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나의 휴가지
    [다른 삶 다른 생각] '산악관광특구법' 절대 안돼
        2015년 08월 31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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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다. 아니, 이제 휴가가 다 끝났지.

    늘 바라보고, 늘 찾아가는 지리산이지만, 휴가니깐 피서삼아 지리산엘 간다.

    돈 많은 사람이야 어디 좋은 데 비행기 타고 이름난 휴양지도 가고, 별이 몇 개씩 붙은 특급호텔에서 나긋하게 휴가를 보내겠지만, 쩝… 나 같은 사람들이야 식구들과 지리산 계곡에서 며칠 보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휴가가 된다.

    그동안 휴가라고 여기저기 이름난 곳들을 힘들게 찾아가고 돈 쓰고 해봤지만, 우리 동네 지리산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여름휴가(물론 봄, 가을, 겨울도 마찬가지지만)는 늘 지리산을 떠나지 않는다.

    지리산1

    첫날은 휴가 기념으로 가볍게 한신계곡을 찾는다. 한신계곡이라, 그래 당신이 아는 그 한신, 항우 유방이 싸울 때 꼽사리끼어 있다가 피만 보고 죽은 그 한신이 도망 와서 살았다는, 그래서 바위가 되었다는 얼토당토 않지만 꽤 신빙성 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한신계곡.

    백무동 입구에서부터 주차 전쟁이고, 산길이 도심지처럼 북적인다. 첫 나들이 폭포는 한강변 공영수영장으로 변해있다. 좋다. 그렇게 힘들게 일한 당신들, 지리산에서 스트레스를 한방에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조금씩 더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사람이 줄어든다. 급기야 ‘나는 간다’라고 말하고 가버린 어느 스님의 전설이 있는 가내소폭포까지 올라가서, 나라 법에서 가지 말라고 금줄을 쳐놓은 한신지곡으로 스며든다. 조용하다. 피서니까.

    지리산2

    둘째 날은 노고단을 찍고 뱀사골로 내려온다. 9km 기나긴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간장소에서 발도 담그고, 병소에서도 탁족도 하고, 급기야 돛소에서는 풍덩, 물에 빠진다. 한여름 더위가 가신다. 좋다. 나도 좋고, 나처럼 물에 빠져 일상의 힘듦과 더위를 씻어내는 우리들이 좋다.

    누가 놀러오면 늘 묻는다, 왜 뱀사골이냐고? 그럼 나는 늘 대답한다. 옛날에 뱀이 혹은 이무기가 사람을 해치고 지랄해서 어느 스님이 자신을 희생하여 그 뱀 혹은 이무기를 물리쳤다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 들려주고, 그 증거로 그 스님 이름을 딴 정진암이 있었다는 것과 그 스님에게 임금이 금으로 된 옷을 하사하여 ‘금포’라는 말이 옛날 이 곳의 지명이었다는, 꽤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 그 누구라도,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믿는 눈치는 아니다. 그러면, 나는 뱀사골의 또 하나의 유래는, 이태의 남부군에 의하면, 이곳에 백암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백암사가 배암사, 뱀사로 변형되어 뱀사골로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 그 누군가가 빨갱이라면 꽤 믿는 눈치고, 안빨갱이라면 뭐 역시 믿는 둥 마는 둥이다. 참내, 그럴 거면 왜 물어보냐고?

    지리산4

    셋째 날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삼화리 다리 밑을 찾는다. 삼화리, 물론 다들 모를 것이다. 그 옛날 사마(한문은 생략하고 선비 사에 말 마)정이라는 선비 놈이 놀고먹던 정자에서 유래하여 사마마을에서 삼화마을로 이름 지어진 작은 동리이다.

    이 동리 앞으로 뱀사골 계곡의 끝자락이 지나가고, 이 계곡에서 일 년 농사를 휴가철 한철에 다 한다는 동네 상인은 평상을 쭉 깔아놓고 백숙도 삶고, 파전도 굽고, 동동주도 팔고, 피서객들은 첨벙첨벙 논다. 예전엔 다들 뱀사골로 달궁으로 올라가고 동네사람들이나 여기서 놀았는데 점차점차 피서객이 늘어나서 이젠 여기도 복닥거린다. 평상에서 자는 사람, 물에서 노는 아이, 구석에서 삼겹살 굽어먹는 사람들, 다들 좋다.

    지리산3

    다음 날은 동네 수영장이었다가 어느덧 입소문이 난 원천리 계곡으로 간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피서객도 마을사람도 다들 좋다. 원천리는 어디냐고? 삼화리 건너 마을이 삼화리다. 큭. 너희 집이 어디니? 우리 뒷집의 앞집요. 암튼, 말로는 설명하기 귀찮고 언제 한번 와 보시라. 와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수영장이다. 물론, 이젠 여기도 사람들이 복닥거린다. 그래도 좋아…. 이만 원짜리 튜브도 하나 동네슈퍼에서 장만하고, 물안경도 하나 장만하고, 본격적인 물놀이를 한다. 신난다. 쯧, 니 나이가 몇이고? 몰라.

    너무 노나, 아무렴 휴간데, 죽도록 놀아야지.

    다섯째 날은, 더운 여름날 계곡도 없는 칠암자 산행을 한다.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 지리산 깊은 속살 안에 7개의 암자가 하루 걸음으로 하나씩 붙어있고, 그 암자를 순례하는 산길이다.

    사실, 옛날 스님들이 심심해서 놀러 다닌 길이다. 7암자에서 하나 빠진 산행(도솔암은 건너뛴다, 왜냐고? 도솔암까지 다 걸으면, 여름날에 죽어요)을 하니, 온몸이 땀투성이다. 그래.. 물에 가야지, 칠선으로 간다. 칠선계곡, 설악의 천불동 한라의 탐라와 함께 울 나라 3대계곡이라 불린다. 근데, 가보면 알지만 이런 계곡에 순위를 정한다는 게 참 한심한 짓이다. 암튼, 7암자 산행을 하느라 푹 젖은 몸을 칠선의 차가운 계곡에 담근다. 좋겠지. 후후 물론 너무 좋다.

    지리산6

    에효, 아무리 휴가지만 너무 놀았나, 그래도 일 년에 한번 밖에 없는 여름휴간데, 마지막은 지리산 반대편으로 한번 가봐야겠지. 길을 돼지평전에서 피아골로 잡는다. 구계포도 좋고, 단풍 없는 삼홍소도 좋다. 피아골 긴긴 계곡에 피서 온 사람들이 벅적벅적하다. 좋다. 튜브타고 노는 아이들도, 그 옆에서 캔맥주 홀짝이는 어른들도 다들 좋다.

    따라온 사람들이 또 묻는다. 왜? 피아골이냐고.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하도 많이 죽어 그 피가 골에 가득차서 피아골이라고 대답해주면, 다들 끄덕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옛날 이 곳에 기장농사를 많이 지어서, 기장밭 이곳 말로 피밭이었고, 그게 피아골로 변한 것이다. 피아골이 끝나는 곳에 연곡사가 자리 잡고 있다. 덥지만, 한 시간 정도 발품을 팔면, 당신은 천 년 전 돌들의 아름다움, 그 돌을 다듬은 석공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울나라 승탑의 교과서적인 전시장이다.

    지리산5

    아아, 일주일의 여름휴가가 끝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슬프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

    한번쯤 지리산이 내어준 큰 품에 안겨서 물놀이도 하고, 한여름 밤 별도 쳐다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캠핑도 하고, 좋다. 이 정도면 딱 좋다. 국립공원입네, 계곡 수질을 보존합네, 어기면 과태료 30만원입네 너무 무섭게 말고, 여름휴가철 한철만이라도 우리에게 지리산의 그 넓고 많은 계곡을 즐길 수 있게 해주길. 여기 말고 갈만한 곳이 없으니.

    그런데, 귀족들의 정부와 대통령은 ‘산악관광특구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지리산에 관광특구를 지정하고, 재벌들로 하여금 오성급 호텔을 짓고, 스키장을, 승마장을, 몇 십만 평 리조트를, 케이블카를, 산악철도를, 골프장을… 숲을 없애고, 계곡을 없애고, 산 능선마저 깔아뭉개고 뭘 자꾸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네 돈 없는 사람들, 돈 안 내도 원 없이 놀 수 있는 이 계곡에, 철조망 치고 출입금지 팻말붙이고, 그 안에서 돈 많은 놈만 돈 내고 놀게 하는 그런 이상한 개발하지말길. 제발, 한여름 이 기쁨마저 앗아가진 말길.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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