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국가와 노동조합
    대기업노조, 기업복지 틀 넘어서야
        2015년 09월 15일 10:0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토요일(12일) 늦잠을 자야 하는 주말인데, 아침 일직 일어나서 집을 나섰다.

    초가을 아침 언양까지 달리는 도로 주변 풍경도 좋았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 바람도 좋았다. 지난 밤 마셨던 술이 확 깨는 기분, KTX 울산역에 도착하니 예약된 기차시간이 좀 남아서 김밥을 한 줄 사서 아침을 때웠다.

    서울 광화문 앞에서 간담회 장소를 찾는데 좀 헷갈렸지만, 경찰 아저씨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쉽게 가르쳐준 택시 기사분 덕에 간담회 장소를 찾아 갈수 있었다.

    대학 교수님들과 연구소 연구원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비정규직센터, 공무원노조 등 노동조합 활동가 및 전현직 간부들이 참석한 간담회 주 발제문은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인 이주호동지가 작성한 “한국 노동조합의 복지국가 주체세력화 가능성 및 실천전략”이라는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에서 활동한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의제일수도 있다.

    특히, 의료, 진료, 교육, 주거 등 보편적인 복지과제를 기업복지로 확보하고 있는 현대차지부 등 대공장 노조 간부나 활동가들이 들을 때 이러한 복지를 ‘기업복지’가 아니라 ‘국가복지’ 영역으로 전환 또는 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확 와 닫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를 향한 “귀족노조, 이기주의​”라는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서 상당수 국민들, 특히 많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정치권의 주장을 ‘그렇다’고 믿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다”고 인식한다면 기업복지와 국가복지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 할 수밖에 없는 과제다.

    구 사회보험노조의 집회 모습(사진=노동자연대)

    2014년 현대자동차 복리후생비 지급 현황을 보면, 국민연금(9%, 노사 각 4.5%) 노사가 납부한 금액 2,683억, 고용보험(1.95%, 회사 1.4%) 회사 측 납부금액 818억(직원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이 안 됨)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회사와 노동자들이 1년에 수천억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을 납부하면서 우리는 내가 낸 국민연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운영하는 데 위험은 없는지? 나는 언제부터 얼마만큼의 보험금을 받는지? 또, 고용보험료를 납부했는데, 이 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나는 어떤 혜택을 받는지? 우리가 낸 보험금을 정부나 국가권력들이 지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데, 그 실태는 뭔지? 이런 불합리함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관심이 없으니 정권을 장악한 집단이 때만 되면 “연금개혁”을 앞세워 그때마다 납입금액은 늘리고, 지급받는 금액을 깎아 버리는 “연금개악”의 감행이 반복되는 것이다. 2015년 박근혜는 공무원연금을 깎았고, 그 다음은 군인연금, 그 다음은 국민연금 순으로 개악을 하자고 덤빌 텐데 우리는 또 당할 것인가?

    2014년 현대자동차는 진료비 지원에 408억, 종합검진비로 54억, 자녀학자금(중,고교,대학교) 1,328억, 장애인특수 14억, 유아교육비 15억 원을 투입한 것으로 밝혔다.

    의료비 지원을 회사 측으로부터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무상의료 운동”에 관심이 집중되겠는가? 교육비를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등록금 인하투쟁”에 관심이 가겠는가?

    대한민국에서 2014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연봉 3,127만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가 무려 1022만5454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63%에 달한다. 2014년 전체 노동자들 중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31.2%에 이른다.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주거권은 생존의 요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 노동자들은 교육비와 의료비를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으면서 절대다수 노동자와 민중들의 생존권적인 요구인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외면한다면 대기업 노조의 ‘고립’은 더욱 더 심화될 것이고, 결국 외로운 섬에서 몇 년의 풍요(?)를 누리다가 자멸하고 말 운명에 놓일 것이다.

    기업복지가 이렇게 강화되고, 편차가 심해진 원인은 노사관계의 교섭구조가 기업별 교섭구조에 묶여있기 때문에 노조의 조직력이 강하고, 기업의 지불능력이 허용된 대공장부터 기업복지가 강화된 것이다. 물론, 국가복지와 사회복지를 강화시킬 강력한 진보정치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보수 양당이 정치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정치구조에서 기인된 원인도 근본원인 중 하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료, 교육, 주거, 환경 등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는 중소영세 사업장 저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이 의료, 교육, 주거, 환경 등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복지 수준을 대폭 끌어올리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투쟁에 노동자,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 기업단위 노동조합이 한 목소리로 “기업복지를 넘어 국가복지 강화로 의료, 교육, 주거, 환경문제를 보편적 복지로 해결하자”라고 주장하며 시민사회와 정치세력들과 손잡고 사회연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연구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이번 간담회 참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이분들의 연구결과가 기업별 노조, 기업별 사업, 기업별 복지에 갇혀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 갈 수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담회에 갔었다.

    “노동조합이 사회공공성, 복지문제에 매달리는 건 개량주의다” 옛날에 많이 들었던 이야긴데, 그래서, 노동조합이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자기 것만 챙기려 달려온 28년 역사에 결과물은 어떤가?

    이주호 단장은 발제문에서 “복지국가 운동과 노동조합의 실천과제”로

    1) 노조 차원에서 복지국가 운동, 사회연대 운동의 의미와 필요성 재정립. 그리고 복지국가운동 주체세력 형성을 위한 내부교육 강화

    2) 당위선에 기초한 ‘거대 담론 중심’ 투쟁에서 생활정치, 현실정치를 기반으로 한 작은 성과와 성공 모델을 만드는 복지국가 운동, 사회연대 투쟁을!

    3) ‘노동 중심 대중적 진보정당’ 재건 운동, 조직적인 정치기금, 세액공제 사업을 통해 노조의 정치역량을 강화하면서 복지국가 운동 의제를 정치영역으로 확대.

    4) 독일식 ‘노동재단’ 설립을 통해 노조 차원의 복지국가 운동을 위한 정책 역량 강화와 사회적 인프라 구축.

    5) ‘산별노조 건설과 초기업적 산별운동’을 통해 노조가 복지국가 운동을 제대로 끌고 가기 위한 주체적 내부역량 확보.

    6) ‘산별교섭 제도화와 정당명부비례 선거제도 전면 도입’ 등 2대 핵심 법개정 투쟁을 통해 노조가 복지국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무기 확보.

    6가지 실천과제를 제출했다.

    앞으로 현자지부와 금속노조, 민주노총,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방향을 모색하는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가능성있게 포함할 수 있는지, 많은 고민과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도 숙제로 남겨지겠지만.​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