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예노동 강제하는
    고용허가제 11년 규탄 높아
    다치고 폭언 폭행 당해도 사업장 변경 못해
        2015년 08월 17일 04: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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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가델 씨는 근무 도중 허리를 다쳤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업주는 가델 씨의 요구를 무시하고 3개월이나 일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가델 씨는 전에 없던 허리디스크에 걸렸다. 건강한 몸으로 한국에 와서는 허리디스크라는 병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사업장을 이동하기 위해선 산재 증명의 책임을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2. 또 다른 이주노동자는 60kg이 넘는 쇳덩이를 나르다가 산재를 당했다. 그가 일하는 사업장에는 사람이 들기 어려운 부품을 나르는 지게차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사람이 옮기는 것이 빠르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에게 시켰다. 그는 사업주의 지시대로 쇳덩이를 나르다가 다쳤다. 그러자 사업주는 경찰까지 불러 그를 사업장에서 쫓아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이동할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겪은 이주노동자들의 실제 경험담이다.

    2004년 8월 17일 본격 실시된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사업장 이동 제한은 이주노동자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물론 임금체불이나 폭언, 폭행 등 인권침해까지 감내하게 했다.

    UN 인종차별특별보고관, ILO(국제노동기구) 또한 이미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 강제노동을 강요한다는 등의 이유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모범적인 ‘이주 관리 시스템’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인권연대,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17일 오전 11시 이주노조가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11년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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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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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고용허가제는 지난 11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을 고통과 무권리 상태로 내몰아왔다”며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즉각 폐지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고용허가제를 처음부터 반대해왔다. 오늘로 11년 째다. 그동안에 이 제도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강제로 일해야 했고 다쳐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고 노동3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주지 않는다. 사업주들이 시키는 대로, 아무런 불만 없이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도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며 “우리는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원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제정된 고용허가제는 2013년 도입 시점부터 문제가 많았다. 2003년 8월 16일 법이 공포된 이후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강제추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체류한 지 4년 미만인 미등록 체류자에게만 1년 정도 체류기간 연장을 허용했고, 4년 이상 체류자는 강제추방의 대상이 됐다. 이를 비관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랐고 이주노동자들의 농성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삼열 운영위원은 “고용허가제 제정 11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가 고용허가제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프다”며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3권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왜 이주노조는 노조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고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받았음에도 설립 필증 교부는 반려당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 운영위원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이주노동자 처우를 퇴행시켰고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고용허가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하고, 인종차별특별보고관도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구체적으로 고용허가제 문제점 지적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실태”라고 비판했다.

    고용허가제 도입 초기 3년이었던 체류기간을 4년 10개월로 연장했고 일부는 최장 9년 8개월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값싼 이주노동력을 찾는 사용자들의 편의와 이익을 대변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부여당에선 청년 일자리 부족의 탓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주공동행동 임준형 활동가는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한다는 정부가 하는 짓이 뭔가”며 “임금피크제로 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해 저질 일자리를 늘이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국인 일자리 위해서 이주노동자 제약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3D 업종, 기피 업종의 인력난을 채우기 위해 들여온 것이 이주노동자였다. 이러한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이주노동자를 제약해서 일자리 늘리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저질 일자리 늘리겠다는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이어 “기업을 뒷받침해주려고 제도 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야 말로 일자리 부족에 책임이 있다”며 “규제 완화 속에서 경제 위기가 왔고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 잃었다. 내국인 노동자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주공동행동, 이주노조, 외국이주·노동운동협의회, 경기이주공대위, 민주노총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인종차별 철폐!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폐지!’를 요구하며 830 이주노동자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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