은 TV와의 인터뷰에서 ‘의원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TUC대회에서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거 캠페인 내내 당의 정책결정에 소수의 전문가가 아닌 당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새로운 도시좌파들이 런던, 셰필드, 웨스트미들랜즈에서 실현하려고 했단 참여민주주의를 다시 천명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60만 명이 노동당 당수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신노동당의 현대화 전략이 파괴했던 노동당의 사회운동적 뿌리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코빈은 연설에서 자기에서 표를 던진 사람들의 숫자가 보수당 당원의 두 배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비록 존 맥도넬(John McDonnell)을 그림자 내각 재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상위직을 남성이 독차지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림자 내각의 반 수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인디펜던트>의 기사 ‘5 reasons to be happy with Jeremy Corbyn’s victory’ 참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더 중요한 것은 노동당이 블레어의 신화와 단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빈은 블레어의 지속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노동당 고위 인사들의 계속되는 딴지 걸기는 코빈이 블레어가 당수 선거에서 얻었던 57퍼센트를 앞서는 59.5퍼센트를 획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제 블레어는 위기에 빠진 노동당을 구해내고 집권정당으로 만든 인물이 아니라 당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내동이치고 자본의 논리에 투항해 버린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블레어와 단절이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오픈디마크러시>(openDemocracy)의 설립자인 앤소니 바넷(Anthony Barnett)이 말했듯이 코빈의 당선은 노동당 정치인들의 위기를 상징하지만 민중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인 것이다.

    5.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된 것은 코빈과 새로운 노동당이 현재 처해 있는 조건일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는 수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코빈에게 적대적인 노동당의 블레어주의자들, 보수당과 언론의 거센 공격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시리아 공격과 핵 개발 운용체제인 트라이던트 현대화에 반대하는 코빈을 물고 늘어지면서 국제문제에 대해 서투른 문외한이라고 부각시킬 것이다. 영국의 안보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떠들 것이 뻔하다. 사회적 유럽을 강조하면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입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주장도 주요한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노동법 개정, 이민자 문제, 복지축소 등은 그가 이끄는 노동당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의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의 의사당 안에서 그가 이끄는 노동당 의원단조차 그에게 적대적인 상황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조건에서 당 내외 좌파들의 충고는 웨스트민스터를 상대로 한 정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 당 내 정치보다 더 넓은 정치를 보라고 말한다.

    노동당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진 고참 사회운동가인 힐러리 웨인라이트(Hilary Wainwright)는 지난 6월 선거 캠페인 초기에 <레드페퍼>(Red Pepper)에 기고한 글에서 노동당을 개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그녀에게 그건 불가능한 임무다) 노동당을 넘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몇몇 우호적인 논평자들도 코빈을 지지했지만 조직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정치적인 힘으로 결집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바넷과 웨인라이트는 모두 사회운동에 주목한다. ‘긴축에 반대하는 민중동맹’과 같은 전국적인 조직과 풀뿌리로부터 생겨나고 있는 수많은 자생적 운동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득표 당선제(first-past-the-post voting)인 비민주적인 영국 선거제도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노동당이 비워놓은 좌파의 자리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녹색당과의 연대도 중요하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코빈의 당선이 유력해졌을 때 녹색당의 유일한 재선의원인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녹색당의 연대를 제안했다.(선거제도 때문에 의석을 확대하지는 못했지만 녹색당은 2015년 총선에서 2010년 보다 4배 많은 표를 획득했다.)

    녹색당은 이미 지방선거에서 공동대응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는 웨인라이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지역의 구체적 쟁점을 통해 진행되는 운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코빈이 주장하는 참여적이고 집합적인 노동당은 당 상층부의 선거연합으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블레어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당 조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민주적인 정당성을 가진 바깥으로부터의 압박만이 의회에 갇혀 있는 노동당 우파를 무력화시키고 당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코틀랜드민족당과의 연대도 중요하다. 내년 5월의 지방선거에서 스코틀랜드민족당과의 연대는 코빈이 통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관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긴축에 적대적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저항을 웨스트민스터에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노동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힘을 지역의 사회운동으로 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6.

    코빈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코빈의 노동당은 이미 잘못된 길이라고 증명된 80년대 좌파 노선으로의 회귀라고 비판한다. 혹자는 불가능한 케인스주의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다고 말한다. 80년대 노동당 좌파가 가졌던 꿈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맞다. 80년대 그들이 꿈꾸었던 정치는 낡고 경직된 복지‘국가’를 넘어서지만 시장으로의 후퇴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지금보다 더 절실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단순한 회귀는 아니다. 코빈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80년대처럼 운동가나 활동가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운동의 원리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945년 복지국가의 토대를 놓았던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Attlee)정부를 지지했던 민중의 평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21세기 버전으로 재현해 내는 것, 하지만 애틀리 정부를 붕괴시켰던, 모든 노동당 정부가 사로잡혀 있었던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와 웨스트민스터 엘리트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코빈의 노동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과 제임스 캘러헌(James Callaghan)은 이런 열망을 의회정치로 동원할 수는 있었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결과는 대처주의로의 길을 터 주는 것이었다. 닐 키녹(Neil Kinnock)에서 시작되어 존 스미스(John Smith)와 블레어에 의해 완성되는 현대화는 그 열망을 왜곡하고 억압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노골적인 계급정치를 스스로 실천하면서 그 희생자인 노동자와 평범한 시민들을 능력 없는 자, 가상의 범죄자로 취급했다. 소위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당의 정체성을 버린 것이다.

    코빈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과거의 부분적 성공, 실패 그리고 ‘잘못된’ 성공을 반면교사로 삼아 포스트모던 좌파의 새로운 노선을 개척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실험은 스페인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게, 그리스에게서, 그리고 유럽을 넘어선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대안적 실험과 함께 나아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성공에 대한 희망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관하지도 않는다.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작은 운동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넘쳐난다. 다만 이 운동들이 모아지고 조직화되어 사회변혁의 힘으로 결집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이제 코빈주의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소개
    제주대 교수. 사회학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