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로에 선 일본,
    전쟁과 평화의 길 사이
    [기고] 8월 30일 도쿄 전쟁법안 폐기 10만 집회 참가기
        2015년 09월 11일 1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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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심상찮다. 아베 총리와 집권 자민당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안보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고, 이에 대한 야당, 노동단체, 시민들의 저항이 전례없이 거세지고 있다. 반전 정서가 강한 일본의 분위기에서 안보법안은 전쟁법안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평화헌법 자체가 위태롭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지난 8월 30일 일본 국회 의사당 앞에서는 12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전쟁법안을 반대했다. 일본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들이 하나로 뭉쳐 집회에 참석하고 반대 행동에 함께 했다. 이 집회에 다녀온 사회진보연대 활동가의 집회 참가기를 싣는다. 일본이라는 이웃 나라에 대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와 관련한 중요한 변화의 국면이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의 관심과 참여,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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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0일, 일본 도쿄의 국회의사당 앞에 12만 명이 모였다. 아베신조 정권이 강행처리하려는 ‘전쟁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원래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일본은 ‘전수방위’, 즉 타국의 침략 시에만 개별적인 자위권만 행사할 뿐, 선제공격이나 동맹국이 공격받을 시 함께 전쟁에 나서는 집단적 자위권은 가지지 못하는 평화국가다. 이 정신은 교전권 부인, 전쟁능력 비보유, 무력개입 금지를 규정한 일본국헌법 9조, 즉 ‘평화헌법’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베가 통과시키려는 안보 관련 법안은 자위대 해외파병과 집단적 자위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위헌적일 뿐더러 평화국가로서 일본의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법안이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원래의 표현 대신 ‘전쟁법안’이라 부르면서 반대 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8월 30일, 평화헌법 수호와 아베정권 퇴진의 기치를 들고 국회 앞에 모인 이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다녀왔다.

    평화운동가 후쿠야마 신고 씨와의 만남

    일본으로 가게 된 계기는 지난 8월 12일, 전국학생행진이 기획하고 사회진보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일본의 평화운동가 후쿠야마 신고 씨의 강연회였다. 이 강연회에서 후쿠야마 씨는 아베의 폭주를 한일 민중들의 연대로 이를 꼭 막아내야 한다며 8월 30일 국회포위행동에 함께 할 것을 호소했다. 이에 한국에서도 지지와 연대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강연회 이후 후쿠야마 씨와 메일을 주고받던 중, 이번 기회에 좀 더 직접적인 연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료들 2명과 함께 도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8월 29일, 도쿄에서 후쿠야마 씨를 다시 만났다. 후쿠야마 씨는 <포럼: 평화․인권․환경>(이하 평화포럼)이라는 단체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평화포럼은 1999년 창립한 뒤 반핵, 평화, 인권, 환경운동을 해왔다.

    후쿠야마 씨는 패전 경험 때문에 일본시민들은 어떠한 전쟁도 거부한다는 전쟁혐오 정서가 매우 강력하다고 했다. 잠재의식에 있던 이러한 정서는 전쟁법이 평화헌법 위반이라는, 즉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따라서 전쟁국가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일본시민들에게도 매우 폭넓은 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후쿠야마 씨는 일련의 전쟁법 반대 집회를 거치며 각 운동단체들이 더 긴밀하게 밀착하고 연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은 운동단체나 노동조합들 간의 분열이 심했는데 이번 이슈가 워낙에 거대하기도 하고, 이를 추진하는 자민당과 아베를 막으려면 뭉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져서 거의 모든 운동진영이 망라되어 ‘총력행동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연대하고 있다. 실제로 8월 30일 집회에는 4개 야당(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대표들이 나와 차례로 발언했는데, 이런 일이 일본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란다.

    일1

    도쿄 국회의사당 앞. 많은 시민들로 북새통이었다. 이하 사진은 필자

    8월 30일, 국회의사당 앞으로

    잔뜩 흐린 날씨의 8월 30일, 점심 즈음부터 집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집회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깃발이나 피켓을 들고 길을 향하는 시민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전 외무성 건물쯤에 다다르자 인도는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 찼다. 당초 비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걱정과 달리, 국회의사당 앞 도로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베는 그만둬라’ ‘전쟁하려는 총리는 필요없다’ ‘전쟁법안 절대 반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여기서도 집회에서는 친숙한(?) 경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통경찰들이 질서유지선으로 시민들을 인도에 묶어두려 했다. 처음에는 인도를 따라 걷던 시민들은 점차 질서유지선을 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던 건너편 인도에서 젊은이들이 몸싸움 끝에 차도로 진출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일본인들은 질서를 잘 지킨다는 우리의 편견(?)이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전반적으로는 많은 일반시민들이 나오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축제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처럼 큰 무대를 쌓고 발언과 공연이 이어지는 중앙집중적인 느낌보다는 집회 장소 곳곳에 선전차량이 배치돼 각자 집회를 진행하는 분산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이겠지만, 덕분에 국회의사당 앞 메인 선전차의 발언을 제대로 듣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일2

    한국과 다르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회 성원들을 보자면 노년층들의 참가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변호사든, 일반 시민이든 그네들의 발언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참혹한 경험-공습이라든가 원자폭탄, 가족․친지의 전사 등-을 이야기하며 다시는 일본이 서로 죽고 죽이는(殺して殺される)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20대 젊은이들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청년층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을 깨고 전쟁법 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온 이들은 일본사회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SEALDs(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 ‘s;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 발음에서 방패(실드)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학생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올해 5월에 조직되었는데, SNS선전과 입장발표, 도심집회를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순식간에 전쟁법 반대 진영의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발언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라크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을 언급하며 전 세계에서 벌이는 미국의 전쟁에 일본이 함께 해서는 안 되며, 특히 자신들과 같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3

    SEALDs 활동가의 발언. 피켓의 ‘our choice, our future’라든가 ‘나는 전쟁터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와 같이 전쟁을 자신의 문제로서 언급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후쿠야마 씨의 배려로 한 귀퉁이에 마련된 선전차에서 짤막한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최근 있었던 남한과 북한의 충돌과 시민들이 느껴야 했던 공포를 이야기면서 전쟁법이 통과되면 일본도 이러한 공포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시민들의 싸움이 단지 일본의 국내적 이슈만이 아닌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발언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조악한 일본어 발음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한국에서 만들어 간 유인물도 있었는데, 발언 뒤에 몇몇 분들이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며 가져가기도 했다.

    4시가 되자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이후 SEALDs의 독자적인 집회도 열렸으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곳곳에 남아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후쿠야마 씨와 남북한 관계나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평화 같은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가오는 9월 12일에 오키나와 기지 이전 반대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국회포위행동을 기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일4

    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이런 광경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가장 큰 고비
    : 주권자로서의 실감을 적극적인 평화에의 모색으로

    이번 전쟁법 반대집회를 계기로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시민들의 ‘주권자로서의 자각’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희망적인 논의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 8월 30일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는 한 발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에 희망’이 있다고 보도했다.(1) 8월 31일자 아사히신문 역시 8.30집회 관련 보도에서 홋카이도대학 교수 요시다 테츠(吉田徹)의 말을 인용하며 ‘목소리가 닿는다는 실감과 신뢰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시민대중의 열망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는데,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보법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는 건 좋지 않다’는 의견이 65.6%로 전월에 비해 7.8% 올랐고 ‘좋다’는 의견은 24.5%로 전월 대비 5% 감소했다고 한다.(2)

    그러나 이런 대중적인 열망에도 불구하고 법 자체가 통과될 가능성은 높다. 참의원 통과만을 앞둔 가운데,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이 총 242석 중 135석으로 과반(121석)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일본의 특이한 의회제도인 ‘60일 룰’(중의원이 통과시킨 법을 참의원이 거부하거나 60일이 지나면 중의원에서 재심의하여 2/3 이상 찬성을 얻으면 참의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법이 최종 통과된다.)을 적용시키더라도 중의원 480석 중 자민당(294)와 공명당(31)을 합하면 325석으로 총의석 중 2/3인 320석을 넘기 때문에 아베는 통과를 밀어붙일 것이다. 전쟁법이 중의원을 통과한 것이 7월 16일이기에 9월 14일부터는 60일 룰을 적용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민당으로서도 마냥 쉽지 않은 것은,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공명당이 60일 룰을 적용하는 것에는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자민당 역시 반대여론에 난처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민당 한 의원은 8.30 집회를 두고 ‘시민 통제(civilian control)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가 있다며 ‘지금부터가 가장 큰 고비’라 털어놓기도 했다.(3)

    게다가 9월 27일에는 국회 회기가 종료되어 이때까지 전쟁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자동폐기 된다. 자민당은 60일 룰 적용 전인 9월 14일 전에 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에 야4당은 내각 불신임까지 고려하는 가운데, 무조건 저지에 나서겠다고 합의했지만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민당의 표결을 국회 내의 행동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의회 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평화운동단체들과 시민들은 계속해서 항의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9월 6일에는 비를 뚫고 도쿄 신주쿠에서 1만 2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으며 9월 12일에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반대 국회포위행동을, 그리고 법안 통과가 예상되는 9월 14일에도 국회 앞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전쟁법안 저지 투쟁은 일본 국내만이 아닌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군사국가화 시도 자체가 미국의 군사전략 아래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내세우며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작전능력을 제고하고 잠재적 경쟁국가인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차단․제한하고자 한다. 이에 군사동맹 파트너인 일본의 역할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과 일본은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합의했는데, 자위대가 한반도를 핵심대상지역으로 군사작전이 가능해졌고, 평시에도 미군 함대/무기 방호를 구실로 한미일 공동 군사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베가 강행하는 전쟁법안은 이러한 군사협력을 집단적 자위권이란 이름으로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시 중국이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렇듯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이에 따른 일본의 군사국가화는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아 일본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 뻔하다.

    전쟁의 공포, 전쟁터에 끌려가 죽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일본시민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에 ‘자식들을 전쟁터에 보내지 않겠다’, ‘우리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자신들의 주권을 외치며 아베의 전쟁법안을 막아서고 나선 것이다. 9월은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부추기는 일본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의 힘으로 군사국가화를 막고 평화국가의 길을 걷는 일본이 될 것인가. 아직은 그 두 가지의 길이 모두 열려있는 가운데, 바로 이웃한 한국의 시민들은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어떻게 국제적인 민중 연대로 함께 평화를 실현할 것인가.

    한국에서 만들어온 플랜카드를 들고 찍은 사진. 우측 첫 번째가 후쿠야마 씨. 좌측 첫 번째는 원수금의 이노우에 씨, 중간의 2명은 같이 도쿄에 간 동료들.

    한국에서 만들어온 플랜카드를 들고 찍은 사진. 우측 첫 번째가 후쿠야마 씨. 좌측 첫 번째는 원수금의 이노우에 씨, 중간의 2명은 같이 도쿄에 간 동료들.

    <참고>

    1)《しんぶん赤旗ー特別号外》, 2015-08-30.

    2) 「安保法案今国会で成立"反対"65。6%」, 《0テレNEWS24》, 2015-09-06.
    http://www.news24.jp/sp/articles/2015/09/06/04308866.html

    3) 「戦争法案に"二つの衝撃"」, 《しんぶん赤旗》, 2015-09-04.
    http://jcp.or.jp/akahata/aik15/2015-09-04/2015090401_02_1.html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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