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는 하나다, 진짜?
    [에정칼럼] 구내식당 정규직 2,000원 Vs 비정규직 5,300원
        2015년 08월 18일 03: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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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맞서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점점 무뎌져 가고 있는 듯하다. 노동운동 밖에서 속내도 모른 채, 몇 마디로 간단히 예단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한발 떨어져서 노동운동을 애정으로 보는 마음이 썩 개운하지만은 않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그 어느 분야에 비해 ‘사회공공성’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하는 실천전략, 즉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공공성’ 확보 투쟁,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대응에 여러 아쉬움이 든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에 대한 신랄한 사회적 비판은 ‘철밥통’과 ‘밥그릇’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공공부문은 그나마 먹고 살 만하지 않느냐?”는 비판일 게다. 이 또한 귀담아 새겨듣고,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있겠지만, 공공부문 노동운동 ‘내부’의 아픈 현실과 균열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내부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문제가 그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 즉 국가와 자본가의 탓으로 규정하는 것은 ‘나쁘거나’ 혹은 ‘생각 없음’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부문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공적 통제가 필수적이고, 경제와 시민에 미치는 파급을 고려할 때 공공성 확보는 당연하다.

    에너지정치센터는 국회 사무처의 정의당에 대한 정책연구 지원 사업을 의뢰받아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고리‧영광‧월성‧울진 등 4개 핵발전 단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만난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피폭과 사고 위험, 그리고 대개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고용불안과 후생복지 등 노동기본권을 크게 위협받고 있었다.

    한수원 영광

    영광 원전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모습 자료사진(민주노총 전남본부)

    [고리] 구내식당도 차별 : 정규직 2,000원 Vs 비정규직 5,300원

    한수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23기의 핵발전소에는 19,693명의 노동자가 있는데, 그 중 정규직은 6,771명(34%)이고, 나머지 12,922명은 비정규직(6%)이거나 사내협력업체 노동자(60%)이다. 이들 협력업체 노동자는 용역계약기간이 1년 혹은 3년이고, 고용승계가 불안하고,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현장에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방사선안전관리는 한수원의 용역 입찰을 통해 3년 주기로 2기의 핵발전소를 묶어 용역업체가 선정된다. 고리와 신고리에는 4개 용업업체에 약 350여명의 방산선안전관리 노동자가 있다. 이들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12년 정도이지만, 평균 연봉은 3,000만원을 밑돈다. 또한 3년 주기로 용역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고용승계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참고로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들의 업무는 발전소 내의 오염도와 방사선 선량을 측정하고, 오염물질을 제거(제염)하고, 작업복을 세탁하거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작업자들의 피폭량을 확인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한수원은 이들 노동자들의 업무를 단순노무라 취급하면서, 용역설계 시 엔지니어링협회의 낮은 기준 단가를 적용하고 있다. 임금뿐만 아니라 작업환경도 매우 열악했는데,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가건물 수준의 낡은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구내식당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가격이 구분돼 있어요. 한수원 노동자는 2,000원, 한전KPS 노동자는 3,800원, 용역업체 노동자는 5,300원이다.”

    연봉은 정규직의 1/3 이하이지만, 밥은 두 배를 내고 먹는다. 회사 복지의 차이겠지만, 먹는 인심 한번 고약하다. 이 외에도 정규직 노동자는 안전교육을 비롯해 각종 교육기회가 많은데, 용역업체 직원들은 교육을 받으러 가려면 대체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조건에서 쉽지 않다.

    [월성] 2차 하청노동자의 비애 : 죽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월성 핵발전소 내에는 19개의 용역업체가 있는데 경상정비(한전KPS와 계약한 업체), 청소, 조명, 특수경비, 수처리, 식당, 스포츠센터 등을 맡고 있다.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은 울진, 월성, 고리, 영광 모두 다 있고, 핵발전소 비정규직노동조합은 1,3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10% 정도가 조직되어 있는 셈이다.

    한수원은 한전KPS와 경상정비 용역을 체결하고, 한전KPS는 기계정비와 보수와 관련해 재차 용역을 체결한다. 한전KPS와 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사 노동자와 같은 업무를 하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월성의 경우 한전KPS 노동자는 300여명, 하청 노동자는 80여명 정도 있다.

    “저는 쌍둥이 아빠인데, 한 달에 월급이 190만원입니다. 세금 떼고. 일한 지 한 5년 됐습니다. 지금 현재 불법파견 소송 걸어서 190만원 받지만, 그 전에는 160만원, 150만원 받았습니다. 노동조합이 없었을 때는 130만원이었죠.”

    그는 말을 이어간다. “고리는 식당 가격에 차이가 난다지만, 우리는 아예 구내식당에 못 들어가요. 한수원 자기들은 구내식당 이용하지요. (저희도) 구내식당 이용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상가번영회에서 반발했죠. 돈 많은 자기들이 나가서 먹어야지. 지금 구내식당은 3,700원, 나가서 먹으면 최하 6,000원이에요.”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영광 핵발전소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한 명은 한전KPS노동자이고, 다른 이는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이들은 8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였다.

    그런데 죽어서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해보상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종국에는 가족들이 합의를 했지만, 이 사건을 담담히 얘기하는 한전KPS 하청 경상정비 노동자들의 얼굴은 자조어린 그늘로 가득했다. 임금이나 처우개선도 중요하지만, 2등 노동자로 낙인이 찍히고, 차별을 받는 과정에서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것이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영광] 큰 도둑, 작은 도둑 : 부식비에서 체육복 지원금까지

    핵발전소의 역사는 ‘비리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핵발전소 부품의 시험성적서 위조, 뇌물공여와 금품수수, 사기와 횡령 등으로 시끌시끌했다. 전형적인 패턴은 핵발전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료와 한수원 직원이 납품업체의 편의 제공을 대가로 금품‧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관련기사)

    그런데 일선에서의 비리문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다음은 영광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언이다.

    “한 번은 회사에서 복지비를 받아 왔다고 해서 체육복을 다 지급했어요. 그 명세서를 보니 한 벌에 20만원. 똑같은 걸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78,000원에 파는 거예요. 어디로 갔을까? 그런 식으로 회사에서 노조하고 돈을 나누어 먹는 거예요.”

    그는 또 다른 사례를 얘기한다. “한 달에 보통 22.5일을 근무하는데, 회사에서 식당에 지급하는 밥 개수는 25일치에요. 그러면 2.5개가 남는데, 이건 노조위원장이 가져가요. 그리고 노조 위원장의 누나가 식당을 운영하고. 어떻게 회사가 먹지도 않은 밥값을 내느냐 말이죠. 한 달에 2백만 원 이상 챙겨가는 거예요. 이 사람이 노조 위원장을 15년째 하고 있어요.” 물론, 모든 노조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패는 자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패의 피해는 직접적으로는 핵발전소 최하층 노동자의 착취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시민안전을 위협한다. 정상적인 노조라면, 부패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핵발전소 비리가 팽배한 가운데, 한수원이나 한전KPS 노조, 혹은 상급노조가 부패와 비리의 감시견 역할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면 어떨까?

    [울진] 무늬뿐인 특수경비 : 생리휴가조차 못 쓰는 특수경비 노동자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가운데,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핵을 이고 사는 굉장히 위험한 곳에서, 특히 원청 직원들과의 임금, 근로조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용역설계가 일관되지 않아 노임단가 적용기준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4년 전에 청원경찰에서 특수경비로 바뀌었다. 특수경비는 일반 아파트랑 다른데, 그 정도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단다. 근무형태는 4주 3교대.

    “핵발전소는 일급 갑호 방호지역입니다. 여기는 유사시에 총까지 휴대하는 고도의 긴장이 요구되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왜 특수경비에 제조업 보통 노임단가를 적용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용역설계의 문제가 또 있는데, 특수경비는 예비인력이 없어요. 여성 특경들이 생휴를 쓸 수 없어요. 대근이 안 되니까. 이건 돈의 문제를 떠나서 인권에 대한 문제죠.”

    한수원, 혹은 한전KPS 용역설계의 다양한 불합리함을 개선해야 하겠지만, 더 구조적인 문제는 핵발전소 최하층 현장의 비리와 카르텔 문제이다.

    “실제 협력업체 대표들, 우리는 ‘원전 새끼마피아’라고 하는데, 비리가 터지고 했던 문제들은 큰 건으로 터졌지만, 협력사 최하 말단까지 한수원, 한전KPS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차려서 다시 들어옵니다. 협력사로. 그런 분들이 퇴직할 때 소장급이나 이런 사람들을 협력사에서 데려갑니다. 계속에서 용역을 따기 위해 영입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로비하다보면, 그런 부분에서 저희들 인건비 부분이 빠져 나간다. 저희는 이렇게 판단하죠.”

    투쟁하는 민주노총, 따듯한 민주노총

    인터뷰 말미에 월성의 청소노동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노조가 사람 살려 놓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했죠. 노조라 카는 것도 모르고 살았잖아요. 평생을. 여그 와서 진짜 노조가 얼마나 절실하고, 우리한테 유익한 건지 진짜 깨달았어요. 권리도 얼마나 올려놓고, 옛날에 인간취급 당했어요? 어디? 근데 이제는 자기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못해요. 그것만 해도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스스로 조직해서, 사측의 불합리한 차별에 맞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저항하고, 작지만 소중한 성과를 내는 모습에서 노동운동의 ‘역할’과 ‘희망’을 떠올렸다.

    그러나, 인터뷰 과정에서 이들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심심치 않게 정규직 노동조합(한수원/한전KPS)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을 내비쳤다. 대부분 정규직 노조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1년에 한 번뿐인 비정규직 노조 총회조차 협조를 받아내지 못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대체근무 문제로), 일선 현장에서 2등 노동자 취급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노조에 대해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

    노동탄압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들어주는 역할, 함께하는 ‘공감’이 중요하다. 투쟁하는 노동조합도 좋지만, 착취 받고, 차별 받는 이들 최하층 노동자들에게 친정 오빠나 언니 같은 ‘따듯한’ 노동조합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필자소개
    에너지정치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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