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안철수 아닌 안철수:나머지"
    [말글 칼럼] 진영논리 벗어나는『안철수의 생각』 효과
        2012년 07월 23일 1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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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하나하나는 쉽게 잘 읽히지만, 그것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아서죠.

    하루 만에 초판 4만부가 매진됐다는 건 놀랍습니다. ‘나꼼수’류의 흥행과는 차원이 다른 현상입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정책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거든요. 읽기에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지요. 물론 책을 샀다고 다 읽는 건 아니겠지만, 여하튼 엄청나게 팔립니다.

    정책 대결을 선점하다

    지금까지 봐온 어떤 선거판에서도 누군가의 정책 공약이 이렇게 삽시간에 널리 알려진 경우는 없지 싶습니다. 박근혜 쪽이나 민주당 후보들의 공약을 제대로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니 ‘대한민국 남자’니 ‘저녁이 있는 삶’ 정도만 들어봤지, 그 내용이 뭔지는 모르거든요.

    다른 주자들에게는 이게 무서운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떠들었는데 귓등으로만 듣던 유권자들 아닙니까. 그러던 사람들이 읽기 만만찮은 이 책을 제 돈 들여 사서 열심히 읽는단 말이죠. 트위터 들어가면 ‘다 읽었다’고 보고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책으로 승부한다는 인상을 단단히 심어준 겁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안철수와 박근혜, 안철수와 민주당을 비교하면서 도배하다시피 합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정책 대결의 중심을 안철수가 틀어쥐어버렸다는 게 다른 주자들로선 허탈할 수밖에요.

    김두관 후보는 이를 두고 ‘이미지 정치한다는 비판 받을 수 있’다고 비판하더군요. 이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책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게 정책으로 승부를 건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건 사실이니까요. 그게 나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게 김후보로선 아픈 점이죠.

    누군가의 정책을 알면 떠들게 돼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것과는 다른 문제죠. 이미지에 내용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게다가 ‘힐링 캠프’까지 출연한다니, 정책과 이미지 둘 다를 치고 들어가는 셈입니다.

    이 일련의 전개과정은 우연이라고 보기엔 아주 치밀합니다. 저는 분명 작전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출판가에서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책을 찍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인터뷰한 것을 그때그때 출판사에 넘겨주고 표지도 미리 만들어뒀다는 거죠.

    실제 읽어보니 오탈자 하나 없더군요. 문장도 정말 잘 다듬었고요. 어려운 내용도 쉽게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여럿이 공을 들여 세심히 만들어낸 책으로 보였습니다. 아니면 ‘신의 손’을 빌렸든가요.

    절묘한 타이밍, 박근혜를 겨냥하다

    언론에서는 ‘절묘한 타이밍’이라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다들 민주당 후보들에 초점을 맞춰서, 니네들 힘들게 됐다는 식입니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기껏 경선으로 관심도 끌고 지지율도 올리려던 판에 재를 뿌린 셈이니까요.

    그런데 민주당 쪽만 힘들게 된 걸까요? 글쎄요. 저 보기엔, 사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박근혜 쪽 아닌가 싶습니다.

    박근혜는 처음 책 나왔을 때는 아무 말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이 연일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하자 드디어 입을 엽니다. 출간 사흘 지나고 “출마를 정식으로 하셨나요?”라며, “출마를 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국민께 확실하게 밝히셔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합니다.

    측근들의 반응은 애써 깎아내리려는 분위기지요. 홍사덕은 ‘책 한권 달랑 던지는 건 국민들에게 무례한 짓’이라 합니다. 또 누군가는 ‘내용이 별 것 없어 우리로선 다행’이라 애써 깎아내리더군요.

    정치인들 말은 뒤집어서 해석하면 대충 맞습니다. 박근혜의 말은 ‘나올 거면 제발 빨리 좀 나와라’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빨리 나와야 여론 봐가면서 계산도 하고 ‘검증’ 과정에서 흠집도 내고 할 텐데 말이죠. 그 실체를 모르겠는데 책은 엄청 팔리고, 답답한 거죠.

    언론들까지 빨리 나와라, 지금도 늦었다, 그러니까 국민들도 그러려니 생각을 하지요. 근데 말이죠,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 봅시다. 상대가 빨리 나오라 하는 건 그만큼 초조해한다는 거잖아요. 상대가 바라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도 일종의 작전 아닐까요?

    안철수의 기상천외한 등판이 박근혜 쪽을 난감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최근의 ‘5.16’ 발언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5.16을 일컬어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했죠.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이건 야권 후보들의 입을 ‘독재자의 딸’에 붙들어 매어 두고 자기만 ‘경제민주화’ 쪽으로 나가려는 작전입니다. 한마디로 ‘치고 빠지기’죠. 그렇게 야권을 구시대에 사로잡힌 세력으로 싸잡아서 내치려던 거죠. 바로 이 작전이 한 방에 깨져버린 겁니다.

    밥상을 가로채다

    어찌 보면, 작전이 어그러진 정도가 아닙니다. 안철수는 박근혜가 옭아매려던 구시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이 덤덤하니 ‘복지’, ‘공정’, ‘평화’를 일목요연하게 내놓는단 말이죠. 이거야말로 기껏 차린 밥상을 안철수가 받아먹어버린 꼴 아닌가요.

    게다가 이미 5.16 발언까지 한 터라, 졸지에 박근혜까지 안철수가 넘어서겠다는 ‘낡은 체제’에 휩쓸려 들어간 꼴이 돼버렸습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도 이렇게 넘어갈 수가 있을까요.

    안철수는 민주당과도 선을 그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낡은 체제’에 갇힌 세력과는 달리 가겠다는 거지요. 이렇게 해서 기존 후보들을 몽땅 ‘5.16=낡은 체제’에 가두고 혼자 ‘미래’로 달리는 형국을 만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두관은 안타깝게도 출판기념회에서 ‘박근혜가 당선되면 제2, 제3의 5.16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사자후를 토하더군요.

    안철수는 스스로도 강조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도 이른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박근혜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입니다. 오른쪽은 안전하다 여기고 중원으로 진출했는데, 그래서 자신 있게 5.16을 미끼로 던진 건데, 비워둔 오른쪽을 파고드는 형세니까요. 강남 3구에서 책이 제일 많이 팔렸다지요?

    어쩌면 지금 국민들 눈에는 ‘박근혜 :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 : 나머지’의 구도가 보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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