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관점에서 본 민주적 정당론 강의
[책소개] <정당의 발견>(박상훈/ 후마니타스)
    2015년 08월 01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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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했던 정당만 120개 가까이 된다. 의원을 보유했던 정당도 40개가 넘는다. 대부분은 기존 정당이 파산해 재편하거나 이름만 바꾼 경우이며, 이제는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정당들은 상시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 네트워크 정당, 선거제도 개혁 등 다양한 혁신안이 경쟁적으로 등장하며,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등 당을 혁신하기 위한 비상의 방법도 시행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가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1. 실천적 관점에서 본 민주적 정당론 강의 

많은 학문이 그렇겠지만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은 이론과 현실, 해석과 실천의 어디쯤엔가 있다. 게다가 ‘정당론’은 정치학에서도 ‘이론의 빈곤’과 ‘저발전’으로 악명이 높은 분야이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반정치주의’가 주요 타깃으로 삼는 것이 정당이기 때문이며, 정당 정치가 공식적 차원보다 보이지 않는 비공식적 차원이 더 중요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연구자는 많아도 정당 연구자는 드물다.정치학자로서 이 책의 저자 박상훈 또한 그쯤에 있다. 그는 ‘학계’에서 활동하는 학자가 아니며, 엄밀히 말하면 ‘현실 정치’와 ‘학문으로서 정치학’ 사이에서 활동하고 글을 써 온 ‘사회적 정치학자’로서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서문에서 저자는 학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현실의 정치를 정치학의 언어로 설명하면서 정치학의 지식을 실제의 정치적 실천에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풀어서 말하고 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진보 정당에 대한 참여 관찰자’로서 활동하면서 정당 활동가들에게 정당 이론을 강의해 왔다. 그렇기에 이론으로서 정당론을 현실 속에서 풍부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2014년 말 그동안의 논의를 집약해 대중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 내용을 40차례의 지상 강의로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요컨대, 이 책은 ‘실천적 관점에서 본 민주적 정당론 강의’ 내지 한국적 맥락에서 본 정당론 교과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당의 발견

2. 한국의 정당정치는 왜 나빠지고 있는가?

저자는 “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정당정치는 왜 좋아지기보다 나빠지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글과 강의를 통해 일관되게 탐색해 왔다.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해 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① 정당 정치를 부정 내지 경시하는 잘못된 이해 방법을 비판하는 동시에, ② 정당 이론의 차원에서는 정당 체계론과 정당 조직론이 서로 다른 원리와 처방론이 갖고 있음을 밝히고, ③ 이것이 거꾸로 적용되어 온 그간의 정당정치 개혁론의 문제를 하나하나 따져 보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정당 정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다루는 부분인데, 직접민주주의론, 시민정치론, 국민후보론, 운동정치론, 전문가주의론…… 등 야당이나 진보 세력 일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생각 내지는 주장들이 왜 문제인가를 설득력 있게 논파하고 있다.

둘째, 정당 체계와 정당 조직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민주주의 정치 이론에서 정당에 관련해 하나의 지침이 있다면 ‘정당 체계는 다원적이어야 하고 정당 조직은 유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나, 현재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정당 체계는 협소해지고, 정당 조직은 개방적이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민주성’이 중요한 것, 다원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는 것은 정당 체계에서이며, 정당법이나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차원이라고 말한다. 반면 ‘유기성’이 ‘민주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당 조직론이다. 오픈프라이머리나 네트워크 정당론, 물갈이론 등은 이를 오해한 대표적인 접근으로, 정당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셋째, 선거제도 개혁론, 개헌론, 국민운동론, 혁신위원회 등이 거의 매년 주장되었음에도 왜 정당정치가 나빠졌는지도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3. 한국 정당 정치의 기원과 구조

한국의 경우 정당정치는 군주정으로부터 민주정으로의 긴 전환 과정을 이끌었던 갈등과 투쟁 없이, 그리고 사회 속에서 갈등의 비용을 치르는 긴 과정 없이, 위로부터 제도적 형식으로만 주어졌기 때문에, 사회적 내용의 빈곤함을 채워 나갈 긴 노력을 사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분단과 전쟁 등 한국 정치사의 특수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정당정치를 내용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나 비용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집권당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 파생 정당으로서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자유당과 공화당, 민정당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를 먼저 장악한 다음 국가의 모습을 닮은 여당을 사후에 창당한 것이 한국 집권 보수당의 기원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은 강한가? 그렇지 않다. 집권당이 강해 보이는 것은 국가의 권력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 때문이며, 따라서 강한 것은 당이 아닌 국가이다. 여당이 민주적 보수 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적, 이념적, 대중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

야당은 어떤가. 그간 권위주의 집권당에 대해 야당의 역할을 한 것은 캠퍼스의 학생운동이었다. 야당은 처음부터 국가권력에 대한 접근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민주당 구파-신파, 양김, 친노-비노로 나눠 다툼해 온 ‘국가에 매달려 있는 정당’이었을 뿐이다. 야당의 문제 역시 사회적 기반이 없는 것이다. 사회적 내용은 빈약한 채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경쟁만 있는 것이 야당이다. 이를 저자는 제1의 정당 체계라고 말한다.

4. 제3시민과 제2의 정당 체계

“한국 정치의 최대 에너지는 ‘다른 정치’가 가능하기를 바라는 ‘매우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무당파 시민’이다.” 저자가 ‘제3시민’이라 부르는 이들은 전통적인 정치 무관심층과는 매우 다른 무당파들이며, 제2의 정당 체계는 이들 제3시민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어떤 존재들인지는 불확정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안철수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이들이 어떤 정치적, 이념적, 계층적, 지역적 정체성을 발전시키게 될지는 누가 이들을 불러들일 대안 정당이 될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특징을 ‘반정당적’ 혹은 ‘정당 기피적’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당에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냈다면 그것은 제1의 정당 체계에 대한 것이었고, 그들의 의식적/무의식적 세계를 지배한 진정한 기대는 제대로 된 새로운 정치 세력과 정당에 대한 것이었다고 본다.

5. 정치, 결사체, 그리고 정당

왜 정치가 중요한가?“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면, 어떤 경우든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란 시민 개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공동체라고 하는 ‘공통의 조건’을 좋게 만드는 일을 과업으로 삼고 있다.

국가 관료제가 공익을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관장하는 일도, 시장체제가 독점적 사익 추구의 사냥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효과적인 제도와 예산을 뒷받침해 주는 일도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의 역할을 통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 왜 결사체가 중요한가?“

국가와 개인만 있고 그 사이가 텅 빈 공간처럼 되어 있는 사회는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에 취약하다. 다양한 자율적 결사체들이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중간 집단 내지 매개 집단의 역할을 얼마나 풍부하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질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에서 시민 권력이라는, 민주주의의 동의어는 듣기만 그럴싸한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개인화된 대중사회에서 그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여론이 되는데,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결사체의 기반이 약할수록 맹목적 도덕주의가 여론을 지배하게 된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도덕적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죄의식과 선의가 인간 공동체의 토대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내면적 결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동원되고 강요될수록 선한 사회의 기반은 약해진다.

”그리고 왜 정당인가?“

정당이 있고 없고는 그저 있을 것이 하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시민의 이익과 열정을 제대로 조직하고 표출하고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그 자체는 사회경제적 강자 집단을 견제하기는커녕 불평등과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정당은 시민을 더 단단하게 조직해 주어야 하고, 더 실체적으로 대표해 주어야 하며, 이들의 이익과 열정을 공공 정책의 형태로 더 확고하게 제도화해 주어야 한다. 정당이 약하면 민주정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속물이자, 사회 강자 집단들에 의해 조롱받는 모조품, 나아가서는 많이 배운 중산층 전문가 집단의 허영심을 채워 줄 놀이터에 불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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