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멀어진 통일의 길
    군사 긴장과 남북한 '병영화' 원인
        2015년 08월 24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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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최근 자주 향수스럽게 기억하는 장면들은 쏘련에서의 새해(신정) 명절 잔치입니다. 대개는 밤 12시, 새해가 딱 시작하는 시점에서 텔레비전에서 공산당 총서기장 동지의 연설을 청취하는 동시에 샴페인 잔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늘 첫 건배사는 “새해에 전쟁이 없도록! 세계평화를 위해서!”이었죠.

    이런 “세계평화 건배”는 쏘련 정부의 선전이 내면화한 결과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정부도 정부대로 훨씬 더 강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력들과의 정면충돌을 당연히 피하고 싶었지만, 민중 차원에서는 전쟁 트라우마가 절대적이어서 “전쟁”은 최악의 저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 당시 쏘련 총인구의 약 5분의 1인 2천 7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은 파쇼 점령, 기아, 피난, 지옥 같은 전시노동의 기억을 갖고 살았습니다. 전쟁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은 가정이 없었기에 “평화 기원”이야말로 민중의 제일 간절한 정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날의 한반도도 어쩌면, 옛 쏘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민중에게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전쟁은 백해무익이지만, 양쪽 지배자들의 대부분도 사실 전쟁으로 득 볼 게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면전으로 북조선 지배자들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가 하면 남한 지배자들도 가진 것 중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됩니다. 증시 폭락, 원화 평가절하, 수출 중단, 산업시설 파괴…국지전이라도 난다면 벌써 이 정도일 것이고, 한국 재벌에도 상당한 타격일 것입니다.

    전쟁으로 득 볼 집단이라면 아마도 외세(특히 미국 군부)와 특진 등이 가능해질 한국군 장교집단 등이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미국 군부로서는 때이른 중국과의 정면충돌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러니까 아무리 호전적 언어를 써도 실제적인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포격

    방송화면

    가능성이야 낮지만, 무서운 게 현재의 극단적인 분위기와 상황들이, 전쟁이 날 것 같은 이미지와 분위기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제어되는 방식으로 잡힐 수 있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 “혹독한 대가” 수준의 국방부의 깡패적 언어, 대포 사격, 주민 소개, 그리고 한국 SNS에서의 “무찌르고 싶다”, “쳐부수자”, “죽여버리자”와 같은 일베풍 댓글들의 범람…

    전쟁 나면 모두들이 다 끝장이고, 사실 외세나 그 일부 하위 동반자들 이외에 전쟁을 바랄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비좁고 인구밀도가 엄청난 반도에서, 호전적인 분위기가 왜 이렇게 금방 오는가요? 홍수에 밀려 물과 함께 유실돼 흘러왔을지도 모를 지뢰를 가지고, 남쪽이 이렇게도 문제를 벌린다는 게 왜 가능했을까요?

    “집권 극우세력들이 노동개혁 등 반민중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연막을 필요로 했다”는 게 아마도 정답일 것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총풍이 선거용이라는 사실이야, 우리는 이미 90년대부터 알게 됐으니까요. 거기까지 좋은데, 집권 극우세력들이 이렇게 계속 “북풍”을 이용할 수 있는 그 근본 원인은 뭘까요? 왜 총질을 연출시킬 수 있는가요? 그리고 왜 “북풍”은 – 적어도 일부의 유권자들에게 – 여전히 강하게 먹힐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슬픈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1991~2년 쏘련 망국과 중-남 수교로, 한반도에서는 “체제 경쟁”은 끝난 것입니다. 적화통일은커녕, 이북의 운신 폭은 겨우 생존 보장 정도로 좁혀진 거죠.

    그 후로 이남의 지배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전략적 선택이 있었습니다. 이북의 지배층들을 껴안고 경협부터 시작하여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축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합의형 통일로 가느냐, 아니면 앉아서 그냥 “빨갱이 자멸”과 흡수통일의 기회를 노리느냐는 선택이었습니다. 이게 선택지였는데, 슬픈 사실은 1991년 이후의 24년 중에서 약 14년 동안(노태우 말기,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이남의 지배자들의 실질적인 대북 정책은 후자에 더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경협 정도 하면서 이북 체제의 균열 등을 기다려보는 식이죠.

    약 10년 동안(김대중/노무현 시기) 전자의 매우매우 온건한 버전이 시도됐습니다. 군사적 신뢰 구축 및 군축까지도 못가고 적극적 경협과 정치적 신뢰 구축 정도이었죠.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이명박 집권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사실 여태까지 이북에 들여온 “공”의 상당부분을 취소시키고 만 것이었죠.

    그러니까 총결산은, 그저 24년 동안 이북 체제 균열의 조짐을 기다리면서 보낸 것인데, 통일에는 거의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한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취소에 대한 이북의 실망도 있고 해서, 어쩌면 우리는 1991년에 비해서 통일로부터 더 멀어져 있는 게 아닌가요?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이남 지배자들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을 “이북 체제 균열 조짐”을 기다리면서 허송세월하고 통일로부터 멀어지기만 하고, 그동안 이북은 국가화된 적색개발주의 경제에서 혼합경제로 탈바꿈되는 등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경제 모델도 바뀌어가면서 또 중국 중심의 지역적 경제질서 편입도 척척 진행됐죠. 북-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이북의) 동북아 지역 경제질서 편입은, 남한이 거의 제외된 채 완결지어질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북조선은, “붕괴” 가능성이 없는 하나의 지역적 저임금/성장 경제죠. 이제 한 두 세대가 또 교체되면 아마도 이북과 이남의 정체성이 완전히 이질화돼 궁극적 “통일”의 가능성 자체가 차단되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남의 집권 극우들이 계속해서 이북 “도발” 유발을 그 정치에 이용해먹고 있는 것이죠…너무나 슬픈 광경이 아닌가요?

    남북은 지난 24년 동안 통일에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어요. 통일이 없는 이상, 한반도 군사긴장이 유지되고 남북한의 병영화도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남자”와 “군인”이 구별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말 계속 살고 싶은가요? 우리에게 한반도로서 가장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왜 이토록 전략도 추진력도 없을까요? 슬프고 답답한 노릇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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