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에 좌파로 산다는 것은?
    [책소개] 《파리의 생활 좌파들》(목수정/ 생각정원)
        2015년 08월 08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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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이른바 진보 정당사의 ‘리즈 시절’로 불리던 시기, 민주노동당에서 당직을 경험했다. 격렬하게 좌파 활동을 하던 한국 좌파들은, 좌파로서 삶이 격렬했던 만큼이나 어느 한순간 좌파 되기를 내려놓고 다른 길을 떠나기도 했다. 마치 각자의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할당량의 좌파 노릇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2008년 2월 결국 당이 쪼개진 후 파리로 돌아간 저자는 묻기 시작했다.

    깃발이 사라져도, 동지가 내 곁에 없어도, 흰머리 노파가 될 때까지 좌파의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며 살 수 없을까? 프랑스로 돌아간 저자가 이 의문을 프랑스 사회에 투사했을 때, 그 사회에서는 조금 다른 답들이 튀어나왔다.

    모든 시대의 유행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듯한 프랑스 사회의 다원적 특성처럼, 그곳에는 저마다 다른 오색찬란한 좌파가 공존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딱히 속하지 않고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람시 같은 ‘교주’를 특별히 섬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체화된 좌파적 태도를 가진 프랑스인들. 그들은 목숨 바쳐 좌파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희생 따위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걸치기 편한 옷처럼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좌파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을 ‘생활 좌파’라 불렀다.

    저자는 15명의 생활 좌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좌파 활동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으며 동지를 어떻게 구하는지, 선동과 회유에는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뿐 아니라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공산당원, 중국인 부모를 둔 타히티 태생의 극좌 정당 활동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사유로 망명한 한국인 등이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시선이 강제하는 삶을 거부한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신념과 기호와 결단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자본과 획일화와 가부장제의 자장에서부터 멀어지려 했고, 대신 그 자리에 자유와 독립, 유희, 생명과 즐거움을 채워 넣으며 살고 있었다.

    《파리의 생활 좌파들》의 첫 번째 챕터 ‘질문의 노마디즘을 멈추지 마라’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지, 문화는 과연 누구의 것인지 등의 질문에 대한 인터뷰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두 번째 챕터 ‘익숙한 것을 버리는 순간 보이는 새로운 것들’에는 낯선 곳에 시선을 던지는 좌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 좌파는 엄숙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21세의 반자본주의신당 당원 솔렌 페랑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또 소비만 하는 삶을 거부하고자 하는 좌파 카헬 자닉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봄직하다.

    세 번째 챕터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에는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좌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좌파적 삶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연대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챕터를 펼쳐보자.

    네 번째 챕터 ‘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 스펙트럼을 확대하라’에는 끊임없이 경계를 넓히려 하는 좌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을 극좌파로 규정하는 중앙정부 관료, 반라 시위를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 활동가 등의 목소리를 들으며 좌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 보자.

    저자는 이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좌파 활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몇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먼저 86세의 좌파 테레즈 클레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랑’이며 그것은 좌파의 첫 번째 사명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좌파의 모습과도 이어진다.

    또 솔렌 페랑도의 말처럼 좌파는 세상의 모든 익숙한 것들을 거부해야 한다. 이는 다시 질문의 노마드로 사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테레즈 클레르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그 밖에도 목수정이 15명의 인터뷰이들로부터 건네받은 ‘지혜의 구슬들’이 《파리의 생활 좌파들》에 담겨 있다. 이제는 그 지혜의 구슬들을 독자들이 건네받을 차례다.

    생활좌파

    좌파는 고리타분하다?

    좌파는 어떤 사람들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대’라는 단어다. 그들은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수위 아저씨 토마 페루아는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연대의 힘을 믿고 있는 가장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좌파다. 은퇴를 앞둔 그는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학부모들이 구제에 나섰다.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틀 만에 500명의 학부모들 가운데 45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그리고 33명의 학부모가 구청장에게 청원서를 보냈다. 뜨거운 연대의 손길을 몸소 느낀 토마 페루아는 좌파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좌파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낀 이도 있다. 칸영화제의 커미셔너이자 갈리마르출판사 소속의 작가이기도 한 자크 제르베르는 프랑스 공산당이 더 이상 자기 개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교조화되었다고 느꼈을 때 당을 떠났다. 그리고 ‘개인적 공산주의자’로 살기 시작했다.

    혁명적 방식으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하는 실천으로부터도 세상은 바뀌어간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통찰 속에서 그가 그려낸 좌파의 모습은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예술과 문화를 통해 자신을 계속 일깨우고 자극하는 사람들이다.

    한편 여성 노인들의 공동체 ‘바바야가의 집’을 설립한 테레즈 클레르에게 좌파란 질문의 노마드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85세의 나이로 돌아기시기까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누리게 하려고 희생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순간, 테레즈 클레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한숨에 스스로 놀란 그녀는 노인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주거 공간을 기획해냈다. 절실한 필요가 기적적인 상상력을 이끌어낸 것이다. 테레즈 클레르는 삶 속에서 토론하고 선언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온전히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얻을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우리를 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해방의 열쇠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반라의 몸 위에 구호를 적고 머리에는 화관을 쓴 채 가부장제에 포섭된 세상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그룹인 ‘페멘(FEMEN)’의 핵심 멤버 폴린 일리에는 좌파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이들은 ‘섹스 산업, 독재, 종교의 교조주의’를 가부장주의가 발현시킨 3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예컨대 교회 종탑에 올라가 십자가를 잘라내기도 하고, 이슬람 국가의 법원 앞에서 반라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며, 의회에 진출한 프랑스 극우 정당의 당사 앞에서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파시즘이 멀리 있지 않음을 만천하에 경고하기도 한다.

    그들은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만큼 가장 많은 수난을 겪기도 한다. 끊임없는 중상모략과 살해 협박 등이 바로 그것. 하지만 폴린 일리에는 페멘의 멤버들이 함께하는 행동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묶어준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많은 좌파들이 페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만, 《파리의 생활 좌파들》의 저자인 목수정은 말한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시스템에 무력하게 투항하지 않고 사자처럼 당당하게 포효하는 이 여자들은 옳다. (…) 이 아름다운 마녀들을 지지한다.”

    국외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모습

    국외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펴보며 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독해 방법일 것이다.

    독립 언론 ‘모두를 위한 루브르’의 편집장 베르나르 아스크노프는 유병언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한 얼굴 없는 사진작가 ‘아해(AHEA)’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인물이다. 그가 이 사내의 실체를 밝힌 뒤에도 프랑스 언론은 한 줄의 동조 기사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아해의 후원금을 받기로 하여 세월호 참사 뒤에도 전시회를 취소하지 않고 있는 프랑스 문화기관이 더 있다는 것을 연이어 밝혀내자 프랑스 언론들도 그의 소식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아스크노프는 이렇게 말한다.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간 아이들이 300여 명이나 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도 10명이나 있다. 세월호 사건은 진행 중이며, 아해를 둘러싼 의혹도 밝혀지지 않았다. 나에게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사유로 프랑스에서 난민 자격을 획득한 첫 번째 한국인인 이예다는 한국이 슬픔을 주는 사회라고 느낀다. 한미 FTA, 광우병 쇠고기, 이주노동자, 용산참사 등을 계기로 한 집회에 참가하여 시위를 하면서, 아무리 사람들이 죽어도 바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꼭 군대 문제가 아니었더라도 아마 한국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한국에서 만난 선생님들이라고 말하는 이예다. 그의 인생에 방향을 제시하고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해준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프랑스-한국친선협회의 부회장인 브누아 켄더를 처음 만난 것은 파리에서 열린 위안부 수요 집회에서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밀도 있는 발언으로 저자를 전율하게 만든 그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파리 방문 소식을 듣고 준비한 집회에 참가하여 발언을 해달라는 저자의 부탁은 거절했다. “당신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브누아 켄더는 국정원의 ‘밀착 방어’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가하는 위협이 그로 하여금 이 일이 유의미한 것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한다. 국정원의 위협이 오히려 활동의 동력이 된 셈이다.

    저자와 함께 “자발적 복종”(엔티엔 드 라 보에시 저)을 번역하기도 한 심영길은 ‘반공은 모든 독재 정권이 시작하는 징후’라고 말하며 작금의 한국의 현실을 우려한다. “남미의 군사정권이 반공을 내걸면서 지식인을 탄압했다. 히틀러도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했고, 스페인의 프랑코도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반공을 해야만 미국의 보호를 받는 메커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미, 아프리카, 아랍 등지에서 일어나는 더 모순되고 더 불의하며 더 심각한 자본주의의 수탈을 보면서 한국에서 진행되는 불의나 한국 정부의 언행 불일치에 관용을 갖게 된 면이 있다고도 말하지만, 한국은 강력한 모국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의 한가운데를 질주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낙관도 가지고 있다.

    내가 속한 국경을 벗어나는 일은 오랜 관성에 찬물을 확 끼얹고, 세상을 인지하는 새로운 감각을 획득하는 일인 동시에, 내 몸과 의식이 담긴 세상을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프롤로그 중에서

    내 앞에 가로놓인 국경을 다시 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그 세계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새로 디딘 땅 끝에서 낯선 자극들이 일깨워줄 내 안의 간절한 욕망들을 더듬어내고, 확장된 나를 통해 더 많이 관용하고, 더 뜨겁게 포용하기 위해서다. -“월경독서” 프롤로그 중에

    전작에서 본 것처럼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화두는 ‘월경(越境)’이었다. 저자에게 월경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일인 동시에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금기의 벽을 부수는 자기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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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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