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 시대,
다양한 군상들의 천태만상
[책소개]《어느 하녀의 일기》(옥타브 미르보/ 책세상)
    2015년 08월 22일 01: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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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는《어느 하녀의 일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한 현실 참여적 지식인으로, 언론인·소설가·극작가·예술 비평가·아나키스트 등 실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옥타브 미르보의 대표작이다.

다사다난한 삶의 역정을 거쳐온 도도하고 매력적인 하녀 셀레스틴의 시선을 통해, 19세기 말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풍속, 부르주아의 탐욕과 위선, 성적 타락과 방종은 물론, 하층 계급의 비참한 노동 조건과 신산한 삶, 국론을 분열시킨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싼 반유대주의와 애국주의의 광풍까지 그려낸 이 작품은 냉소와 풍자가 가득한 ‘벨 에포크 시대의 거대한 인간 희극’이라고 할 만하다.

하녀의 눈에 비친 화려한 상류 사회의 추악한 이면

“나는 나이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완전히 벌거벗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속옷과 살갗, 그들의 영혼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렸다. 향수를 뿌렸음에도 그들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존경받는 가정과 정직한 가족이 덕행의 외관 아래 얼마나 많은 추잡한 언행과 수치스러운 악행, 저열한 범죄를 감출 수 있는지! 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140쪽)

이 소설은 19세기 말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시골 마을 메닐-루아에, 파리에서 온 하녀 셀레스틴이 부유하지만 인색하기 그지없는 랑레르 부부의 집에 취직되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브르타뉴 해안의 오디에른 출신으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셀레스틴. 수녀원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난 그녀는 언니, 오빠와도 소식이 끊긴 채 혈혈단신 수많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인생의 쓴맛과 단맛, 환멸을 두루 맛본다.

하녀로 일하면서 자신이 모시는 주인은 물론, 동료 하인들과 자신을 스쳐가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꿰뚫어 보는 비상한 관찰력을 가진 셀레스틴은 매혹적인 용모와 언동으로 모든 남자가 추근거리는 욕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신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랑레르 부인 때문에 지쳐가는 가운데, 부인에게 주눅 들어 있으면서 하녀를 통해 욕정을 분출하려는 랑레르 씨의 추파를 받는 셀레스틴. 그리고 두 동료, 즉 술에 절어 사는 요리사 마리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정원사 겸 마부 조제프와 함께 일하는 그녀는 이내 시골의 단조로운 일상에 따분함을 느낀다.

퇴역 군인인 모제 대령을 모시는 이웃집 하녀 로즈의 주선으로 나가기 시작한 마을 하녀들의 모임이 그녀의 지겨움을 잠시나마 해소해주는 유일한 오락거리다. 매주 일요일 미사가 끝난 뒤 구앵 부인의 식료품점에서 열리는 이 모임에서는 마을에 떠도는 온갖 풍문과 추문이 화제에 오르고 우스갯소리와 험담이 오간다.

이렇게 시골 생활에 젖어가는 와중에, 셀레스틴은 왠지 수상쩍은 마부 조제프의 거동에 호기심과 불안함을 함께 느끼며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년간 열두 개의 일자리를 거치며 산전수전을 겪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동안 주인으로 모셨던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역겨운” 부르주아들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린다.

이 과정에서 사랑에 한없이 약하면서도 발칙하고 도발적이고, 일견 자유분방하지만 신실한 종교적 감정을 간직하고 있고, 여느 하녀와는 다른 세련된 취향, 소설 탐독을 통해 가꾼 교양과 우아한 언변을 지닌 동시에, 동료 하인들과 치는 짓궂고 천박한 장난을 즐기기도 하는 셀레스틴 자신의 모순적이고 다면적인 모습도 드러난다.

어느 하녀의 일기

기묘한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벨 에포크 시대의 천태만상 

“더 이상 노예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하인들이 노예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노예 제도가 정신적 비열함, 필연적 타락, 증오를 낳는 반항심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노예 제도는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인들은 악덕을 주인에게 배운다. 순수하고 순진한 상태에서 하인 일을 시작하는 그들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습관과 접촉하면서 금세 타락하게 된다. 그들은 오직 악덕만을 보고, 악덕만을 호흡하고, 악덕만을 만진다.” (368쪽)

이 소설에서 미르보는 부르주아 계급의 탐욕과 부패, 타락을 고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하인들이 보이는 비굴한 노예근성과 주인을 따라 악덕을 저지르는 비열함도 풍자한다. 그리고 실직한 셀레스틴에게 임시보호소이자 직업소개소 역할을 한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를 그림으로써 성직자들의 거짓과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비웃으면서도 그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동경하고, 자신이 불행해질 줄 알면서도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파멸에 몸을 맡기는 셀레스틴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가차 없이 드러낸다.

구두에 집착하는 괴벽을 지닌 라부르 씨, 동물이든 식물이든 뭐든지 먹는 것이 자랑인 모제 대령,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난폭하게 드러내는 반유대주의자 조제프, 셀레스틴의 사랑을 갈구하던 젊은 결핵 환자 조르주 씨, 갑작스러운 성공으로 겉치레에 과하게 열중하며 사교계에서 인정받고자 몸부림치는 샤리고 부부, 본래 하녀 출신이면서 하녀들을 멸시하고 상류 계층 부인들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직업소개소 운영자 폴라-뒤랑 부인, 대외적으로는 각종 종교·자선 사업에 활발히 관여하면서 한편으로는 방탕한 아들 자비에를 집에 잡아두고자 하녀를 일종의 창부로 부리는 드 타르베 부부, 셀레스틴을 먼저 유혹해놓고 막상 도움을 요청해오자 “인생은 그냥 인생이야”라고 말하며 빠져나간 동료 하인 윌리엄… 이 소설은 각계각층의 기묘한 인물들을 여럿 등장시켜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와 시골의 뒤틀린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 하녀의 일기》의 초고는 보수 성향의 일간지《에코 드 파리L’Echo de Paris》에 연재되었지만(1891년 10월 20일∼1892년 4월 26일) 당시 작품 활동에 있어서나 사생활에 있어서나 슬럼프에 빠진 탓에 스스로 흡족하지 않았던 미르보는 그로부터 8년 후 드레퓌스 사건이 전개된 시기를 배경으로 설정해 대대적인 개고에 착수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성향의 격주간 문예지《라 르뷔 블랑쉬La Revue blanche》에 10회에 걸쳐 발표하고(1900년 1월 15일∼6월 15일) 줄거리에 특별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 두 장을 막판에 추가해 1900년 7월에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부르주아의 속물근성을 풍자하는 일화가 대폭 보강된《어느 하녀의 일기》는 대중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미르보 생전에 약 14만 6,000부가 팔려 나갔다.

이 소설은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과거 회상 장면이 빈번하게 끼어듦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전통적 소설의 선형성을 깨뜨리는 동시에, ‘회상’이나 ‘기억’이란 제목이 붙은 작품들보다 생생한 현재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발자크와 졸라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자와는 달리,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만 서술하는 셀레스틴을 화자로 내세워, 수수께끼로 남은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기도 한다(예컨대 라용 숲에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한 소녀 ‘꼬마 클레르’를 죽인 범인이 조제프라고 셀레스틴은 줄곧 의심하지만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이처럼 출간 당시 전통적인 소설과는 다른 참신한 구성과 내러티브를 선보인《어느 하녀의 일기》. 하녀 셀레스틴의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삶의 허무를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 독특한 세기말 작가 옥타브 미르보의 진가를 확인케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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