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찰과 전망,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①
    오래된 미래, 녹색과 적색의 만남과 엇갈림
        2015년 09월 01일 07:1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진보결집+]에서 기획하고 있는 <진보정치 혁신을 위한 연속토론회>의 첫 번째 토론으로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 성찰과 전망’을 8월 29일 진행했다. 짧지 않은 시간의 진보정당과 녹색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한 글이다. 이현정씨가 발표한 주제글을 필자와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발표문의 분량이 많아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

    1. 들어가며

    진보정치 영역에서 환경, 혹은 녹색이 호명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안에 진정한 ‘녹색정치’가 있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는 진보결집 더하기는 진보정치가 결집하는 지금의 과정이 양적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이전 시기의 진보정치에 대한 평가와 혁신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여기고, 그 혁신에 대한 논의의 첫 번째 주제로 ‘녹색정치’를 선택했다.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는 이제 막 만나려는 단계라기보다, 이미 오래 전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단적인 예로 이미 15년 전인 2001년 청년환경센터(준)가 제안하고 민주노동당 교육위원회, 청년진보당 환경위원회 등이 참여한 긴급토론회 <진보정당, 환경운동 그리고 녹색정치>의 발제 중 하나의 제목이 초안에서 제시된 토론회 제목과 거의 유사한 <진보정당과 녹색정치, 과연 어떻게 만날 것인가>였음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시작으로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 관련 활동들은 환경위원회/녹색위원회 설치와 포럼 운영, 다양한 관련 기관의 설립,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의 녹색후보 출마 등 양적으로 매우 풍부한 양상을 보였다. 또한, 2012년에는 기존의 진보정당 흐름들과는 구분되어 녹색을 전면으로 내세운 ‘녹색당’이 창당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시 전면에 내건 ‘보다 녹색으로, 보다 적색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진보적 녹색정치의 포부가 8년이 지난 지금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으며, 여전히 앞으로의 지향성으로만 떠돌 뿐이다. 또한 20년 전 지적된 좌파들이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1)과 함께 생태주의에 대한 오해들은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많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의 녹색정치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선 진보정당들의 역사 안에서 ‘녹색’의 가치가 어떻게 자리 잡고 실현되었는가 살펴본다. 특히 녹색의 논의가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내부에서 진행되거나 논의되었던 관련 사안들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달성된 성과와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정리하고, 이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2. 진보정당 안에서의 녹색정치 흐름들

    2.1. 개요

    진보정치 내에서의 녹색정치와 관련된 발전과정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진보정당별 녹색활동, 녹색 정치와 관련된 사안들을 정리하였다.(2) 2002년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녹색평화당이나 이후 사민당과 녹색평화당이 합당한 녹색사민당 등은 정당으로서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실험적인 형태에 가까웠으므로(최광은, 2004) 여기에서는 제외하였다. 또한, 이 부분은 진보정당 역사 안에서의 녹색정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사안들 보다는 녹색정치와 관련해 많은 논쟁이 있었던 2000년대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활동과 논의들에 보다 무게가 실려 있음을 미리 밝힌다.

    2.2.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강령에 지속가능성을 향한 통합적 환경정책, 미래지향적인 대안사회로의 지향(환경친화적,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 환경의식의 확산과 심화를 위한 환경교육 등을 명시하며 ‘친환경적인 대안사회’로의 지향을 명문화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이문옥 후보에 대한 환경운동연합의 평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는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 촉구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당원이 중앙당 게시판에 ‘고속철도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일관된 정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환경위원회의 설치로 이어졌다.

    ■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의 설치와 2004년 총선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준)는 중앙당의 판단에 따라 위원장 및 간사가 선임되는 여타 위원회와는 달리 2003년 말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하고 위원장과 간사를 스스로 선출하면서 설치되었다. 이후 2004년 총선을 위해 여러 차례 토론을 거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원순환, 환경정의, 지속가능성’ 원칙을 중심으로 세운 ‘녹색나라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약속’이라는 이름 하의 여러 공약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공약의 내용으로는 ‘2035년 핵 없는 나라’, ‘핵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 및 단계적 폐지’,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에너지 시나리오’,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사회 경제적 프로그램’, ‘대중교통중심의 전환정책’, ‘대형댐 건설 중단’,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이 포함되었다(문재현, 2004).

    그러나 한 편으로는 민주노동당 전북도지부가 중앙당이나 환경위(준)의 입장과는 다르게 새만금 사업의 “조속한 완공”을 공약으로 내걸며 “갯벌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또한, 총선 직후 환경위원회(준)는 노회찬 당선자의 강연 중 제기된 “분배를 통한 성장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하며 평등하고 민주적인 발전”을 주장하며 논의를 심화시키기 시작했다.

    ■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

    2005년 가을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었지만, 정당 차원에서는 민주노동당이 그 논란의 가운데 섰다.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순영 의원을 비롯한 현역 국회의원 10명을 활용해 난자 출처와 연구비 관련 자료 요청 등을 하며 황우석 박사에게 압력을 가했다. 2005년 10월 7일 <조선일보>는 “황우석,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 못할 지경”이라는 눈에 띄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3) 이후에는 송태경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과 노현기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제기한 생명윤리와 관련된 글들로 온라인상에서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권영길 임시당대표, 박용진 대변인 등은 “윤리 기준 지키라는 것이 당론, 진위 논란은 개입할 문제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으며, 이러한 대응은 당내에서 또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 2007년 녹색정치 선언, 녹색정치 사업단 그리고 17대 대선

    녹1

    2007년 6월 20일 민주노동당 당직자 및 지방의원 등 34인의 ‘녹색정치선언 제안자 일동’은 ‘1천명의 ‘녹색정치선언’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제안문에서 “2007년 대선을 맞이하는 시점에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한국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지 못하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낡은 사고와 관행,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변화해야 한다. 희망을 이끌어낼 변화의 방향은 녹색”이라고 제안취지를 밝혔다. 이러한 선언은 과거 많은 경우에 공약과 공약, 가치와 가치가 충돌할 때 결정적으로 환경의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당시 여론을 이유로 당 기관이 황우석에 대한 문제제기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 ‘함구령’을 내린 사례, 2006년 북핵사태, 2007년 면세유 파동 등 결정적 순간에는 ‘녹색가치’를 외면했다는 평가 등에서 촉발되었다.(4)

    이를 바탕으로 구성 된 녹색정치사업단(단장: 심재옥)은 이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에게 생태·환경 정책에 질의를 보냈고, 답변 결과를 당원 100으로 구성된 ‘녹색정치 100인위원회’가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 결과를 보면, 세 후보는 5점 만점에 각각 3.07(권영길), 3.05(노회찬), 3.13(심상정)으로 ‘B’ 평점을 받았다. 세 후보 모두 공통적으로 환경세 도입, 지역 먹을거리 체계 구축,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재생가능 에너지 북한 지원 등을 중요한 생태·환경 정책으로 내세웠다. 녹색정치사업단은 “여전히 ‘성장’에 집착하는 것이나 토건국가를 개혁하는 구체적 방안과 관련해서는 세 후보 모두 미흡했다”며 “세 후보의 정책에서 생태·환경 정책이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으며, 세 후보 모두 생태ㆍ환경 정책을 자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진정성’ 지표에서는 낮은 점수(평점 ‘C’ 이하)를 받았다.(5)

    2.3. 청년진보당-사회당

    청년진보당-사회당에서도 녹색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지향되었다. 명확하고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내세우고 녹색좌파를 지향하였으며,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공식적으로 당 내부 조직은 아니었으나 ‘청년환경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당원들이 녹색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 청년환경센터

    청년진보당-사회당의 녹색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청년환경센터는 정확히는 당 내부조직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표자 스스로 “1999년 당시 회원의 대부분이 청년진보당 당원 혹은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청년진보당과 ‘아무런 관계’ 없는 다만 ‘진보정치(혹은 녹색정치)가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이었다. 이는 이후 회원의 구성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또는 무당파로 다양해지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상근자, 혹은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은 있더라도 청년환경센터와 이후 만들어질 조직은 정당의 하위개념이 아니라 정당과 함께 진보정치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써 작용할 것이며, 공동사업 역시 진보정치 내의 구분과 상관없이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히고 있다(이헌석, 2009).

    그렇지만 청년진보당-사회당의 많은 학생·청년 당원들이 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 현장환경활동 및 지역 연대사업을 펼쳤으며, 직접적으로 정치영역과 관련된 활동으로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올바른 녹색정치 실현을 위한 선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청년환경센터는 10년간의 활동을 이어가다 2010년 에너지정의행동으로 단체명을 바꾸고, 단체의 활동범위를 탈핵과 에너지전환 운동으로 집중해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2.3. 진보신당-노동당

    ■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민노당 분당 및 진보신당 창당 시기의 적녹정치에 대한 기대와 실망

    민노당 분당 전, 심상정 비대위의 ‘제2창당을 위한 평가와 혁신안’에서부터 녹색정치, 혹은 적녹정치는 신당의 핵심적인 활동방향으로 제안되었다.(6) 새로운 슬로건인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를 내세우며, 녹색의 가치를 노동과 함께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8년 4월 1일 한반도 대운하 반대 종교인 순례단이 순례 50일만에 부산 을숙도에 도달하는 일정에 맞추어 을숙도 물문화광장에서 ‘150인 녹색지지 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선언에서는 지금은 노동당, 녹색당, 무당적자, 정의당, 진보결집+ 등으로 흩어진 많은 활동가 및 당원 150명이 ‘생태’를 주요한 기치로 내 건 진보신당을 지지하였으며, 진보정당 내에서의 녹색정치의 성장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7)

    ■ 2008년 총선과 녹색정치위원회/에너지정치센터 설립

    창당 시의 녹색정치에 대한 뜨거운 기대를 받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는 녹색비례후보 추천위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결국 녹색 후보를 내지 못했고, 이 후 당 게시판에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는 사기다”라거나 “무늬만 생태”로 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당 내부에서 자성의 소리와 함께 녹색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러한 주장은 총선 직후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당내의 녹색정치위원회(준) 설치와 당 외부의 에너지정치센터(현재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기 녹색평당원모임도 구성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녹색정치포럼, 녹색평론 읽기모임 등 향후 오랜 기간동안 이어진 당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의 출발점이 되었다.

    ■ 진보신당 태양광발전소 구상과 지리산 초록배움터

    2008년 10월 8일 김현우 녹색특위 간사의 게시판 제안글(8)로 시작된 ‘진보신당 태양광발전소 프로젝트’는 2009년 8월 과거 민주노동당 남원 연수원을 이어받은 지리산 초록배움터의 개관과 이후 2010년 3월 6일 햇빛발전소 건립식으로 이어졌다. 당원, 지지자들의 유가환급금을 모으고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활용하여 3kW 태양광발전기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 때, 풍력 발전기, 태양열 쉐플러 조리기, 자전거 발전기, 생태뒷간, 빗물처리시설 등이 도입되며 작은 발전소이자 생태교육공간으로 거듭났다.

    ■ 2009년 4.29 재보궐 선거와 녹색노동자 조승수 후보 지지선언

    2009년 4월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는 녹색특위 조승수 위원장이 출마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불량성장노선’에 대항하는 ‘서민성장노선’을 걷기 위한 ‘북구혁신전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 북구혁신전략에는 ‘북유럽형 교육특구’, ‘일자리 안정특구’, ‘서민복지 일등특구’와 함께 ‘태양과 바람의 특구’라는 전략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녹색공약으로 “중공업의 도시인 울산에서 녹색 후보를 표방하는 조승수가 노동자 정치 운운하며 노동자 밀집 지구에서 나온”다는 비아냥과 함께 조승수가 대표하려는 산업도시 울산과 그가 지향하는 녹색 사이에 모순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사실 이것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슬로건 하에 새롭게 진보정당운동을 일궈내겠다고 선언하고 민주노동당과 분당까지 감내해낸 진보신당에게 해당되는 도전”이라는 평과 함께, 지속불가능한 한국사회 전체를 위한 중대하고도 상징적인 도전(9)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환경/시민사회단체 활동가 40여명의 “녹색 노동자 조승수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10)

    물론 실제 그의 당선에서 녹색의 지분이 얼마나 되는가를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이후 조승수 의원의 행보는 송전탑 갈등 해결,(11) 녹색일자리 전환,(12) 재생가능에너지 입지갈등 해결(13) 등 녹색사회를 위한 다양한 논의가 본격화 되는 방향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 녹색특위 간사직 폐지와 부문위 토론회

    조승수 녹색특위 위원장의 4.29 보궐선거 당선으로 원내정당이 되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직후인 5월 말, 반상근직으로 유지되던 녹색특위 간사직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현우 녹색특위 간사는 “중앙당직을 사직했다는 것은 녹색특위 사업을 담당할 실무자가 더 이상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문/과제별 위원회에 별도의 인력과 재정을 두지 않는다는 지도부의 방침에 따른 결과입니다.”라고 밝히며, 이러한 방침은 “당내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또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합의하면 되지만, 그런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2008년 5월부터 중앙당에 녹색정치위(준)의 인준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당시의 대표단이 “부문/과제별 위원회 건설 원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과 녹색정치위를 인준할 경우 다른 부문위도 도미노처럼 인준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하여 당 조직과 예산이 방만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번번이 유보시켰다며, 부문위원회의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한 당원은 “그 건 사직이 아니라 해고”라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다.(14)

    이러한 문제제기는 6월 말 ‘제2창당에도 없었고 당대회에도 없었던 부문위원회 토론회-이제는 말할 수 있나?’라는 토론회로 이어졌다. 이 토론회에는 성정치기획단, 여성정치위원회(준), 장애인위원회(준), 중앙당 대협실 등이 참여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여성정치위원회(준)의 심재옥 당원은 부문위에 가해지는, ‘방만하다’, ‘당 중심이기 보다 부문 중심이다’, ‘비효율적이다’는 비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당 운영 시스템이 없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부문위원장이 참여하는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신설을 제안했다(심재옥, 2009). 김현우 전 간사는 “현재의 부문위원회와 관련된 논의는 당의 성격 규정에 관한 것이자, 2010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내용과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이렇게 좋은 인적 자산을 가진 부문을 보유한 진보정당은 없었고, 이렇게 적절하게 부문의 활동 의제들이 존재한 한국 사회의 시기도 없었다. 한참 잘 자랄 작물이 혹여 웃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옛사람들은 ‘기우’라 불렀고, 자라고자 하는 작물에 물 주기를 주저하여 생육을 망치는 일은 대개 ‘과오’라 부른다.”며 부문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김현우, 2009).

    ■ 서울녹색위 모임과 북한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그리고 장애인위원회의 만남

    녹2

    2009년 9월 진보신당 서울시당 녹색특위 북한산 지키기 2차 산행(15)

    2009년 7월, 서울시 11개 당협의 구성원이 모여 서울시당 녹색특위(위원장: 황혜원) 모임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된 사업은 북한산 지키기 긴급행동 산행으로 이어졌고, 첫 산행에서 50여명의 당원들이 참여했다.(16) 이 행동은 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 산행으로 이어져 이후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중 2010년 11월의 장애인위원회와 함께 준비한 ‘장애/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북한산 생태산행’(17)에서는 정부가 케이블카 건설의 구실로 삼는 장애인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반생태적인 케이블카 설치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서울녹색위 모임은 생활 중심 녹색의제들-도시농업, 적정기술, 도시 재생에너지 등-과 관련된 활동들을 이어나갔으며, 이후 부산, 경기 등 타 지역의 녹색위 모임의 선례가 되기도 했다.

    ■ 4대강 심판론, “흐르는 강물처럼”과 2010년 지방선거

    2009년 봄 시작된 경인운하 반대 오체투지, 이어진 4대강사업 저지농성의 열기는 2010년 지방선거로 이어졌다. 3월 22일에는 물의 날을 맞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 김상하 인천시장 후보가 함께 ‘6.2지방선거는 무상급식과 함께 4대강사업 심판 선거입니다’는 제목아래 진보신당이 4대강 사업을 저지하고 2천3백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를 지키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즈음 중앙당에서 기획된 4대강 기록 및 답사 사업 “흐르는 강물처럼”과 서울시당 녹색위원회의 광화문 1인 릴레이 시위는 9월까지 이어졌다.

    ■ 2012년 총선과 녹색당 창당

    진보신당은 2011년 통합-독자 논쟁과 탈당사태의 충격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2012년 3월 4일 사회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직후 원외정당으로서 2012년 제 19대 총선을 맞게 되었다. 이 때, 성미산 운동과 생협운동의 경력을 가진 이명희 후보가 전국 비례후보 기호3번으로 배정되며 녹색비례후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명희 후보는 당이 키워내거나 당의 녹색 논의를 주도해 온 인물은 아니었다.(18) 또한, 총선 시 중앙당이나 후보의 에너지 환경 등 녹색의제 접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당원도 있었다.(19) 이 당원은 총선 직전에 창당된 녹색당과의 적-녹 총선연대를 제안하기도 했는데(20) 녹색위원장은 이에 대해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중앙당 차원의 적-녹 연대의 성과는 없었다.

    또한, 강북 갑의 김일웅 후보는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의 초호화콘도 건설 이슈를 선거의 최대 현안으로 제시하며, 지역의 연대를 꾀했다.

    ■ 2013년 재창당 과정에서의 ‘녹색’의 호출

    2012년 총선 이후로 미루어 놓았던 재창당은 당명 논의를 거쳐 2013년 6월 ‘녹색사회노동당’을 표결에 붙였지만 부결되었다. 사실 진보신당 창립시기의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슬로건에서 시작된 당의 정체성으로서 녹색의 호출은 그 사이에도 몇 차례 논쟁을 불러왔다. 2009년 초 정태인 당원은 녹색혁명당을 제안하며 논쟁을 재점화시키기도 했으며,(21) 2011년 6월 김현우 녹색위원장의 녹색사회당(22) 제안과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장석준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녹색신좌파당(23)의 제안 흐름 속에서 ‘녹색사회주의연대’라는 정파를 형성했고, 2013년 당명 논쟁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24) 그러나 이 흐름에 대해 “그 간의 ‘진보신당’과 부설 연구소인 ‘상상연구소’의 활동을 볼 때, 당은 이미 ‘녹색지향’의 구현에 실패”(25)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이 평가는 이 때까지의 당내 녹색 정치의 위상을 돌이켜 볼 때 상당히 타당한 평가로 보인다. 결국 2013년 7월 임시당대회에서 당명은 ‘노동당’으로 결정된다.

    ■ 2015년 당대표 선거와 그 후

    2015년 노동당 당대표 선거의 최대의 화두는 ‘진보재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대표단 선거에 나도원 후보 등을 출마시킨 신좌파당원회의는 ‘녹색좌파 대중정당’을 전면에 내걸며 또 다시 당내 정치의 전면에 녹색을 호출했다.(26) 여기에서 나도원 후보는 “현재 노동당은 ‘녹색’좌파로 나아갈 준비를 못했고, 녹색당은 녹색‘좌파’로 나아갈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바로 지금이 ‘녹색좌파 대중정당’을 위한 당 혁신과 내외부의 결합, 노동당과 녹색당 그리고 새로운 운동과 노동혁신세력이 협력하는 ‘녹색좌파 정치연합’의 구성”이라는 구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이전의 ‘녹색사회주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당의 현실과는 상당히 괴리 된 것이었다. 노동당의 녹색위원회는 이미 1년 이상 재건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이전의 녹색 관련된 일상 사업들도 대부분 정지되어 있었다. 나경채 대표 당선 이후, 선언적으로 녹색을 호출하는 방식이 아닌 당의 체계로부터 녹색 활동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4월 녹색위원회(준) 활동의 시작으로 이어졌으나 이후 6월 당대회에서 진보재편 당원총투표 부의 안건이 부결되며, 녹색위원회(준)의 구성원들도 여러 흐름으로 갈라져 활동이 지속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2.4. 녹색당 창당(27)

    2011년 말, 녹색당은 창당 발기인대회, 2012년 총선 직전에 정당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정당정치에 뛰어들었다. 녹색당의 창당 주역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2003년 녹색정치준비모임-2004년 초록정치연대-2007년 초록당을 준비하는 모임 등으로 이어져 온 흐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과거 진보정당에서 녹색 정치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흐름도 합류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내에서 녹색정책 분야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도 녹색당 창당 시 합류했다. 그의 고민이 매우 오래된 것임은 이미 2003년 제1회 녹색정치 포럼의 의견문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녹색이념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논의를 피해나갈 수는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과학기술운동 활동가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데 있어 고민의 핵심은 “진보정당 내 녹색파”가 될 것인가, “녹색당 내 좌파”가 될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정치현실은 이런 고민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척박할 뿐만 아니라, 앞서 나간 진보정당운동이든 뒤를 따르려는 녹색당이든 정치적 실천과 경험이 대단히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두 가지 갈림길에 대한 선택은 차후로 미루어 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녹색이념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그룹은 “녹색당 내 좌파”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물론, 그 고민은 내 자신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한재각, 2003)).

    이러한 고민은 단지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진보 정당 내에서의 녹색정치의 실현에 한계를 느낀 많은 구성원들이 녹색당 창당에 합류하게 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2.5. 통합진보당-정의당

    통합진보당의 녹색 관련된 흐름은 진보신당 시절부터 녹색 노동자임을 자임한 조승수 의원의 존재와 더불어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로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위원장을 확정·당선 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현재의 정의당으로 이어졌다.

    ■ 정의당 탈핵 에너지전환 특위

    2014년 11월, 김제남 의원과 조승수 전 의원을 공동 위원장으로 탈핵에너지전환 특위를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 당면과제로 수명이 끝난 노후원전의 재가동을 막아내는 것과, 노후원전 국회 검증특위 구성을 제안하였으며, 주요 의제로 1) 노후원전 폐쇄, 2) 신규원전 철회, 3)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4) 정의당 탈핵에너지전환 로드맵 등 핵 없는 에너지전환 계획 공론화 등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생태사회전환포럼

    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28)는 2014년 2월부터 ‘생태사회전환 포럼’을 개최해왔다. 천호선 대표는 “21세기 한국형 사민주의 실천의 핵심과제 중 하나로 생태주의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생태문제는 이제 하나의 정책 분야가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혁신의 기본적인 가치 지향이 되어야 한다. 생태문제에 대한 기존 진보의 태도 역시 인간 중심의 성장만능주의,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 생태전환을 위한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5년 8월 현재까지 총 10차의 포럼을 가졌다. 총 10차의 포럼 중 7차례의 포럼이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내용으로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

    <참고>

    (1) 이범(1995b)은 좌파는 환경문제를 자본주의의 폐해로만 간주한다, 환경운동을 시민운동의 부분집합이자 신사회 운동의 일부로 치부한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하며, 이러한 관점을 넘어 좌파의 이념과 생태주의가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복잡한 진보 정당의 역사 속에서 녹색 정치 관련 활동들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리를 위해 온라인 상의 기사들, 게시판의 흔적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기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다.

    (3) 관련기사: 프레시안,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0488)

    (4) 관련기사: 레디앙, 민주노동당 ‘녹색파’ 세규합에 나섰다(www.redian.org/archive/18091)

    (5) 관련기사: 프레시안, 녹색정치 한다는 민노당 후보들, 녹색 점수는 ‘B’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4468)

    (6) ‘제2창당을 위한 평가와 혁신안’에서 제시한 새로운 적녹정치의 필요성은 민주노동당에 잔류파들로부터, “‘노동’을 진보의 다양한 가치 중의 하나로 격하시킴으로써 계급문제를 희석시키는 한편, 남북문제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의한 민족분단과 미 제국주의의 남한 지배라는 제국주의 문제(또는 민족문제)를 아예 배제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관련기사: 심상정 비대위는 ‘쿠데타’를 획책하고 있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25941).

    (7) 관련 기사: 레디앙, 생태활동가 150명, 진보신당지지(www.redian.org/archive/20339)

    (8) 노동당 게시판: 유가환급금 모아 진보신당 발전소를 만들면 어떨까요?

    (www.laborparty.kr/bd_member/572946)

    (9) 관련기사: 레디앙, 울산북구의 또 다른 화두 ‘그린 조’(www.redian.org/archive/23830)

    (10) 관련기사: 레디앙, 조승수가 바로 녹색 시대정신(www.redian.org/archive/24284)

    (11) 관련기사: 한겨레, 송전탑 갈등, 발전소 소형화·근거리 공급이 해법

    (www.hani.co.kr/arti/society/area/363723.html)

    (12) 관련기사: 미디어다음, 조승수 의원 “우리나라 녹색성장 정책 방향 우려돼”

    (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20090715091809160&p=mydaily)

    (13) 관련기사: 시민운동연합신문, 풍력발전 건설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www.ngonewsi.com/news/article.html?no=6980)

    (14) 노동당 게시판: 중앙당직을 사직하며 + 당에게 부문은 무엇인가

    (www.laborparty.kr/bd_member/649730)

    (15) 노동당 게시판: [사진]북한산 지키기 2차 산행(www.laborparty.kr/bd_member/668798)

    (16) 노동당 게시판: 생각은 옳지만 체력이 약한 진보신당

    (www.laborparty.kr/bd_member/661456)

    (17) 관련기사: 프레시안, “등산은 생전 처음, 하지만 케이블카는…”

    (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2378)

    (18) 오히려 선거를 계기로 당 활동을 활발히 하게 된 경우이다. 이후, 경기도당 녹색위원장과 녹색위원회 할당 전국위원으로 당선되어 활동을 했다.

    (19) 노동당 게시판: 중앙당/총선후보의 에너지.환경 등 녹색의제 접근에 대한 아쉬움

    (www.laborparty.kr/bd_member/798264)

    (20) 노동당 게시판: 진보신당-녹색당의 적-녹 총선연대를 위한 협의를 제안 드립니다

    (www.laborparty.kr/bd_member/795040)

    (21) 노동당 게시판: 녹색혁명당 선언^^(www.laborparty.kr/bd_member/606628)

    (22) 관련기사: 레디앙, 다시 녹색사회당으로 가자(www.redian.org/archive/36899)

    (23) 노동당 게시판: 제안문 <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 ver 1.0

    (www.laborparty.kr/bd_member/755102)

    (24) 관련기사: 레디앙, ‘새 진보좌파정당’은 ‘노동-녹색 정당’-진보신당 프로젝트 종료…밀알 역할을

    (www.redian.org/archive/2272)

    (25) 노동당 게시판: 장석준 당원의 <녹색신좌파당> 이론은 이미 실패한 것

    (www.laborparty.kr/bd_member/755173)

    (26) 노동당 게시판: “약속” ④ 우리의 답은 ‘녹색좌파 대중정당’입니다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423575)

    (27) 녹색당의 경우 당 활동 대부분이 녹색 정치 활동이므로, 여기에서 다 정리하기보다는 창당 과정과 기존 진보정당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만 언급하였다.

    (28) 최근 ‘미래정치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필자소개
    ((주)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