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제도 개혁의 본질
    '비례성 원칙, 받은 만큼 가져가라'
    [기고] 정치개혁의 본질을 살려야 한다
        2015년 08월 28일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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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제도 개혁의 목적은 무엇인가

    작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인구 편차 2:1 초과 위헌 결정으로 촉발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 자체는 소선거구 위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일부 가미한 현재의 병립형 1인 2표제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었으나, 그 결정대로라면 현재의 지역구 246석-비례대표 54석의 의석 구조를 상당 부분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에서 권역별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함에 따라서 선거 제도 개혁 논의에 큰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현재 국회 의석의 95%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새정치연합의 양당 구조 하에서 이러한 논의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특히 ‘의원 정수를 늘릴지 말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인지’로 쟁점이 축소되면서 애초에 선거제도 개혁이 제기된 맥락과 근본적인 의미조차 사장되는 느낌이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논하는 목적은 명확하게 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을 확립하자는 데 있어야 한다. 지난 2012년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은 각각 정당투표에서 42.8%과 36.5%를 얻었는데, 이 득표율과 의석 배분이 일치한다면 양 당은 총 300석의 의석 중에서 각각 128석과 110석을 획득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그러나 양 당의 최종 의석은 152석(50.7%)과 127석(42.3%)으로 각각 24석과 17석의 초과의석을 확보하였다. 그 원인은 소선거구 단순다수득표제로 치러지는 지역구 선거에서 심한 과대대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46석의 지역구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역구 의석의 51.6%인 127명이 당선되었고, 민주통합당은 지역구 의석의 43.1%인 106명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지난 3번의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정당득표율과 의석율의 차이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거1

    이 결과를 살펴보면, 현행 선거 제도 하에서 제1당은 40% 전후의 정당 지지를 얻고서도 과반수를 넘는 의석 확보가 가능한 반면에, 양대 정당 외의 소수 정당은 20%~37% 정도의 정당 지지를 받아도 의석의 7%~20% 정도밖에 얻지 못함을 알 수 있다.(예컨대, 2004년에 민주노동당은 13%의 정당지지를 얻었음에도 의석의 3.3%인 10석만을 얻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받은 만큼 가져가는 것. 선거제도의 개혁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받은 만큼 가져간다는 원칙, 즉 표의 비례성이 관철되면 그 외의 문제, 예컨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다루었던 표의 등가성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표의 비례성을 관철할 것인가가 선거제도 개혁의 주제가 되었어야 한다.

    중앙선관위의 권고안은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서 정당별 의석수를 결정하는 독일식 연동형 1인 2표제를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에 돌직구를 던졌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이에 대하여 단순히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의 문제로 쟁점을 축소함으로써 선거 제도 논의를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독일1

    독일2

    표의 비례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세계 각국에서 실시하는 선거 제도는 굉장히 다양하며 표의 비례성을 실현하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 널리 소개된 독일식 비례대표제(연동형 1인 2표제)도 그 중에 하나의 방안이다. 필자가 이전에 소개한 바 있는 권역별(중대선거구) 비례대표제도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안이다. (관련 글 링크)

    한편 현재 아일랜드나 몰타에서 실시하고 있는 중선거구 선호투표제(1)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과거 일본과 대만에서 실시했던 중선거구 단순순위제조차도 소선거구제보다는 표의 비례성을 제고한다는 의의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현행 제도의 골격을 유지한 채, 비례의석만을 확대하더라도 이전보다는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2)

    실제로 소선거구 위주의 선거제도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비례대표제로 전환한 드문 사례가 존재한다. 1992~1993년의 뉴질랜드의 경우이다.(3) 비례대표 의석이 아예 없고 전체 의석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선출하던 뉴질랜드는 우리보다도 표의 불비례성 문제가 심각했다.

    1978년 선거에서 제1당인 뉴질랜드 국민당은 소선거구에서 총 39.8%를 득표하여 제1야당인 노동당의 40.4%보다 적은 득표를 했으나, 당선자수는 되려 11석이나 많았고 총 92개 의석 중 51석(의석점유율 55.4%)을 석권했다. 노동당은 40석을 얻었고, 지역구 득표수의 16%를 받은 제3당인 사회신용당은 92개 의석 중 단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를 계기로 소선거구제의 불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85년에는 국민당-노동당의 합의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 안이 제시된 후 6~7년에 걸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 끝에 1992년과 1993년에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거치게 된다.

    1992년의 1차 국민투표는 구속력이 없는 국민여론조사의 성격이었다. 1차 국민투표는 2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항목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인가,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이었고, 두 번째 항목은 대안적인 선거제도로서 ①소선거구 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 ②독일식 연동형 1인2표 비례대표제(Mixed Member Proportional), ③병립형 1인2표제(Supplementary Member, 즉, 현행 우리나라와 일본식 제도), ④중선거구 선호투표제(Single Transferable Vote)의 4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국민투표의 결과 첫 번째 항목에서 투표자의 85%가 현행 소선거구제의 변경을 선택했고, 두 번째 항목에서 65%가 독일식 1인2표제를 선택했다.

    1993년에 실시된 2차 국민투표는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서 현행 소선거구제와 1차 국민투표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도록 한 결과 소선거구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대한 지지가 각각 46대 54로 나와서 뉴질랜드는 80년 이상 실시해오던 전통적 소선거구제에서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뉴질랜드의 선거 결과는 절대 과반수 정당이 출현하지 못하고 전통적 거대 양당인 국민당과 노동당의 의석 점유율이 75~85% 수준에 머무르는 한편(4), 녹색당, 마오리족 정당, 우익민족주의 정당, 자유시장주의 정당 등 양당의 정책 범주에 포괄되지 않은 다양한 소수 정당들이 의회에서 대표권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뉴질랜드의 사례는 당시의 선거제도가 가진 핵심적인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공유, 장기간의 의견 수렴과 토론, 각각의 대안들에 대한 풍부한 정보 제공, 국민투표를 통한 민주적 절차 보장 등 가히 선거 제도 개혁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정치 현실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선거제도 논의는 무엇보다도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정당 지지도를 넘어서는 거대 양당의 과대 대표를 억제하고, 양당이 포괄하지 못하는 제3, 제4 세력에게 지지율에 부합하는 정당한 대표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이에 비하면 국회 총의석을 현행 유지해야 하는지/늘려야 하는지, 비례대표를 전국단위로 할 것인지/권역별로 할 것인지는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필자는 표의 비례성 실현이라는 대전제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독일식 비례대표제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들을 고려하고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현실적으로 국회의원 정원 증가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의원 정수 증대에 강한 반감을 가진 국민 정서와 충돌하면서 논의가 공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비례의석 확대는 그 자체로 현행 비례대표제에 대한 반대 여론, 즉, 비례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인물 선택권 박탈이라는 대중 감정과 충돌한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적 정서에 대한 대안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즉,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도 비례성을 실현할 방안이 있는지, 비례대표제 하에서 인물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여야 하지 않는지 섬세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현재의 논의 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선거구 당 3인 이상을 선출한다는 전제에서 최근 안철수 의원이 제기한 중선거구제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현재의 왜곡된 논의 구도를 넘어서서 받은 만큼 가져간다는 표의 비례성을 관철하는 선거 개혁의 본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례성 실현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1. 아일랜드의 경우 선거구마다 3~5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하에서 유권자들이 1순위 후보와 2순위 후보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투표한다.

    2. 실제로 우리와 유사한 선거제도를 시행하는 일본의 경우 전체 의석의 38%(475석 중 180석)가 비례의석이고, 대만 역시 30%(113석 중 34석)가 비례의석으로서 우리의 현행 18%(300석 중 54석)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3. 이하 영문 위키피디아 ‘뉴질랜드의 선거 제도 개혁’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Electoral_reform_in_New_Zealand)

    4. 기존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양당이 1~2석의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체 의석을 석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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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진보정치 무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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