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정, 노동개악 합의
    민주노총 "역대 최악의 야합"
    새누리당 김무성 극찬 "노사상생의 대타협"
        2015년 09월 14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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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위원회가 13일 일반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이른바 ‘노동개악’으로 규정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합의했다. 노동계 측 대표로 참석한 한국노총이, 정부 지침 중 수용 불가사항으로 제시한 대부분을 받아들인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여당이 독자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한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향후 노·사·정 모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 전망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대표자회의를 갖고 일반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확대 등 정부의 노동개혁 중 ‘핵심 악법’으로 꼽히는 모든 안에 대해 합의했다.

    노사정 대표 합의 내용에 따르면, 일반해고와 관련해 ‘노사 및 전문가 참여 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화’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이 또한 ‘협의’를 ‘합의’로 명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문구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취업규칙 변경요건과 관련해서도 ‘임금피크제 개편 관련, 취업규칙 개정 위한 요건 절차 명확화’,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한다’고 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파견 근로 확대는 ‘노사정 공동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으로 대안 마련’, ‘합의사항을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노동개혁의 목적이었던 청년고용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합의 내용은 없었다. 기존의 정부가 주창했던 ‘청년고용 확대 기업에 세무조사 면제 우대 등 지원 강화’,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 청년고용에 활용’ 등이다. ‘고소득 임직원 자율적으로 임금인상 자제’라는 문구가 포함돼있지만 이 또한 ‘자율적’이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어 실제 고소득 임직원 임금에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이중 법제화 과제인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기간제법과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파견법 근로 확대는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문제는 이번 노사정 대타협 핵심 쟁점이었던 일반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당장 정부의 가이드라인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은 향후 법제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우선은 행정지침을 통해 시행한 후 제도화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상시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새로운 해고 방법’인 일반해고제도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14일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합의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며, 이 같은 합의안이 중집에 통과해야만 최종적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노집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위)과 노동개악 반대 양대노총 공공노동자 집회

    민주노총 “역대 최악의 야합…투쟁으로 맞설 것”

    한편 노동계의 또 다른 한 축인 민주노총은 이번 노사정위 합의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정부와 한국노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노사정 대표자 야합은 절대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의 핵심인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승인해준 역대 최악의 ‘야합’”이라며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일반해고요건 완화와 관련 “‘노사간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는 언급은 실효성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고 있다”며 “더구나 이번 잠정합의문은 지금까지 정부가 언감생심 언급조차 못했던 중장기적인 ‘제도개선 방안 마련’까지 합의함으로써 법제화의 길까지 터주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에 대해선 “정부의 애초 계획대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조차도 노동자 동의 없이도 허용하겠다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야합의 중심에 선 박근혜 정부와 한국노총은 더 이상 노동자에게 정부도, 노조도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다”며 “국민을 죽이는 정부,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노총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질타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비상 상임집행위원회와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하고 즉각적인 규탄대회 개최 등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에 따른 대응 투쟁계획 수립 및 집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 또한 이번 합의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한국노총에 유감을 표명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한국노총이 이러한 합의에 들러리를 선 것도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노조는 “정부와 사용자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은 전부 모호하고 실효성이 없는 반면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것들은 도입 시기에 여유를 두기는 했지만 모두 치명적인 사항들”이라며 “사용자에 의한 쉬운 해고와, 사규(취업규칙)의 일방개정에 대해 ‘정부는 일방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는 두었지만 결국 도입한다는 대전제에는 공감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현장의 노사관계는 정당성과 관행에 따라 실질적으로 결정된다. 쉬운 해고와 사규 일방개정은 부당하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관행이었다면, 정부는 이를 깨려고 하는 것”이라며 “결국 현장의 관행, 법원의 판결, 일선 노동청의 행정해석을 순차적으로 바꾸는 지옥문이 열리고 만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사정위 각 주체들은 합의안을 즉각 폐기하라”며 “한국노총은 예정된 중집위원회에서 잘못된 합의를 부결하고 함께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심상정 “무노조 사회로 가겠다는 역사적 반동”

    향후 노사정위가 도출한 합의 내용 일부를 다뤄야 할 국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낮지 않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상무위 모두발언에서 “한국노총 중집 설득용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면, 열심히 일 하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합의”라고 규정하며 “국회가 철저히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요건을 정부치침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라며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솎아내는 독소조항으로 악용될 것이다.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불이익 변경과 손쉬운 해고로 악용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전까지 행정지침으로 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는 합의 내용과 관련, 입법권 침해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심 대표는 “헌법상의 노동권을 다루는데 있어 그동안 국회와 법원이 해오던 역할을 정부가 빼앗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자, 사법부의 판결을 사전에 가이드 한다는 점에서 심사권마저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고통분담의 진정성도 보이지 않는다”며 “이번 합의안에서 고소득 임직원에 대해 자율적으로 임금인상을 자제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졸라 맬 허리가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대기업의 임원, 고위공직자들의 연봉은 피크하지 않고, 일반노동자의 임금만 피크하자는 고통분담은 위선”이라고 질타했다.

    심 대표는 “사실상 무노조 사회로 가겠다는 역사적 반동”이라며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의 조건은 자본의 고삐풀린 이윤추구 논리에 전적으로 맡겨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 노동의 시계는 전태일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삶의 안정과 고용의 질을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하는 합의안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원내대표는 “노동계가 반대해온 일반해고 요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 및 비정규직 대책까지 담겼다”며 “노사정위는 단서조항으로 ‘정부는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강조하지만 ‘쉬운 해고’ 정부안을 사실상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이번 노사정위 합의에 대해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을 위해 노조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우리 스스로 결단을 내린 선제적 대타협이자 노사 상생의 의미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타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반발이 큰 이번 합의안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집단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문제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증명하는 것으로 참으로 기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며 “이번 쾌거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살신성인의 대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우선 실시하기로 했던 일반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에 대한 법제화 시도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핵심쟁점이었던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저성과자 해고 등 장년층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청년들의 일자리를 열어주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방안인 만큼 신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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