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방송업계의 이면
    ‘프리랜서’ 이름의 비정규직․파견직
    시청률 경쟁 속 비인간화, 자기노동 착취 가속화
        2015년 07월 29일 09:47 오전

    Print Friendly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간 업계 특성으로 치부됐던 문제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방송계에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남용되는 비정규직, 파견직 문제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은 한국독립PD협회다. 더 이상 덮어두고 말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인 것이다.

    #1. 외주제작사 프리랜서 PD인 김경수(가명) 씨는 지난 해 3개월 동안 2개 제작사와 함께 모 방송국 광고국이 따온 협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후배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후배의 프로덕션에서 진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황한 김 씨가 방송국에 전화를 ‘왜 나한텐 말도 해주지 않고 자르냐’고 따졌고 방송국 관계자는 황당한 답을 내놨다. 광고국에서 협찬하는 상품에 대해 직접적 광고를 요구했고 김 씨는 그 때마다 ‘자신의 소관이 아니니, 제작국과 협의하라’고 했고 그 말이 입김 센 광고국의 비위를 거슬렀던 것. 이것이 그가 ‘해고’ 당한 이유의 전부다. 김 씨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제작진 12명 모두 졸지에 백수가 됐다.

    한편 그 시기 방송국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김 씨가 해고당한 사실을 새로운 제작사의 제작진이 알렸다는 것이 방송국 부장의 귀에 들어간 것. 부장은 당장 그 자를 찾아내라며 못 찾아내면 너희들도 일주일 내로 잘라버리겠다고 윽박을 질렀다.

    #2. 외주제작사 프리랜서 PD인 이주원(가명)씨는 입봉을 앞두고 함께 일하는 선배 PD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 도중 선배의 주장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가 따귀를 맞았다. 말대꾸를 했다는 것이 이 씨가 따귀를 맞은 이유다. 이 씨는 화가 났지만 참았다. 조연출이 PD에게 대들어 이슈를 만들었다간 입봉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그 조직에 내쳐질 수 있는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선배 PD가 사과를 청해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사과를 받았다. PD가 돼야 하니까.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가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를 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묻어뒀던 문제를 향후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것이다.

    방송사 외주

    프리랜서 노동인권 증언대회(사진=유하라)

    시청률, 시청률, 시청률…무리한 경쟁 속에서 비인간화
    “스스로 노동 착취하는 구조 확산”

    얼마 전 꽤 잘나가는 외주제작사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방송작가들이 이틀 전 대량으로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소위 ‘작가 물갈이’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작가들은 자진해서 회사를 나갔다.

    그들이 만약 부당한 것에 항의할 수 있을 만큼의 힘과 조직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순순히 회사를 나갔을까.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에게 해고 통보를 할 수 있었을까.

    토론자로 나선 최선영 독립PD는 폭행사건이 벌어진 MBN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최 PD는 “MBN에는 인센티브 체제 있다.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시청률이 예상보다 상회하면 그 자리에서 지폐개수기로 돈을 세서 상을 준다”며 “제가 만난 독립PD는 ‘선배, 그 돈을 받으면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관리구조가 상당히 왜곡되면서 방송업계의 비인간화를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송사의 관료화도 지적됐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위계적 질서가 분명하고 시청률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송사 간 경쟁은 물론 내부적 경쟁도 과열돼 있다.

    최 PD는 “시청률이 잘 나온 팀은 지폐개수기로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구조가 분명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며 “결국에는 독립제작사 안에서 우리끼리 경쟁이 일어나고 스스로 자기노동착취 구조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최 PD는 MBN 폭행사건을 언급하며 “피해자인 독립PD는 폭행을 당하고도 다시 시사실에 가서 시사를 했다. 저항하면 PD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한 것”이라며 “독립제작사에 대한 방송사의 내부 관리 지침이 다른 관행을 정착돼야 하고, 윤리위원회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의 노동인권 실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최근 벌어진 MBN 소속 PD가 독립PD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방송계 노동자들의 고강도 저임금 노동 문제는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좁은 바닥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처지라 문제가 있어도 공론화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화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실명이든 익명이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방송 업계에서 만연하게 벌어지는 노동착취,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이날 증언대회의 핵심이었다. ▲다른 특수고용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통한 조직화 ▲방송사 사용자 지위 인정을 통한 단체교섭 ▲방송사 특별법 제정 등이다.

    민주노총 권두섭 법률원장은 “방송사 내 프리랜서들은 근로자성 인정받기 어려운 다양성이 있다”며 “또한 문제제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법으로만 해결하기 어렵다. 단체나 노조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다만 권 원장은 “민주노총 내에도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직이라는 비슷한 사례가 있다”며 “법원으로 가져갔을 때 근로자성 인정받을 수 있는 직종이 있고 비슷한 일을 하지만 근로자성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화물연대라는 형태로 공공운수노조에 노조를 조직해 활동하며 처우를 개선해나가고 있다. 그런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조언했다.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노동자 끼리 혹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과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낀다. 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협회든 노조든 표준근로계약서나 임금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단체가 만들어져야만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단체교섭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노조든 협회든 권익 보호 단체가 만들어져야 하고 갑의 지위에 있는 방송사와 교섭해야 한다. 다만 원청인 방송사가 노동법상 사용자 지위에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아사히 방송사 사건이라고 굉장히 유명한 판례가 있다. 아사히 방송에서 일하는 파견,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법상의 사용자 지위를 방송사로 인정한 판결이다. 우리 대법원도 그 판례를 가져와 인정하고 있다”며 법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도 나왔다. 건설 노동자의 경우, 기존의 노동법 적용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워 건설근로자 고용구조 개선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퇴직금, 4대보험 문제 등을 일부 해결한 전례가 있다. 권 원장은 “별도의 특별조항을 만들어 해결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특별법으로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에 갑을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법 체계 내에서 갑을관계를 규제하는 법률이 있다. 하도급 공정에 관한 법률, 산업별로 생기는 갑을관계 규제에 관한 제도가 있다”며 “화물 관련, 갑의 지위에 있는 운송사업자들이 저지르는 횡포의 유형을 금지 행위로 정해놓고 행정적 제제나 형사 처벌까지한다”고 전례를 소개했다.

    방송계 종사자들은 유난히 밤샘 노동이 많은 직종이다. 그러나 시간외 수당 지급은 전무하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다. 이에 관해서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권 원장의 입장이다. 그는 “호주에는 화물차 기사가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법이 있다”며 “방송사 또한 특별법을 통해 이런 부분도 일정하게 규제가능하다”고 말했다.

    산별노조인 언론노조의 역할도 돌아봐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언론노조가 산별노조의 자격으로 조합을 대표하는 역할과 지위가 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독립PD 처우 문제는 안타까운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반성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회에서도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탄압, 인권침해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우원식 위원장은 “우리 사회 전체가 힘있는 사람들에게 눌리고 빼앗기는 게 일상화됐다.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한 발작도 나갈 수 없다”며 “피해실태를 듣고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을지로위원회는 한 번 시작하면 해결될 때까지 끝내지 않는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은수미 위원 또한 ” 지금의 문제제기다 많이 늦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증언대회가 출발선이라고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