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자유주의의 민낯
        2015년 08월 04일 1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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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약 1주일 남짓한 체류 끝에 내일 서울을 떠나려고 합니다. 이 행사 저 행사에 정신없이 끌려다녀온, 다소 다급하고 여유 없는 임시귀국이었지만, 그래도 일기에 적을 만한 몇 가지 인상들을 서울 도심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제가 서울에서 살았던 1997-2000년간의 시기와 비교하자면 가시적으로 영세자본의 도살(몰락)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한 자본 독과점화의 추세 그대로인데, 서울이라는 준주변부형 신자유주의 국가의 수도에서는 이 과정의 속도가 빠르고 거의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합니다.

    피맛골

    피맛골의 모습

    제가 15년전까지 이 도시에서 살았을 때에 주말이면 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하고, 살 것을 사고 그 다음에 그 근방의 피맛골로 들려 빈때떡이나 낙지를 먹곤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 피맛골 대신에 지금 세워진 것은 영혼이 없는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들이죠.

    그 재개발 뒤에 있는 대자본이 그 마천루의 비싼 임대료를 챙길 것이고, 거기에서 상가를 임대하는 것은 대개 독립적 영세 식당은 아니고 체인점들입니다.

    그러니까 영세 사업가와 그 가족이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체인점 주주 (대자본) – 개별 매장 사장 (중간 규모의 자본) – 알바생 (초과 착취가 가능한 불안로동자)이 들어온 것입니다. 전통적인 영세업자들을, 초현대적인 신자유주의적 대자본-불안정노동의 콤비가 밀어냅니다.

    둘째, “사회”의 위기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신권위주의의 광무 속에서는 권력/자본에 대항하려는 이들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는 듯한 인상이죠.

    진보정당들이 결집을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반격을 준비한다고 자긍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노동의 불안정화나 영세자본의 도살, 전세 대란, 서민들의 생계 위기를 어떻게 구제할 만한 정치력이라고 애당초부터 없는 그들로서는 근로대중들에게 호소한다는 게 지난한 과제입니다.

    더군다나 결집이 이루어질 경우 아마도 우파 사민주의자들이 “진보”의 대표선수가 될 것이고, 이미 각종 리버럴들과 유착돼온 그들을 민중이 과연 “민주당 제2중대” 이상으로 볼 수 있으려나 싶기도 합니다.

    정규직 노조들은 여전히 많은 경우 보수적 모드지만, 비정규직 노조들의 정말로 피나는, 계속해서 열사들이 나오는 투쟁은 아직까지도 사회적 고립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집중 공격을 받아온 전교조는 상당히 약화된 모습을 보이며, 시민사회 (각종의 비정부 기구 등)의 일부는 신권위주의 국가에 예속됐으며 일부는 재정적 결핍 등으로 거의 고사를 당해갑니다. 신자유주의와 신권위주의는 그 대항자들을 계속해서 압살하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닐 듯합니다.

    셋째, 자본 국제화의 일장월취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육안으로 봐도 각종 시장과 점포, 성형외과 등 서비스업체(?)들의 “큰 손” 고객은 중화권 (중국+대만, 싱가포르, 동남아 화교 중상층 등등) 출신의 방문객들입니다.

    제가 지금 숙박하는 충무로 일대의 수많은 신축 호텔들은 거의 다 중국 고객들로 가득 차 있으며, 중국어는 이제 장사의 주된 언어로 변해갑니다. 한국 내부 시장과 중국 사이의 매우 다면적인 유기적 연결은 아마도 거의 숙명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지금 과잉중복투자와 주식/부동산 버블, 그리고 이윤률 저하의 위기로 빠져들어가는 지금 같으면 한국 자본주의의 이 “차이나 커넥션”은 어쩌면 커다란 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넷째, 한국 지배자들의 대외적 타자관의 위계 서열성이 어쩌면 더 심화됐으면 심화됐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국 “주류”의 대미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아마도 며칠 전의 김무성 대표의 방미 시의 “큰절 외교”, 즉 의례의 형태를 띤 노골적인 굴복과 아부입니다.

    동시에 비구미권의 무력한 타자들은 여전히 괄시나 억압을 당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중국 관광객 유치용으로 관에서 복원한다 해도 현지 화교들을 철저히 소외시켜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관 주도로만 하고,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해 여전히 탄압적 태도를 보이고… 중산층 이상의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이 “쿨”해 보이는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밥 발어 먹고 살아야 하는 고려인 이주 노동자들과 이야기해보면, “빨리 돈이라도 조금 벌어서 도망치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 2교대와 야간 노동, 며쳘 사람을 썼다가 그다음 바로 내보내고 돈도 제대로 주지 않는 파렴치한 “사장님”들과 법의 부재, “가난한 동포”에 대한 철저히 멸시적 태도…

    외국 “힘”에 대한 “큰절”, 외국 “돈”에 대한 환영과 외국 로동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여전히 병진해 이루어져나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종속형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의 본질이겠죠?

    신자유주의가 아직도 성장의 환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오늘날에는 신권위주의 정권이 여기에서 일종의 암흑기를 연출합니다. 사회적 저항이 예방되거나 압살 당하고, 관제 애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강요되고, 사회가 재벌가들의 사익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모양을 보입니다.

    한데, 이 성장의 환상들은 절대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의 깊어지는 위기로 지역 경제 전체가 벽에 부딪치고 말면, 이 재벌의 왕국에도 심판의 순간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 우리가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의 승객들의 구제가 가능하도록 재벌 독재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할 것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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