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우리는 고기 없이 살 수 없나?"
    [서평] 『고기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카렌 두베 저/ 프로네시스)
        2012년 07월 21일 12:2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연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피해를 가장 적게 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야.” -257쪽

    여기 유쾌한 채식기(菜食記)가 있다. 독일의 유명 작가 카렌 두베가 1년간 ‘더 바람직한 식단’을 몸소 실천하며 써낸 <고기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가 그것이다. 역제가 좀 긴데, 사실 이 두 문장이 책의 핵심을 찌른다. 인간은 정말 고기 없인 살 수 없는 걸까, 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싶은 걸까?

    두베는 유기농 식품만 먹는 데서 시작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 동물성 식재료를 완전히 포기하는 비건 채식, 그것도 모자라 식물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면서 수확 가능한 과일 등만 먹는 과식(fruitarianism)까지 시도한다.

    말만 들으면 원래부터 엄청난 의지를 지닌 사람이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녀도 우리 같은 모태 육식주의자.

    바삭한 그릴 치킨에 입맛을 다시고 초콜릿과 코카콜라가 없으면 글을 한 줄도 못 쓴다고 주장하면서도 개, 고양이, 당나귀, 닭 등을 키우는 동물 애호가였다.

    이처럼 책머리에 나타난 두베의 모순된 가치관은 나의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영접하는 ‘고기느님’이 잔혹하게 사육되고 살해된 동물의 사체라는 걸 머리론 알고 가끔 고기 좀 덜 먹어야겠단 생각도 하지만, 동시에 고기는 절대 진리요 선이 아닌가. 고작 축산 현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 정도에야 양심은 작동하고 그마저도 돌아서면 끝이다.

    그런데 어느 세밑, 두베는 통닭구이를 사려다 동거인 케어스틴에게 잔소리를 듣곤 갑자기 자신이 습관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 얼마나 잔혹한 산업에 가담해왔는지 깨닫는다.

    끔찍한 대량 사육장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동물을 착취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값싸게 고기와 우유, 달걀을 사먹을 수 있길 바라는 것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그날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다음 한 해 동안 각각 두 달씩 유기농 식품점 손님, 베지테리언, 비건, 프루테리언으로 살고 그 과정을 책으로 쓴다는 계획을 세운다.

    두베가 그렇게 선언하자 편집자, 주치의, 심지어는 케어스틴까지도 그녀가 건강을 위해 식습관을 바꾸기로 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두베의 진정한 목적은 기존의 무책임한 식습관에서 벗어나고 ‘가혹함이 합법적 영역에서 인정되는’ 현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꿋꿋하게 식생활 혁명을 밀고 나가면서도 두베와 그녀의 동거인은 내면적 갈등과 혼란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두베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몇몇 대용식들의 맛이 정말 형편없다고 평가한다. 케어스틴은 차에 넣을 크림을 포기하느라 아침마다 우울하다.

    학대당하는 동물들을 떠올리려 노력해도 가끔은 진한 고다치즈를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고 엄마가 해주시는 미트볼을 거부하기란 너무나 괴롭다. 두베는 이제껏 양심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던 부분에서 새삼 양심을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한다. 식단을 엄격하게 통제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가죽구두, 오리털 이불과 베개, 동물 박제를 다 치워버리고 승마도 그만둔다.

    밤에 양계장에 숨어들어가서 닭을 훔쳐 나오는 동물해방협회의 급진 행동에 가담하는가 하면 사육 환경 개선에 관한 법률 제정, 개정안을 달달 외워 농업부의 고위 관료인 형부와 설전을 벌인다.

    친구의 바비큐 그릴에 육식 반대 스티커를 붙이고 채식주의 운동을 이끄는 이들과 만나 생각을 나눈다. 두베는 이런 일들을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진실의 알약을 삼킨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진실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책임 없이, 비난도 받지 않고 욕망만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진실이라고 반드시 이롭지만은 않고, 선택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빨간 진실의 알약이다.

    시종일관 무거운 즐거움을 잃지 않는 이 책은 결국 두 개의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정말로 고기 없이 살 수 없는가? 과연 우리에게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면서까지 혀끝의 즐거움을 최대로 추구할 권리가 있는가?

    카렌 두베는 온 몸을 던져 둘 모두에 Nein! (아니!) 라고 대답한다. 사실 이 문답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적극 권장하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더 큰 파이에 대한 회의와 성찰에 맞닿아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Because we can) 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는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우리는 다시금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책의 끝에서 그녀는 프루테리언으로 남기로 결심하지는 않으며, 독자에게 자신이 세운 도덕적 기준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두베가 우리에게 남기는 과제는 현재의 무책임한 식습관이 우리가 능동적으로 고민한 후에 선택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이기주의와 양심의 타협점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지점이 그곳이 아님은 분명하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