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 좋아해도 됩니까?
    [왼쪽에서 본 F1] '페트롤헤드'
        2015년 08월 07일 0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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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레디앙은 윤재수씨의 <왼쪽에서 본 F1>이라는 이름의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가장 자본주의적 스포츠의 하나인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있는 F1에 관해, 조금은 왼쪽에서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사람, 삶,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가벼운 이야기일 수도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직은 조금 낯선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귀를 기울여 볼만한 이야기이다. 관심을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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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좋아해도 괜찮은 겁니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의 취미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겠습니까만, 여전히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F1은 참 매력적인스포츠고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아이템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스포츠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치, 경제, 역사를 아우르는 배경이 그렇고, 근본적으로 너무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F1을 좋아한다면 극단적으로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당하니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 셈이죠.

    영어권에는 ‘페트롤헤드( petrolhead )’란 말이 있습니다. 머리에 기름(석유)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을 조금은 낮춰, 혹은 가볍게 부르는 말입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동차를 너무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 또는 모터스포츠에 광적으로 심취한 사람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를 가리킵니다. 딱히 남의 기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의 자동차광을 페트롤헤드라고 부를 때는 조금이나마 낮춰 부르거나 비하하는 뉘앙스가 없지 않습니다.

    자동차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에서는 NASCAR로 대표되는 다양한 모터스포츠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해리스 폴이라는 기관이 조사한 미국인들의 스포츠 기호 설문에서는 프로 미식축구, 야구, 대학 미식축구에 이어 모터스포츠가 네 번째로 많은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로 꼽혔습니다. 소위 ‘자동차 경주’를 프로농구보다 더 좋아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자동차 경주의 인기라는 것이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따라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학력자와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모터스포츠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편이지만, 저학력자나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서는 훨씬 더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좀 배웠다는 분들이나 가진 게 많은 분들에게는 모터스포츠가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모터스포츠란 것은 호불호가 갈리는 종목임이 분명합니다. 좋아한다는 것이 고민 고민을 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봐서 결정될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좋아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뒤에도 마음속에 꺼림칙한 구석이 남습니다.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있는 F1이라면 더 더욱 그렇죠.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드라이버)들이 펼치는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감상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정치경제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누군가는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러는 것이라 깎아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F1은 현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입니다. 돈이 많이 들고 적게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실제로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스포츠의 배경이나 시스템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회사가 나름의 능력으로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경쟁의 시작인데, 그 능력의 상당 부분은 얼마나 많은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각 팀의 능력은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계속돼 고착된 팀 간의 서열이 변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도전을 계속하고, 가끔은 그런 신분 상승이 가능할 것 같은 허상을 믿게 된다는 것도 왠지 현실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F1을 다룬 영화 '러시'의 한 장면

    F1을 다룬 영화 ‘러시’의 한 장면

    F1 경기 모습 자료사진

    F1 경기 모습 자료사진

    F1의 실체는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주식회사’입니다. 무슨 스포츠 협회나 기구가 아니라 회사입니다. F1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움직이고, 필연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착취가 일어납니다.

    F1 팀들은 빚으로 빚을 막으며 운영난에 허덕이고, 각 팀의 노동자들은 때로 엄청난 임금 체납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물론 발을 담그고 있는 대부분의 페트롤헤드들이 자신들의 꿈이자 이상향인 F1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만약 원대한 꿈이나 F1 자체에 대한 애정 없이 전장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쯤 F1에는 큰 사달이 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런 사정을 다 알고 나서 F1을 좋아할 때는 한 번쯤 주춤하게 됩니다. 특히 사고가 조금이나마 왼편으로 치우친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라면 더 그렇죠. 안 그래도 현실자본주의 체제에 온갖 불만이 가득한데,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를 좋아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사촌을 죽인 몬태규 가의 망나니와 사랑에 빠진 철부지 소녀와 다를 바가 없네요.

    게다가 F1이라는 스포츠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쥴스 비앙키라는 프랑스의 25세 청년이 세상을 떠났는데, F1 레이스 중 드라이버가 사고를 당하고 결국 숨을 거둔 것은 21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미 서른 명 이상의 F1 드라이버가 경기 중 목숨을 잃었고, 테스트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그 숫자는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런 죽음을 계속 목격하면서 어떤 스포츠를 계속 좋아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선 견디기 힘든 시련입니다.

    물론 F1이 사람의 목숨을 쉽게 여기는 스포츠란 얘기는 아닙니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다방면의 연구와 시스템 개발을 통해 더욱 안전한 주행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이런 노력은 (다른 기술적인 성과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에게 판매되는 자동차와 도로의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어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고 해서, F1에서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기술발전이 없더라도 하나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테니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F1을 좋아한다는 것은 충분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필자는 F1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5년 전부터 쓰고 있는 글이나 방송 활동이 모두 F1과 연관된 것들이었고, 이제는 인간관계마저 F1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말았네요.

    우리나라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리기 전에도 F1을 좋아했지만, 전라남도 영암에서의 4년간의 이벤트가 스치듯 지나간 뒤에는 어쩐지 취미가 일이 된 느낌입니다. 이제는 F1을 좋아해도 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가 많은 스포츠와 관련된 것을 업으로 삼아도 되는지 종종 자문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F1을 좋아하든 무엇을 좋아하든, 좋고 나쁨을 깊이 따져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겁니다.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어떤 성을 가진 상대와 결혼하든 그 사람의 자유라는 다양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는 시대에, 스포츠에 대한 기호의 다양성 정도라면 당연히 존중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때로 노동운동에 몸담은 F1 팬을 만나 재밌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건 편견이 아닐까요? 물론 저 역시 그런 편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긴 합니다만.

    한 발 더 나아가 F1은 누군가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떻든 관계없이 좋아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일단 누구나 자동차는 타고 다니니까요. 자기 차가 아니라도 버스든 택시든 가끔은 탈 일이 생기게 마련이고, 도시에서는 집 앞을 조금만 벗어나도 보이는 게 도로를 가득 메운 많은 자동차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동차 문화의 꽃인 모터스포츠는 충분히 누구에게나 소개해줄 만한 취미인 것 같습니다.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있는 F1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죠.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나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숫자만 해도 수십만 명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좋아하고 즐기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대로 F1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자동차를 잘 알게 될 것이고, 더 재밌게 자동차를 탈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공부로 배우라면 누구나 싫어하지만, 재미있는 놀이로 다가가면 복잡한 공식도 쉽게 외워버리곤 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배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위급한 상황에서 나와 가족의 생명을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면 충분히 배워볼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합니다. 공부가 아니라 재미있는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으로 말이죠. F1의 살벌한 스피드와 여러 가지 사고 상황은 일반 도로운전에서의 안전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고, 공공 도로에서는 철저히 안전 운전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100% 이런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스포츠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익적인 효과도 일부 존재하기는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지 말고 그냥 스포츠로서도 F1은 매력적입니다. 빠른 것들은 누구나 좋아하니까요. 우리나라의 택시 기사님들처럼 차를 빠르게 모는 분들도 찾기 힘들고, 우리나라 운전자 대부분이 도로에서 남보다 앞서가려고 무리를 합니다. 본능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빠르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현존하는 기술로 여러 가지 제한 속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자동차들의 경쟁은 분명 매력적일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F1은 충분히 만나볼 만한 연애 상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F1, 좋아해도 됩니까?”

    지금 다시 질문을 받는다면 그런 것은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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