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행 선생을 기억하며
    [추모]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기 위하여
        2015년 08월 03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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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짝 놀랐다. 텔레비전 뉴스채널의 하단 기사에 ‘국내 최초 『자본론』번역 완간 김수행 교수 별세’라는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서도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과 사제관계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친분관계가 있지도 않았지만 우리 세대(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대학을 다닌 세대)에게 ‘김수행’(1942~2015)이라는 이름은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하숙집 장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드커버로 된 책이 『자본론』이었다. 까마득한 선배와 과방 귀퉁이에 앉아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있는 책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사용가치’와 ‘노동가치’,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 사이의, 소위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 즈음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었던 ‘지리산’이라는 드라마에서 “『자본론』을 읽고 가슴이 뛰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대사(사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또한 그렇게 중요한 배역도 아니었던 것 같다)조차 가슴에 울림을 줄 정도로 ‘어렸던’ 그 시절 우리들 곁에 있었던 몇 명 되지 않는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선생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애틋한 사적인 추억이 있을 리도 없다. 과 친구들과 집단적으로 수강신청을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첫 시간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당혹스러웠던 기억, 데모한다고 수업을 밥 먹듯이 빼먹고 시험 보러가서 그 때까지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을 모조리 쏟아내던(문제와 상관없이) 기억 정도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부고를 듣고 ‘뭔가’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선생의 죽음을 통해서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방송화면)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도대체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이었을까? 왜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지금’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를 성경이나 코란처럼 받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경박함의 시대에 생의 마지막까지 마르크스로부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선생의 꿋꿋함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과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일까?

    전문적인 경제학적 논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마르크스 사망 후 130여 년 동안 그를 둘러싼 해석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노동가치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신리카도주의와 정통파 사이의 논쟁이 20세기 중반을 장식했다. 가치의 가격으로의 전형문제는 최첨단 수학까지 동원되며 전문 경제학자들에게 ‘일거리’를 공급해 주기도 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주제 중의 하나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해석은 학파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규정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분명 김수행 선생은 그 중 한 입장에 서 있었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내에서 날선 이론적 공방의 당사자였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제대로 해석하고 마르크스가 꿈꾸었고 김수행 선생이 원했던 인간다운 삶을 성취하기 위해 이러한 학술적 논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날선 공방이 보다 평등하고,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과는 교감하지 못하고 그저 연구자들의 학술적인 ‘고준담론’에 머물러 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우리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주의 논쟁은 이렇게 정체하고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수행 선생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이제 마르크스주의 해석이 어떻게 보통사람들의 열망과 정서와 교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김수행 선생과 관련된 또 하나의 기억은 선생이 퇴임하신 후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를 더 이상 임용하지 않겠다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결정 때문에 생긴 논란이었다. 선생과 관련이 없지 않은 영국의 경제학자 벤 파인(Ben Fine)은 사회과학이 경제학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경제학은 수학이라는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화되었다고 비판했다.

    벤 파인의 주장처럼 학문의 위기는 구체적인 삶이 빠진 수학공식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만이 과학이고 나머지는 사이비과학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신념에서 연원한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들은 말로는 여기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암묵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이러한 대학의 위기에 일조해 왔다. 암묵적 동조는 비판적인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에 실패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합리성의 지배에 동조함으로써 학문을 양적으로 평가하는 시류에 편승한 결과는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이론적 깊이와 비판적 통찰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상품성 있는 분야의 논문 편수에 몰두하도록 했다.

    이제 우리는 김수행 선생과 ‘우리세대’가 공유했던 문화, 수십 장에 걸쳐 손으로 쓴 대자보에서 기성 학문에 대해 거침 없는 비판을 제기하고, 수업시간에 교수들과 논쟁하던 학생들의 모습을 아련한 추억 속에서만 되살려 낸다. ‘그때는 말이야…’라고 어깨에 힘을 주면서 떠벌리지만 스스로 현재의 학생들에게 ‘그건 옛날 일이야’라고 침묵과 순응을 가르치는, 최소한 ‘양심적으로’(?) 방조하는 ‘우리세대’ 대학교수들에게 비판은 언제나 과거형이고 현재는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변한 새로운 세상이다.

    기억해 보자. 우리가 김수행 선생의 『자본론』을 읽으며 현실을 비판했을 때, ‘그 때’의 기성세대는 똑같은 말을 우리에게 했다. 세상은 바뀌었다고, 어쩔 수 없다고. 우리는 그들을 낡은 세대로 비판했다. 이제 우리가 낡은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때와 지금을 다르지 않게 살아 내셨다.

    학문적 공과로 재단하지 말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일관되게 살아냈던 한 명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중요할 뿐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종교처럼 따르지 않고 그것을 통해 인간다움을 부정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선생의 죽음은 이미 굳어져 낡은 것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안일한 순응적 생각을 깨버리는 망치가 되어 돌아온다.

    추모가 아니라 기억을!

    이전에 스튜어트 홀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면서 ‘추모하지 말고 기억하자’는 제목을 붙였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김수행 선생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는 행위는 언제나 새로운 의미 구성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김수행 선생과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공유했던, 이미 ‘꼰대’가 되어 버린 세대의 기억은 잃었던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때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그 자유와 평등은 기성세대의 일원이 되어 ‘누릴 것이 많아진’ 자들의 착각일 뿐이다.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젊은 세대에게 뻔뻔스럽게 참으라고 말하거나 무책임하게 왜 비판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느냐고 질타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교 축제 때면 학생들 옆에 슬며시 앉아 막걸리 값을 내주면서 오고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김수행 선생은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사회,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했다.

    이제 추모하지 말고 김수행 선생을 기억하자. 그 기억은 한 사람의 과거의 행적을 더듬는 것도, 그가 속했던 시대를 추억으로 기념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비판정신을 살려내고 그것을 미래를 향한 도전에 투영해야 한다.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꼰대가 아니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기 위해서 말이다.

    * 아래는 사회경제학회에서 밝힌 김수행 선생의 약력과 약력, 학문업적들이다. 

    <고인의 약력>
    현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장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전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전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
    전 서울대학교 세계경제연구소 소장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전 한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고인의 학력>
    1982년 런던대학교 경제학박사 수여
    1977년 런던대학교 경제학석사 수여
    196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석사 수여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학사 수여

    <고인의 학문업적>

    – 번역문
    1990년 마르크스의 자본론 완역발간
    1992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완역발간
    2011년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공역

    – 대표저서
    2014년 자본론 공부, 돌베개.
    2012년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한울.
    2011년 세계대공황, 돌베개
    2008년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년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년 21세기 정치경제학, 새날.
    1991년 정치경제학 에세이, 새날
    1990년 정치경제학원론, 한울.
    1986년 경제변동론, 비봉출판사
    1984년 마르크스, 케인즈, 슘페터, 중앙신서

    필자소개
    제주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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