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당선
4파전 경선에서 60% 득표 압승
    2015년 09월 13일 01: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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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74. 버몬트주. 무소속) 상원의원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던 영국 노동당의 강경 좌파 제레미 코빈(66) 후보가 12일(현지시간) 발표된 대표 경선 결과에서 압승을 거뒀다.

선호투표로 진행된 당 대표 경선은 선거권자 55만 명 중 42만 명이 참여하여 76%의 투표율을 보였다. 이 중 제레미 코빈이 59.5%, 앤디 버넘 19%, 이베트 쿠퍼 17%, 리즈 캔들 4.5%를 얻어 1차에서 코빈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1차에서 50%를 넘는 후보가 없으면 4위 후보의 2순위 투표를 배분하여 과반 여부를 계산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노동당 대표 경선은 당원 외에도 대표 경선에 참여하기 위한 노조 등의 가입자와 3파운드(약 5500원)를 낸 지지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코빈 열풍이 불면서 경선에 지지자들의 참여 운동이 대중적으로 형성되었다. 코빈의 득표는 당원 투표에서도 49.6%를 득표해 나머지 세 후보들을 압도했고(버넘 22.6% 쿠퍼 22.1% 캔들 5.5%) 주로 노조와 연계된 가입자와 지지자 득표에서는 57.6%와 83%로 더욱 일방적이었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 당선자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 당선자

지난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하고 밀리밴드 대표가 사임하면서 영국 노동당의 차기 대표에 대한 관심이 쏠렸고, 당시만 하더라도 코빈 후보는 대표 후보 등록도 어려울 정도의 주변부 후보였다. 코빈 후보는 버냄 68명 쿠퍼 59명 캔들 41명에 비해 훨씬 적은 36명의 의원 지지 서명을 받아 가까스로 후보로 등록했다. 당 대표 후보 등록을 위한 지지 의원 기준은 35명이었다.

1994년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등장하면서 제3의 길, 노동당의 중도우파로의 개조 등이 시작됐고 그의 집권 기간(1994~2007) 동안 형성되었던 블레어주의가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던 노동당 내에서 코빈 의원은 의원이 된 이후 일관되게 블레어주의의 노선에 반대하고, 긴축정책과 민영화 등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 비판 노선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또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을 강력 비판하는 등 영국 노동당의 벤 좌파(얼마 전 사망한 토니 벤 의원의 좌파 노선을 지지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만큼 그는 당 내에서 비주류, 아웃사이더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코빈 후보는 의원 생활 30여년 동안 내각 각료는 커녕 그림자내각에 단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반면 버넘 후보(45)와 쿠퍼 후보(46)는 고든 브라운 정부 시절 내각에서 보건장관과 노동장관 등을 역임했고 캔들 후보(44)는 현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의 성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수당과 정잭적 차별을 보이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노동당에 대한 불만은 지지자 사이에서도 팽배했다. 밀리반드 대표 시절 공공부문의 긴축정책에 대해 노동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사실상 영국의 주류 정당이었던 보수당, 자민당, 노동당 사이에서는 긴축정책에 대한 차별성이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유권자들이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을 지지할 동인이 약화된 것이다

총선 패배 이후 대표 경선에서 코빈이 기존의 노동당 주류들이 공유하고 있던 보수당과의 정책적 유사함과 정치적 보수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좌파노선을 분명히 내걸고 출마하자 노동운동 세력들과 좌파 세력들 그리고 보수당의 긴축과 신자유주의 노선의 직접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청년층 사이에서 코빈 지지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코빈의 경제정책은 긴축정책 중단, 철도의 재국유화, 부유세의 대폭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 고등교육의 무상화,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 핵심이다. 코빈은 출마선언 등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분명한 반긴축 노선을 제시하기 위해 경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영국에서 가장 큰 노조들인 Unite와 Unison이 코빈 지지를 선언했고, 청년들 사이에서는 노동당 가입과 투표권 있는 후원자 가입 운동이 대대적으로 형성됐다. 다른 후보들과 블레어주의자들은 이런 노동당 대표 경선에 대한 참여 운동이 보수당과 극좌파들의 불순한 음모라고 비판하고 견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코빈은 아주 소소한 면에서 잘못된 것이 있을지라도, 이러한 대중적 참여운동은 기존의 노동당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대중들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보수당의 노선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좌파적 입장과 정책을 노동당이 내세우기를 바라는 청년들과 시민들의 정치적 실천과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노동당의 변화와 개조는 자신이 대표로 당선되는 것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대중적 참여와 열정과 실천으로 이뤄진다고 적극 옹호했다.

대표 경선이 진행되고 코빈 열풍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한 노동당의 주류세력들은 코빈 비판을 넘어 코빈의 당선은 노동당의 분열과 절멸로 이어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코빈을 노골적으로 저주하는 대표적인 목소리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게서 나왔다. “노동당이 절멸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눈을 감은 채 팔을 내밀어 앞을 더듬으면서 절벽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가 노동당의 새 당수를 뽑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8월 12일 <가디언>에 기고한 코빈 당선의 가능성을 저주한 공개서한이다. 하지만 노동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이러한 저주와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코빈의 일방적인 승리에 표를 던졌다.

세계 자본주의와 정치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과 영국에서, 바로 그 국가가 앞장서서 전파하고 있는 긴축 강요와 노동 적대적인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저항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샌더스 상원의원과 영국 코빈 노동당 대표 당선자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스의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같은 흐름과 맥락이면서도 그 흐름이 주변부가 아닌 영미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제레미 코빈은 1949년 영국 남부 윌트셔에서 전기기사인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북부 런던 폴리테크닉을 중퇴했다.

전국공무원노조(NUPE) 등 노조단체에서 일한 그는 1974년 런던 시내 구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구의원을 유지하다가 1983년 런던 북부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됨으로써 중앙무대에 입성했다.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같은 선거구 현역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소개
정종권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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