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한 노비의 삶
    영달과 몰락의 롤러코스트
    [책소개]≪정막개≫(최명근/ 기파랑)
        2015년 08월 15일 0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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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막개(鄭莫介)는 누구인가?

    의정부의 관노(官奴)이다. 1513년(중종 8) 전 공조판서 박영문(朴永文)과 전 병조판서 신윤무(辛允武)의 집을 자주 드나들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이 반란을 일으켜 영산군 전(寧山君 恮:성종의 열세 째 아들)을 추대하려고 한다고 고변(告變)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두 사람과 그 아들들이 처형되고, 그는 박영문의 가재(家財)·전택(田宅)·노비를 상으로 받고 상호군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지평 권벌(權橃)이 사실을 알고도 늦게 고변한 것과, 모리(謀利)하는 자가 영귀(榮貴)를 좇아 요행으로 공을 이루게 하면 훗날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상소하여 직책과 상을 박탈당하였다.

    성품이 원래 교활하여 사람들이 싫어하였는데, 이 일이 있은 후 더욱 천하게 여겼다. 그가 붉은 띠를 띤 조복(朝服)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고변한 정막개야, 붉은 띠가 가소롭구나.”하고 놀려댔다. 그는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다가 결국 굶어죽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막개 

    정막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여는 작품

    베일에 가린 정체불명(?)의 신비한 소설가 최명근(崔明根)은 위 사실(史實)에 나오는 짧은 몇 줄의 단서를 근거로 삼아, 200자 원고지 1천630매 분량의 장편소설을 엮어냈다. 시종일관 독자들을 긴장시키면서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왕조 시절 최하위 노비의 인생 유전(流轉)을 통해, 무지막지한 권모술수와 파렴치한 인간성 파멸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데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작가가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조선시대에 궁궐과 사가(私家)에서 쓰던 갖가지 용어를 수시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가령 ‘급수비(汲水婢)’는 물 긷는 노비를 가리켰다.

    이와 더불어 묻혀 있는 감칠맛 나는 순 우리말을 종횡무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예컨대 ‘차집’은 반가(班家)에서 음식 장만 등을 맡는 여자로, 일반 하녀보다 급이 높았다. 한자의 ‘찬모(饌母)’와 흡사하다. 이처럼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망외(望外)의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저명 문인들의 격찬

    이 작품을 심사했던 작가 김동리(金東里)는 “연산군 당시의 중종반정을 중심으로 이에 가담했던 성희안, 신윤무를 에워싼 노비들, 특히 정막개를 주인공으로 한 이색적인 역사소설이다. 정막개가 동료 노비의 출세를 보고, 무신(武臣) 신윤무에 붙어 그들 무신의 불평을 눈치 채고, 고변에 의한 출세와 애인 감정에 대한 야비한 태도 등 그야말로 영욕부침(榮辱浮沈), 세속 인심 등 참으로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내가 본 한국의 어느 역사소설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평했다.

    또 박완서(朴婉緖)는 “(정막개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배신하고, 무고하고, 마침내 신분을 뛰어 넘어 영달하고, 급격히 몰락해가는 과정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천격스러운 인간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고 감탄했다.

    이번에 책 출간에 맞춰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선학(金善鶴)은 “『정막개』를 읽으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설의 재미와 그 흡인력에 빨려 들어가 단숨에 독파했다. 아, 이런 작가도 한국에 있었구나!”하고 감탄했다.

    저자의 불우한 삶도 새롭게 조명받아

    ‘정막개’의 저자 최명근(1936~1996)은 평생을 필명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독특한 사연의 인물이다. 이번 소설 ‘정막개’가 유작이지만 유일하게 그의 본명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최명근은 1955년 대학 1학년 때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 10월호에 ‘후천화일점(後天話一點)’으로 등단했다. 최희성이라는 필름으로 출품했다

    첫 필명은 그의 선택으로 지었지만, 그 후에는 원치 않아도 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10남매의 첫째로 자란 그가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병역기피자가 되었던 것이다.

    1966년 한국일보 주최 추리소설 공모에 ‘흙바람’이 당선됐을 때는 동생 이름 최정협을 필명으로 썼다. 그 이후 한국일보 ‘주간여성’ 기자로 16년 동안 최정협을 필명으로 활동했다.

    1986년 삼성문화재단 소설 공모에는 이순신이 자살을 했다는 야사(野史)를 토대로 쓴 ‘자결고’가 당선됐다. 당시 필명은 최명진이었다.

    ‘정막개’는 최씨가 1982년 경향신문 주최 장편 공모에 동생 최민조 이름으로 낸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 김동리는 ’정막개‘를 극찬했지만 이 작품이 자신이 등단작을 추천한 최씨의 작품인 것 몰랐다.

    ‘정막개’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최씨 동생 정협씨가 숨지기 전 여동생에게 넘겼고 여동생은 남편인 김재환(69) 한림대 영문과 명예교수에게 이 원고를 줬다. 김 교수가 주변의 도움으로 최씨의 본명으로 ‘정막개’를 출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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