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혐’이 재미있니?
    무시와 조롱이 재미가 되는 세상
        2015년 07월 22일 12:13 오후

    Print Friendly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난 그때 처음으로 왕따를 당했다. 왕따라는 말이 유행이자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다행히(?) 심한 따돌림은 아니었고 나름 견딜 만 했던 따돌림이었다.

    따돌림을 주도하던 아이에게 따돌림의 이유를 물었다. 별 이유는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약 일주일 정도를 아무 이유 없이 따돌림 당했다. 따돌림의 대상이 바뀌었다. 일주일 정도씩, 길면 한 달 정도를 반 전체의 아이들이 한번씩은 왕따를 당했다. 나도 이유 없는 따돌림에 동참했다. 다시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비겁했지만 그땐 그랬다.

    그 때의 일을 돌아보니 그들의 따돌림은 그저 단순히 ‘재미’에 불과했던 것 같다.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 어려운 시기에 ‘왕따’라는, 누군가를 단체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행동들이 그 또래의 문화이자 놀이였던 것이다.

    20대가 된 나의 주된 놀이는 페이스북 ‘눈팅’이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여러 사건 사고나 이슈 혹은 유머 게시물, 지인들의 소식들까지 매일 시끌시끌한 편이다. 그래서 심심할 때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요깃거리가 된다.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습득하게 된 것은 다양한 유행어다.

    ‘노답’, ‘노잼’, ‘핵00’, ‘극혐’, ‘열폭’, ‘진지충’, ‘심쿵’, ‘아몰랑’…….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유행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유행어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데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무시할 때 자주 쓰인다. 재미로 쓰이는 것들이긴 하지만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그 중에서도 ‘극혐’ 이라는 단어는 특히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극혐’의 뜻은 극한의 혐오를 의미한다. ‘혐오’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거부, 싫어하고 미워하는 부정의 마음에 ‘다할 극(極)’ 이라는 뜻을 더해 혐오의 끝을 치닫는 의미를 만들어 냈다.

    이 ‘극혐’이라는 단어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무언가를 싫어할 때, 혹은 징그럽거나 끔찍한 장면을 봤을 때, 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자에 대해 무시하거나 차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페이스북에 한창 ‘여자들의 화장 전후’ 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화장을 지우는 여자의 민낯이 화장한 얼굴과 크게 다른 영상이었는데, 댓글의 반응은 예상한 것처럼 엄청났다. 작게는 “헐” 에서부터 “변신 수준을 넘어섰다.” 심하게는 “저 얼굴로 어떻게 사냐.”까지. 가장 많이 보게 된 단어는 ‘극혐’이었다. 결국 그 영상을 올린 여성은 많은 혐오성 댓글에 충격을 받아 페이스북을 잠정 탈퇴했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또 그것을 재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회적 폭력을 제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극혐’이라는 단어가 외모에만 국한되어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김치녀 라던가, 동성애 반대운동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이거나 동성애라는 이유만으로 무지막지한 폭언과 혐오를 내뱉는다. 이 혐오는 또 다른 혐오로 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극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거나, 약자에게 ‘극혐’이라는 말로 상처 주는 사람들을 나는 ‘혐오성애자’라고 부르고 싶다. 죄책감 없이 누군가를 혐오하는 혐오성애자들에게 ‘극혐’이란, 가치관 성립이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놀이처럼, 올바른 놀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몸만 자랐지 머리는 자라지 않은 격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초등학교의 왕따 시절. 난 지금의 SNS나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20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그때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의 놀이문화는 실체가 없어 더욱 무섭고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끊임없이 부정적인 은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언젠가 한번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누군가에게 “너 오늘 극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분명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극혐’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을 것이다.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라고 하자 친구는 “뭐 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며 장난이고 재미였다”는 말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누군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그저 재미일 뿐이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소심한 20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때의 나처럼 비겁하게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로 모든 것을 무마시키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때 이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가 된다. “극혐이 재미있니?”

    필자소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문화재단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교복전문점에서 한 달 꼬박 쉬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