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과 청년일자리
[에정칼럼]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고용의 안정성
    2015년 08월 31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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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해고라는 거 한번 당해봤으면 원이 없겠다.”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청년 김규환(옥택연)이 해고 노동자 진상필(정재영)과 포장마차에서 다투는 과정에서 한 대사다.

이런 청년들의 바람에 부응한 것인지, 최근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버지 봉급을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라는 어느 정당의 현수막 슬로건이 말해주듯 노동개혁은 곧 ‘임금피크제’다.

현수막

그나마 아버지(혹은 어머니) 봉급을 깎거나 정년을 줄여서 자식을 채용할 수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 기꺼이 연봉 삭감을 결정할 여유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아버지는 드물다. 그리고 아버지의 결정이 자식의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채용된다고 해도 대부분은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오히려 비정규직 아버지 자신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다가 김규환의 아버지처럼 해고되거나 해고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김규환이 경찰공무원 면접 시험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한 대사처럼, “땅바닥에서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어서” 굴뚝이나 크레인에 오른다.

굴뚝은 산업혁명 이후 현대 산업사회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특히 한국경제는 지난 수십 년 간 수많은 굴뚝을 건설하면서 성장했다. 굴뚝이 세워질수록 경제가 성장했고 일자리도 그만큼 생겨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굴뚝이 경제를 살리지도 일자리를 만들지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저성장·저고용’ 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사회구조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아버지가 오르내리던 굴뚝(노동을 위해서든 투쟁을 위해서든)을 자식에게 일부라도 물려주는 것이 지속가능한지를 질문해봐야 한다.

굴뚝2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굴뚝산업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석유 등 화석연료를 채굴하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굴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석유와 전기 등 에너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굴뚝산업들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청년일자리 정책이라면, 고용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산업과 직업, 삶의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향후 산업구조개편 과정에서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산업과 직업에 청년일자리가 마련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된 일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녹색일자리는 ‘산업 전반에 걸쳐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을 높이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주로 에너지원 및 에너지 고효율화 분야, 산업·공간의 녹색화 분야, 환경보호·자원순환 분야, 저탄소 경제활동 분야의 일자리가 이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는 5년간(‘09~‘13) 107.4조원을 투입해 총 118~147만 명의 고용이 유발되는 효과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4대강을 파헤치는 데 많은 재정을 투입했고, 대기업 건설사들에 큰 이득을 남겼으며, 단기 일자리가 생겼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새로운 부가가치·일자리·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제, 국민의 창의성과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제’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27일 전국 17곳에 문을 연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 개막식 축사에서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까지 총 2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인데 혁신센터와 지원기업들도 적극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교훈을 얻었으면 좋으련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 일컬어지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추진이 대표적이다. ‘산지관광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에게 물려줘야 할 국립공원을 훼손해 일부 기업들에게 이득을 주겠다는 것이다.

녹색과 창조의 교집합이 토목·건설은 아닐 텐데, 신기하게도 결론은 강을 파헤치고 산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가고 있다. 그럼, 이제 청년들이 굴뚝에 오르는 대신에 삽을 들고 산에 오르면 일자리가 생기는 걸까.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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