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 해고?"
    살인에 착한 살인 있나?
    '공정해고'로 포장된 생사여탈권
        2015년 09월 08일 06: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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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 쟁점이자 문제점을 가장 잘 설명했던 ‘쉬운 해고(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두고 정부여당이 ‘공정 해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고 기준을 명확히 해 저성과자 노동자에 한해 공정하게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공정 해고라는 기묘한 조합을 처음 만들어낸 이는 다름 아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 차 터키 앙카라를 찾은 최 부총리는 지난 4일(현지시간) 동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쉬운 해고라고 자꾸 하는데 우리는 ‘공정해고’라고 표현한다”며 “괜히 쫓아내는 게 아니라 저성과자에 한해 교육기회도 주고 ‘그래도 안 되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며 노동계의 ‘쉬운 해고’에 맞불을 놨다.

    노동조합에 대해 원색적인 허위 발언을 연일 터뜨려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7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개혁의 목표는 청년들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보다 쉽게 구하고 더 많은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임금피크제와 공정해고에 대한 해결 없이는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재차 ‘공정’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여당에서 노동계의 ‘쉬운 해고’에 맞설 만한 카드를 꺼내 든 셈인데 시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평가 가점 부여 등 강압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뒤로 밀어뒀던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수면 위로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임금피크제 다음 추진 과제를 일반해고 요건 완화로 정한 것으로 읽힌다. 임금피크제 이후 시작될 ‘진짜 노동개악’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새누리당 노동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인제 의원은 특위 출범 당시만 해도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특위의 구체적 방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지만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있어선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부터 이 의원의 행보도 달라졌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대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외려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반발하는 노동계에 대해 ‘피해의식’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이 의원은 8일 오전 YTN 라디오에서 아예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공정해고’라고 지칭하며 “업무에 적응을 못하는 근로자, 업무에 적응을 못해서 성과도 못 내는, 그런 분이 있으면 팀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럴 경우에 그분을 다른 직업으로 훈련을 시키고, 전환배치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경우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게 대법원 판례다. 이 대법원 판례, 해석규범을 일반화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에 의해서 인정이 된 거다. 그냥 놓아두면 경영하는 쪽에서는 그걸 악용해서 함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면 노조 쪽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걸 명쾌하게 기준을 정해서 노동시장에 혼란이 없고, 또 그걸 남용해서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하는 일도 없도록 해보자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해고의 기준을 명확히 해서 억울한 해고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언급하는 그 해고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명확한 기준안도 없이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해버릴 경우 과거 정리해고제도 도입 이후의 폐해가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96년 김영삼 정부 당시 정리해고제 도입을 위한 노동관계법 토론회에서 경제계 인사는 “해고의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정리해고제 도입은 바람직하다. 정리해고제는 그간 대법원에서 일관되게 나오던 판례를 법제화한 것에 불과할 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정리해고제의 정당성을 강변한 바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 이후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연일 흑자 기록을 세우면서도 흑자의 폭이 줄었다며, 미래의 경영상 이유로 대량 정리해고를 감행한 흥국생명 사태가 발생했다.

    정리해고제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에도 정부와 재계는 해고의 기준을 명확히 할 뿐 큰 일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설득과 달리 현실에선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건이 몇 년에 걸쳐 벌어졌다. 흥국생명의 노동자들은 길바닥으로 내쳐졌지만 주주들은 그 임금 삭감 분으로 고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리해고 사태를 통해 이미 불공정한 사례를 겪은 바 있는 노동자들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명확한 기준 없는 일반해고요건 완화, ‘공정해고’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해고 살인

    사진=노동자연대

    공정해고? 착한 살인도 있나

    정부여당의 ‘공정해고’ 프레임에 노동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의 삶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살인과 같은 해고를 두고 공정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기만적인 행태라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은 8일 <레디앙>과 통화에서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인데, 착한 살인이 있나”라며 “일반해고와 관련 근로계약해지기준 및 절차를 명확히 하겠다는 것에 대해 노동계가 ‘쉬운 해고’라고 하니 맞불작전을 벌이는 것 같은데 상당히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정책실장은 “사회안전망이 바닥인 우리나라에서 해고 자체는 노동자와 서민의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해고 앞에 ‘공정’이라는 수식어 붙인다고 해서 해고의 본질 자체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 정리해고제만큼 파급력 상당할 것

    현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해고제도는 경영상의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2가지뿐이다. 여기에 업무성과가 낮을 경우 경영상 위기 외에도 ‘일반해고’ 요건을 추가해 상시적 해고를 합법화하겠다는 것이 일반해고 요건 완화의 진짜 목적이다. 만약 정부의 주장대로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큰 의미가 없다면, 이 제도는 굳이 노정 간 첨예한 갈등 유발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도입할 필요가 없다.

    이 정책실장 또한 “노동법상으로 해고는 대단히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해고는 노동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사용자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고할 수 있다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언제나 해고를 당할 수 있는데 어떤 노동자가 노조를 하겠나. 집단적 노사관계의 전제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현재 정부나 사용자에서 말하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이미 허용되는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제외하고도 업무성과를 이유로 해서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으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노사 관계나 노동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고 재차 지적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대해 대법원 판례의 해석규범을 일반화해서 포함하는 것일 뿐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없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정책실장은 노동법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기준 절차 명확히 할 뿐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아예 도입을 안 하면 된다. 이미 근로기준법, 노동법에선 해고와 관련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제외하곤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맞게 판례가 형성이 되고 있다. 현행대로 두면 소위 저성과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할 위협에 처해있는 노동자는 정당하게 현행법에 따라 자기 권리 주장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업무 성과가 낮은 노동자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언어도단”이라며 “정부가 굳이 일반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 만들겠다는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성과자를 용이하게 해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입법 취지가 있듯이 가이드라인도 취지가 있다. 그 취지가 용이하게 해고를 할 수 있도록 그 기준과 절차를 분명히 해주자는 거다. 인력운용의 효율성, 유연성 제고라는 표현도 분명히 나와있다”고 반박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정리해고제도와 같은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업주의 저성과자 해고 종용 행태를 양성화해 일상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정책실장은 “KT에선 이미 업무성과를 이유로 해서 불법적인 인력퇴출프로그램이 횡행하고 있다. 업무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해서 이러저러한 괴롭힘이나 탄압, 심지어 명예퇴직 등을 종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만약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 그러한 불법적인 인력퇴출 구조조정을 양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도 음성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인력 퇴출을 더욱 양성화될 것”이라며 “안 그래도 경제위기 핑계로 구조조정을 하고자 하는데 여러 가지 법적인 제한, 고용보호조항 때문에 못하는 사용자들은 (이 가이드라인 도입으로 인해) 전부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정책실장은 아울러 “사용자 쪽에선 경영상 위기를 핑계로 정리해고하고, 일상적인 시기에는 일반해고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조조정 해버릴 수 있다. 경영상 위기 시기든 일상적인 시기든 상관없이 사용자는 마음대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라며 “반대로 노동자 입장에서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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