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의 기술, 평화의 기술
    [그림책 이야기] 『까불지 마!』(강무홍 글. 조원희 그림)/ 논장
        2015년 08월 05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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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까불지 마!’ 표지 그림은 ‘까불고 있네!’

    『까불지 마!』의 표지는 당당하고 코믹합니다. 꼬마가 검정색 말을 타고 고삐를 힘차게 당기며 의기양양하게 ‘앞으로!’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꼬마 머리 위의 글자는 ‘앞으로!’가 아니라 ‘까불지 마!’입니다.

    게다가 꼬마가 머리에 쓴 투구와 의복은 로마 군인의 것인데 창은 중세 기사의 것입니다. 뭔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아니면 조원희 작가가 용맹하다고 생각하는 군인의 모습이 로마 군인과 중세 기사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일까요?

    무엇보다 꼬마가 고삐를 당기고 검정색 말이 앞발을 높이 든, 이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합니다. 바로 저와 비슷한 세대라면 누구나 기억할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의 표지입니다. 그 그림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란 건 완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백마를 흑마로 바꾸고, 나폴레옹을 꼬마 장군으로 바꾸고, 말이 달려 나가는 방향을 바꾼, 『까불지 마!』의 표지는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완벽하게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경에는 생베르나르 고개의 풍경 대신 휘황찬란한 조명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 위에 앉은 꼬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네요. 덩달아 말도 웃고 있습니다. 또 꼬마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입을 헤 벌리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말이 ‘까불지 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완전 웃깁니다! 조원희 작가는 이 장면을 그리면서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집으로 가는 길

    책장을 넘기면 면지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표지에 등장했던 꼬마 장군은 온데간데없고 책가방을 둘러매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여린 꼬마가 나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이것은 꼬마 학생이 꼬마 장군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인가?’

    당혹감을 접고 면지를 자세히 보니 면지의 그림은 꼬마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린, 일종의 지도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가로등을 지나면 개 한 마리가 나옵니다. 두 번째 가로등을 지나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꼬마가 무서워하거나 꼬마를 괴롭히는 존재들이 곳곳에서 기다리는 지도입니다.

    이 그림을 코미디라고 생각하면 그냥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길 곳곳에서 저를 기다리던 ‘무서운 형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이루리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지금도 무섭습니다. 무엇보다 성장기에 이런 과정을 겪을 꼬마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짠했습니다.

    부디 주인공 꼬마가 무서움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이 신나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안전하면 좋겠습니다. 어른 이루리는 마음을 조이며 책장을 넘깁니다.

    까불지 마

    싸움의 기술

    마침내 속표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인공 꼬마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가는 그림입니다. 아마도 집으로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시 책장을 펼치자 울고 있는 주인공 꼬마에게 신문을 보던 엄마가 소리를 지릅니다.

    “이 바보야. 그럴 땐 ‘까불지 마!’하고 소리쳐야지.”

    엄마는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합니다. 무섭게 노려보라고, 그리고 ‘까불지 마!’라고 소리치라고.

    이제 주인공 꼬마는 두 가지 싸움의 기술을 엄마로부터 배웠습니다. 하나는 ‘무섭게 노려보기’이고 또 하나는 ‘까불지 마!’입니다. 과연 주인공 꼬마는 더 이상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서운 동네 개와 고양이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평화의 기술

    삐딱하게 보자면 이 책은 싸움에 관한 책입니다. 어떻게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져갈 수 있는지 그 단서를 찾을 수 있기도 합니다. 내 ‘아이’의 울음 때문에 더욱 분노하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도 어른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울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울며 집에 온 동생에게 고등학교 3학년인 형은 ‘싸움의 기술’과 ‘공포 분위기 조성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중학교 2학년 어느 날까지 저는 ‘싸움의 기술’과 ‘공포 분위기 조성 방법’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썼습니다. 폭력을 쓰는 동안 저에게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저는 폭력이 만든 고독하고 거짓된 평화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감옥에 갇힌 줄도 몰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형이 권한 책들을 보며 스스로 폭력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함과 평등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우리 형이 조금만 더 성숙했으면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진짜 ‘평화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시간은 제법 걸렸지만 제게 ‘평화의 기술’을 알려준 사람도 형입니다. 제게 책을 권한 사람이니까요.

    한 사람의 마음속에

    한 사람의 마음속에 겁쟁이도 있고 용감한 이도 있습니다. 정의로운 이도 있고 범죄자도 있습니다. 평화도 있고 전쟁도 있습니다.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재미있게 놀자!’도 있고 ‘까불지 마!’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 아이가 울면서 집에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평화의 기술’을 가르치고 싶나요? 아니면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고 싶나요? 오랜만에 저를 상념의 바다에 빠뜨린 그림책, 『까불지 마!』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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