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 파병 50돌,
    지금 다시 전쟁을 생각하다
    [책소개] <베트남전쟁>(박태균/ 한겨레출판)
        2015년 09월 05일 1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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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왜 베트남전쟁에 개입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안보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한국은 왜 베트남으로 전투부대를 보냈을까? 미국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시작된 베트남전쟁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을 거부했음에도, 왜 한국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을까? 우리에게 기억되는 베트남전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005년 <한국전쟁>으로 주목받았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가 베트남전쟁을 일괄하는 신간을 내놓았다. 국내외 관련 도서와 논문은 물론 외교문서까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10여 년간의 조사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1964년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처음으로 파병한 이래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32만이 넘는 한국군이 베트남으로 갔다. 그들 가운데 5천 여 명은 전사했으며, 1만 명 이상은 전후에 고엽제로 고통 받았다.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었다.

    베트남전쟁 파병은 최초이자 최대의 해외 파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전쟁 특수에 가려 파병 전사들과 민간인 학살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또 하나의 전쟁, 베트남전쟁이 한국과 세계에 남긴 발자국을 살펴본다.

    베트남전쟁

    파병 50돌…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그들은 왜 베트남으로 갔는가’에서는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이유를 살펴본다. 한국의 역사교과서에는 베트남 남북 사이의 이념 갈등, 공산주의의 확산을 파병 원인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1961년 5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한국의 군부와 그 대표자인 박정희가 정권 승인을 받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한국군 파병을 먼저 제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는 한국군 파병의 진실과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의 모습을 비교해본다.

    ‘제2부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는 베트남의 내부 상황과 서로 죽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던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도 주목한다. 미국은 베트남 내부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적이 북베트남인지 혹은 베트콩인지, 아니면 베트콩을 지지하는 남베트남의 사람들인지. 명분 없이 시작한 전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갔다.

    ‘제3부 병사들의 기록’에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당시 참전 군인들의 출신 성분과 징병 과정 등을 파헤친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막으면 국가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 혹은 적절한 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가는 그들에게 싸워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군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따가운 시선뿐이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군인들의 전후의 삶도 함께 살펴본다.

    ‘제4부 미국은 베트남에서 어떻게 패배하는가’에서는 미군의 철수 과정을 살펴본다. 통킹만으로 본격화된 전쟁은 3년이 되지 않아 반전 운동의 벽에 부딪힌다. 결정적 계기는 1968년의 구정공세였다. 전쟁에 지친 것은 군인들뿐이 아니었다. 베트콩은 남베트남 사람들의 인심이 점차 멀어지자 고민 끝에 총공세를 펼쳤으나 결과는 대패였다. 구정공세의 결과가 베트콩의 의도와 반대로 미군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구정공세를 계기로 반전운동이 더욱 확산되었다. 결국 닉슨은 베트남에서 미군의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5부 한강의 기적과 감춰진 진실’에는 죽음을 넘나드는 전선에서 한국군과 한국 기술자들의 삶을 담았다. 전쟁 특수로 안정적 집권이 가능해진 박정희는 곧 유신을 선포하며 독재를 굳건히 한다. 또한 전쟁 특수로 수혜 받은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가 시작됐다. 1970년대 한국은 베트남 파병 한국군과 기술자들로 갑작스레 풍요로워진 시대였지만 동시에 자유와 권리가 가장 제한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제6부 미군 철수 이후의 세계’에서는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흔들린 후 미국의 그늘 아래 있던 주변부 국가들의 변화를 살펴본다. 닉슨 독트린은 베트남전쟁으로 파탄이 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트남에 파병한 동맹국에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타이, 필리핀은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독재를 겪어야만 했다. 베트남전쟁은 한국과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변화는 어떻게 기억될까?

    ‘제7부 기억되는 것과 기억되지 않는 것’에서는 전쟁포로와 실종자 문제, 참전 군인과 베트남 피해자에 대한 보상, 이를 둘러싼 역사 인식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살펴보면 우리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베트남전쟁의 모습은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그리고 있지 못하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반쪽만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반쪽의 기억이 2003년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역사는 기억과의 싸움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베트남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참패와 경제적. 정신적 공황을 안겨주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전술로 싸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또 베트남 참전 병사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참전 병사들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가해자였지만, 한편으로 전후에 고엽제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시달려야 했던 전쟁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은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자로 보상받지도 못했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다. 왜곡. 은폐된 사실이 특정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기억이 “특정 방향으로 남아” 있어 현재 한국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대해 전쟁 특수만을 강조해왔다. 참전 이유와 군인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외면되어 왔다. 마치 일본이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일본이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한국정쟁에 대해 전쟁 특수만을 강조해 서술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셋째,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를 밝혀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함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베트남전쟁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한국에는 “지나간 역사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성찰하는 시민사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줄 의무가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민간인 학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참전 병사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로 남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이러한 노력이 있다면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역사를 바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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