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대혁명의 악마화'를 넘어
    [책소개] 《민주 수업》(조정로/ 나름북스)
        2015년 08월 22일 0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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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대혁명 당시 해방군이던 ‘나(조 간사)’는 죽은 줄 알았던 옛 전우 엽삼호를 우연히 만난 후, 당시의 투쟁과 첫사랑 소명을 회상한다. ‘동방홍공사’라는 T시 중학 조반 조직의 연락원인 소명은 아버지의 거짓 자백으로 인해 반우파로 몰려 비판받았던 경험이 있다. 소명에게 첫눈에 반한 조 간사는 소명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그녀를 돕고 싶어하고, 둘은 해방군 주둔지 뒷산에서 만나며 사랑을 키워 간다.

    그러나 투쟁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품은 애정이 ‘소자산계급 부르주아’의 사상이라고 단정한 소명은 조 간사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녀의 복잡한 배경과 출신 성분에 갈등하던 조 간사도 소명이 하향을 결정한 후 만나러 왔을 때 피하고 만다. 훗날 소명이 보내 온 일기를 보며 자신을 기다린 그녀의 마음을 안 조 간사가 그녀를 찾아가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또 다시 엇갈린다.

    한편, 소명은 하향한 석문관 마을에서 농민들과의 생활을 시작한다. 소명을 비롯한 지식청년들은 농촌 생활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배워가고 농민들과 교류하며 혁명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던 중 줄곧 부정하고 원망했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소명은 그의 죽음에 관한 진상을 파헤치게 되고, T시에서 새로운 진실과 마주한다.

    문화대혁명의 고통스러운 내면과 인간의 상처까지 … ‘기억의 투쟁’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문화대혁명은 홍위병으로 상징되는 희대의 집단 ‘광기’다. 모택동의 선동에 의해 문화예술과 유물을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지식인을 학대하는 홍위병의 비이성적인 모습은 문화대혁명의 원인과 목적을 가린 채 깊이 각인되어 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의 이름은 모두가 알지만 이토록 해석이 엇갈리고 오해가 뿌리박힌 역사는 드물다.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층적인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연구와 후일담이 있지만, 문화대혁명을 직접 경험한 작가 조정로는 이 현상을 ‘전복을 두려워하는 지배계급의 은폐’로 규정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많은 중국의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홍위병이 군복을 입고, 허리에 혁대를 차고, 입만 열면 욕을 하는 흉악무도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을까? 지금 세계의 주류 미디어가 전파하는 문혁의 모습은 이런 것일 테다. 이러한 황당무계하고, 스스로 모순되며, 논리를 결여한 묘사들이 영원히 문화대혁명의 참모습을 은폐할 수는 없다. 전 세계의 통치자들은 이미 묵계를 형성해 문화대혁명을 성토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가 자본의 지구화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혁을 악마화하는 것이 그들의 공통 선택이 된 것이다.” (《민주 수업》 한국어판 서문 중)

    민주수업

    《민주 수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동적인 시대의 흐름 앞에서 고뇌하고, 휩쓸리고, 주저하고, 의심하는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좌파지지 무장부의 엘리트 군인인 화자 조 간사는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때로 냉소적으로 묘사하며 지극히 현실주의적 입장을 가진다. 조 간사가 존경해 마지않는 정치위원 강요가 점차 집착에 가까운 인물로 변모해가는 과정도 규정하기 어려운 문화대혁명의 성격을 대변한다. 이외에도 임표와 닮은 얼굴 때문에 웃지못할 고난을 겪는 군인 엽삼호,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길을 택한 지식인 류사리 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혁명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는 소련 사회주의의 실패와 ‘위로부터의 혁명’의 한계를 고민한 작가 조정로의 이념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돈을 확보하기 위해 권력을 확보해야 했고,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질 분자를 타격해야 했으며, 이질 분자를 타격하기 위해 각종 정치 운동과 정치 역량을 빌려야 했”(378쪽)던 당시 논리를 소명의 입을 빌어 회고한다.

    “1세대 혁명 참여자가 목숨을 걸고 타도하려 한 그 사회적 폐단이 어째서 2세대와 3세대에게서 아주 쉽게 되살아나는가? 나는 이로부터 공산주의 운동의 이론적 설계에 선천적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유제에서 유산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된다. 직접 계승하면 된다. 그렇지만 공유제의 조건에서 혁명의 유산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혁명 참여자의 2세대와 3세대가 변질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 문화대혁명은 그저 한 차례의 실험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다음 번 공산주의 운동이 흥기할 때가 되어야 신뢰할 만한 이론적 답변을 얻게 될 것 같다. 《민주 수업》은 하나의 소설이다. 소설 속의 허구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나의 사유다.”(7쪽, 저자 서문 중)

    특히, 소명이 농촌으로 하향한 후 그려지는 생활은 지식청년이 체험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갈등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오롯이 빛나는 소명의 태도는 아래로부터 배운 민주와 자기 해방의 과정, 안명원이나 예영무와 같은 잊힌 혁명 원로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적인 성찰로 나아간다. 또한 소명이 알고 있던 이념과 지식이 하나씩 깨져가고 아버지의 흔적을 좇으며 문제제기와 반전이 거듭되는 서사는 중국 지식인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회한과 역사적 고민의 깊이를 보여준다.

    ‘어린 우파’에서 열렬한 조반파 리더로 자라는 인생역정, 그리고 사적인 것보다 대의와 혁명을 향해 끊임없이 정치적 질문을 던지는 소명이 이 작품에서 가장 또렷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이상’인 동시에 ‘희망’이 된다. 모순된 시대, 오늘날까지도 평가의 곤란함을 갖는 문화대혁명에 관해 무기력한 개인이 아닌 각성하고 저항하는 청년으로서 발언하는 소명의 강인함은 시대가 변하고 나이가 든 후에도 딸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결말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나는 늘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요. 혁명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걸까? 개혁은 또 무엇을 위한 걸까? 바뀐 한 무리가 어르신이 되는 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혁명의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만약 개혁이 그저 또 다른 무리가 다시 어르신이 되는 거라면, 개혁의 의의는 또 어디에 있는 걸까? 어찌해서 대가는 늘 인민이 치르고, 성과는 늘 소수가 빼앗을까? (…) 정말로 문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소련과 미국이 패권을 다투는 구도 속에 중국은 없었을 테고, 오늘날 개혁 개방의 중국도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지 않으면, 당신의 오늘은 어디에 있겠어요? 이런 논리적 관계도 명확히 못하면서 부자만 되면 되나요?”(501-503쪽)

    이처럼 문화대혁명에 대해 저마다의 할 말이 있는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선악 구도가 아닌 각각의 특별한 에피소드로 서로 토론을 벌이듯 그럴 수밖에 없던 시대를 항변한다. 문화대혁명은 살아 있는 인민들에게 해방구이기도 했지만 기회이거나 고난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인민은 공동체의식을 심고, 아래로부터의 민주를 체험하며, 현실적인 노동과 생산을 해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은 거대한 학교라고도 할 수 있다. 혁명의 의의를 끈질기게 묻고, 또 그것을 배우기 위해 모두가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것이다.

    “모 주석은 말했다! 모 주석은 말했다! 모 주석은 말했다! 우리는 당당하고 엄숙한 말로 상대방을 반박했고, 스스로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후 돌연 입을 다물고 더 말하지 않았다. 수십 년 후 다시 이 장면을 떠올렸을 때, 온갖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진실했던 그 시대 우리에겐 이러한 토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것은 도대체 뭘 의미했던가? 목적의 합리성, 과정의 간난, 노선의 협애, 감정의 침중, 그리고 각종 어쩔 수 없던 것들, 이것들은 모두 불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한차례의 민주 수업이었을 것이다.”(476쪽)

    사실성과 현재성을 지닌 유일한 ‘문혁 서사’

    이렇듯 《민주 수업》은 한국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문화대혁명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오해를 교정하고 새로운 해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분출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 사회 내부의 다양한 모순과 갈등을 절절히 드러낸 이 작품은 결국 중국 본토의 출간 금지로 대만에서 발표됐다.

    단편 〈그곳(那兒)〉을 통해 중국에서 ‘저층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작가 조정로는 개혁 개방 이후의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회의 주인이어야 할 노동자와 농민이 철저한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의 현실 인식과 저항을 작품들에 녹여내 평단과 독자의 큰 반향을 불렀다. 《민주 수업》은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전면 부정한 뒤에 창작된 문학작품 가운데 장편소설로서는 유일하게 문화대혁명의 실제적 전개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측면, 또한 ‘농후한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더욱이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작품이 문화대혁명의 역사를 ‘현재’ 중국 사회의 문제 및 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작품은 문화대혁명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회고담을 늘어놓거나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차원의 정치적으로 안전한 접근로를 경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작품 곳곳에서 문화대혁명 시기 조반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조반자들의 문제의식은, 비록 개혁 개방 이후의 주류 역사 서사에 의해 은폐되고 잊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 수면 아래에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중국 사회의 현재적인 정치적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작중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문득문득 환기된다.”(513-514쪽, 작품 해설 중)

    특히 기존의 문혁 서사가 외면한 조반의 과정을 세심한 심리 묘사로 파헤쳐 ‘조반’과 비이성적인 홍위병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던 이들에게 조반의 내면을 드러내고 이해를 돕는다. 기존의 문화대혁명 재현 서사에서 ‘조반’의 흔적이 지워져 있거나 관련사건 및 인물이 모호하게 그려지는 점을 지적하며 ‘조반의 소실’을 개념화한 바 있는 성근제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는 작품 해설에서 《민주 수업》이 개혁개방 이후의 주류 작품과 분명히 구분된다며 조반이 상세히 그려지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작품이 기존의 문화대혁명 서사 작품들의 서사 관행과 다르게 가장 열렬한 조반파 리더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과 동기, 그들의 사상과 정신적 내면세계에 주목하고 그들의 지난한 투쟁과 박투의 과정 전체를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조밀하게 추적하고 재현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민주의 위기에 직면한 중국 사회가 아프게 반추하고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과 경험의 과정, 즉 ‘민주 수업’의 소중한 출발점이 아니겠냐는 작가의 역사적 물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517쪽, 작품 해설 중)

    성근제 교수는 이외에도 하방된 지식 청년들과 농촌 간부 및 농민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점, 문화대혁명 시기의 실천과 사고에 대해 전면적인 역사적 반성이 수행되는 점 등을 들어 진정한 ‘반사 문학’, 즉 ‘이름에 걸맞은 전면적 반성을 수행한 최초의 작품’으로 보았다. “이 작품의 역사적 실천에 대한 반성의 시야와 폭, 그리고 깊이는 기존의 문혁 서사 작품들이 결여한 부분의 회고와 반성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분명히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20세기를 살아 온 중국인의 곤혹,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라보며 우리는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된다. 불과 50여 년 전 혁명으로 들끓었던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거대한 시장이 되었고 민주주의나 인권, 부정부패와 관련해 우월의식을 갖게 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서로의 역사가 서로에게 전제되는”(523쪽, 역자후기 중) 동아시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역사의 무게’를 자각하는 것은 관계성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자 실천의 근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도 ‘민주’를 위해 비싼 수업료를 치른 역사가 있다. ‘혁명’이나 ‘전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엄혹한 시대에 잠재된 혁명적 급진성을 체험하고 ‘민주’의 가치를 위해 피흘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오늘날, ‘민주’나 ‘저항’의 의미에 대해선 인식이 엇갈린다. 이미 권력이 된 386세대의 자유주의화나 운동권 지식인의 후일담 안에서만 회자되는 것들이 아닌, 진정한 ‘민주’에 대한 물음은 현실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민주 수업》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민주’는 ‘살아 있는/살아남은’ 자들만의 ‘민주’일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와 단절된 수평적 ‘민주’만으로는 ‘윤리’를 담보하지 못하고, 폭력적 관계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이를 기존의 인식론적 구도에서 읽는다면, 중국 사회에 대한 ‘동정론’이나 ‘낭만화’라는 외재적 접근을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문학작품이 표현하는 삶의 구체성과 풍부함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 궁극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내리누르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자각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후에야 중국인의 곤혹 또한 외재적인 ‘동정’이나 ‘평가’가 아니라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우리 자신의 고민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이다.”(524-525쪽, 역자 후기 중)

    <추천의 글>

    백승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문화대혁명은 현대 정치의 모순에 대한 가장 첨예한 질문의 장소였다. 《민주 수업》은 의인화한 구도를 통해 이러한 문화대혁명의 대립 지점을 재확인시키고, 그것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민중의 삶 속에서 ‘민주 수업’의 형태로 분출했음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왕후이 (칭화 대학 교수) : 문화대혁명은 ‘최후의 혁명’이었는가, 아니면 미래의 실패에 대한 예행연습이었는가? 《민주 수업》은 문혁 과정을 추적해 포스트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사고한다.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독특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린 소설이며, 문학 형식으로 전개한 역사적 추적이자, 사상적 변론이다.

    쳔 꽝싱 (대만 국립교통대학 교수) : 《민주 수업》은 사상과 문학의 격동 속에서 만들어진 걸작이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적 실천으로써의 문화대혁명이 간단히 환원되거나 평가될 수 없으며, ‘민주’는 더욱이 부단한 자기 학습의 과정임을 알게 된다.

    쑨거 : 문화대혁명은 아직 역사가 되지 못할 정도로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시간 안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망각될 위험에 처해 있다. 조정로의 《민주 수업》은 이러한 위기 앞에서 선명하게 “망각을 거부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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